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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성장 Aug 16. 2023

내 인생의 생명체들



"엄마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아이고 메리야...."


한남 초등학교 하교 시간, 학교 앞이 소란했다. 박스 안에서 삐약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 마리 백원!!!"소리치는 아저씨를 봤다. 이미 아이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구경하느라 난리였다. 엄마한테 조르는 아이, 구경하는 아이, 금방 죽는다며 아이를 떼어놓기 위해 끌고 가는 엄마 등 시끌벅적했다.나는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너무 작아 매번 1번만 하던 나는 실내화 주머니를 끌고 다녀, 바닥에 구멍이 났다. 실내화 주머니가 비싸다고 생각한 엄마는 내 가방을 들어주기 위해 학교 앞에 마중 나오셨다. 병아리 구경을 한참이나 하던 나도 엄마에게 사달라며 졸랐다. 


"엄마, 우리도 병아리 기르자."


안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선뜻 한 마리를 사주셨다. 검은 봉지에 고이고이 모시고 와서 집 부엌에서 키웠다. 엄마는 죽어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며 약한 아이들을 파는 것이라 했다. 생각보다 삐약이가 잘 크는 건지, 아니면 엄마가 잘 키우는 건지 무럭무럭 자랐다. 나는 살 때만 삐약이에게 관심이 있었지 사실 키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점점 닭이 되는 삐약이가 더 이상 귀엽지 않았다. 무서웠다. 얼마 후, 삐약이는 삼계탕이 되어 점심 식사에 올라왔다. 첫 생명체는 그렇게 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는 시장에서 예쁜 점박이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강아지 장사가 왔는데 다 팔고 얘가 한 마리 남았다'며 싼값에 사 왔다고 했다. 강아지는 처음이었다. 너무 귀여웠다. 엄마와 얘기 끝에 땡순이라고 이름을 짓기로 했다. 땡순이는 내가 집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꼬리를 치며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땡순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땡순이를 보러 친구들도 집에 자주 오게 되었다. 중학생이 되고 매일 아침 7시. 답답하게 묶여있던 땡순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신나게 뜀박질을 했었다. 


어느 주말, 성당을 다녀오니 땡순이가 없었다.



"엄마, 땡순이 어디 갔어? 안 보이네?"


얼버무리던 엄마는 삼촌이 데려갔다고 했다. 옥상을 가보니 쾌쾌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옥탑방 앞쪽에  마대자루가 있었고 피가 묻어 있었다. 설마....!!!  집에서 제일 가까운 정희네 집으로 부리나케 쫓아갔다. 



"정희야 큰일 났어. 빨리 나와봐!"


정희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했다. 같이 옥상에 다시 가보았다. 정희는 옥상 귀퉁이 봉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땡순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으악!"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 할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얼마쯤 흘렀을까? 정희는 땡순이 얼굴이라도 땅에 묻어주자 했다. 마침 옥상 텃밭이 있었다. 나무젓가락으로 구멍을 파고 땡순이를 묻어주었다. 땡순이가 천국으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한동안 우리는 별말 없이 한참 동안을 앉아있었다. 


저녁식사에 국이 나왔다. 약간은 비릿한 냄새. 아마 '땡순이국'이었던것 같다. 어떻게 몇 년을 같이 동고동락한 개를 잡아먹는 단말인가!


엄마도 아빠도 삼촌도 다 미웠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 잔인하다니.


"이거 그런 거 아냐. 소고기야."


엄마는 나를 바보로 알았나 보다. 옥상에서 진동하던 비릿한 냄새가 국에서도 났다. 나는 두 번째 생명체와 아픈 이별을 하며 소고기국이라 속여도 귀신같이 보신탕을 알아내는 코를 갖게 되었다. 



몇 년이 흘러 스무 살 초반에 누군가 개를 한 마리 키워보지 않겠냐며 레트리버와 믹스된 강아지를 가져다주었다. 나는 또 땡순이처럼 할 거면 절대 키우지 마라며 엄마에게 엄포를 놓았다. 지금도 땡순이의 고통스러운 얼굴이 선명하다. 엄마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약속을 했고 우리는 믹스견 메리를 데려와 키웠다.  머리가 똑똑했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시키는 대로 다하고 유독 엄마에게 이쁨 받았다. 내가 늦은 사춘기로 밖으로 나돌 때 엄마를 지켜주고 자식처럼 옆에 있어주었다. 메리는 엄마에게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메리의 배가 불러왔다. 엄마는 보더니 임신을 했고 언제 그랬는지 알 수 없다며 신기한 일이라 했다. 


메리는 6마리의 예쁜 새끼들을 낳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엄마도 경계를 했다. 엄마는 몸을 푼 메리에게 삼계탕이며 북어국이며 온갖 정성을 쏟았다. 그래야 새끼들도 포동포동 예쁘게 큰다고 했다. 한 달쯤 지난 후였을까? 아침에 엄마의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나가보니 메리가 어디서 약을 먹고 왔는지 구토를 하며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새벽에 잠깐 바람 쐬고 오라 풀어줬는데 어디서 그랬는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저 작은 새끼들을 놓고 어찌 갈꼬....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


엄마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았는지 새끼에게 우유를 줄 때마다, 혼자 적적할 때마다 메리를 그리며 울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나 새끼를 분양시키고는 메리가 보고 싶다며 사진을 한참동안 끼고 사셨다. 메리가 가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약까지 먹게 되었다. 키우던 개도 먹던 분이신데 어지간히도 정이 깊게 들었나 보다. 그렇게 나의 세 번째 생명체도 하늘로 갔다. 



지금 나는 네 번째 생명체를 키우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준  내 유일한 피붙이. 사춘기가 된 중2 딸이다.  15년째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동물도 사람에게 큰 사랑을 주고 정을 주고 하는데, 사람이야 오죽할까? 사랑을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많은 딸이다. 잘하든 못하든 아이를 보며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열심히 살아야 할 원동력을 준다. 감사하다.



네 번째 생명체 인간! 우리 한번 잘 살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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