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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곶감 Mar 01. 2022

지나고 보니, 사랑

우리는 매년 서로의 생일을 챙겼다. 우리끼리의 연례행사였다. 나는 때때로 간단한 문자로 너의 생일을 지나가곤 했지만 너는 꼭 나의 생일을 챙겨주었다. 어느 생일에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스케치북 이벤트를 내게 해주었다. 또 언젠가 써주었던 편지에 너는 내게 아빠가 되어주겠다고 했었다.


빚보증을 서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던 그 시절 우리는 성인이 되면 서로에게 빚보증을 서 주기로 했다. 티브이 드라마에서는 친구의 보증을 서다가 망한 인물들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우리는 보증의 행위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믿는다.’는 의미로 사용했던 것 같다.


우리는 시험이 끝나면 꼭 같이 노래방을 갔고 서태지의 교실이데아를 부르거나 자우림의 청춘예찬을 부르기도 했다. 하루는 노래방에서 내 허벅지를 베고 누워서는 네가 푹신하게 베야 한다며 살을 빼지 말라고 한 적도 있었다. 또 너는 내게 너희 부모님과 동생을 소개해 주었고 때로 밥도 같이 먹고 가끔 잠도 같이 잤다.


엄마가 담배를 피운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 사실을 울면서 털어놓는 내게 너는 참 성숙한 대답을 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내 마음을 위로하지는 못했다. 이후에 너는 ‘그때 네가 듣고 싶었던 말을 그게 아니었을 것 같다’며 사과를 했던 것 같다. 그만큼 너는 깊고 넓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는 너희 가족과 함께 술도 마셨다. 처음으로 끓는 국에 회를 넣어 숙회처럼 먹는 방법을 배웠다. 그날은 술에 취해 술이 물 같다며 연거푸 소주를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리를 뛰어다니는 네 모습도 보았다.


너는 내가 전학 와서 사귄 두 번째 친구였고 늘 같이 하교를 했다. 나는 그저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젠가 네가 나에게 말했다. 함께 가려고 집으로 가는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로 갔었다고.


네가 내게 준 것이,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들이 사랑이 아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사랑인 줄 몰랐다. 나는 네가 준 마음들을 오롯이 받아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네가 준 것이 무엇이든 계속 있을 줄로만 알았다.


네가 깊고 넓어져 강이 되고 바다가 될수록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는 흙탕물이 고여 있는 작은 웅덩이 같았다. 질투와 선망, 부끄러움과 미안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사랑을 덮어버렸다. 초라한 내가 보기 싫어 너에게서 도망쳤다. 너와 연락이 뜸해졌고 이내 완전히 끊어졌다. 이후에도 나는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에 온 신경이 꽂혀 있어서 그것이 사랑인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금 간 독이었고 왜 금이 갔는지 어떻게 하면 금을 메울 수 있는지 열심히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금이 간 이유를 알 수 없었으며 어떻게 해도 매끈하게 온전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갈라진 틈으로 들어온 바람이 시려서 부서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틈으로 우련히 들어오는 빛을 미처 알지 못했다.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이었음을 안다. 독이 부서져야 온전한 볕살을 느낄 수 있으며 때로는 스스로가 그 볕살이 될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 사랑이 없는 줄 알고 외로웠던 내게 늘 사랑이 있었음을. 단지 발견하기만 하면 되었던 사랑. 많이 각색되고 미화된 기억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것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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