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혼자 밥을 먹으니 음식의 양이 많지 않아도 꽤나 오래 먹게 됩니다.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인도카레를 욕심내 2개를 주문했더니 6번에 걸쳐 나누어 먹었고
삼 일 전에 끓인 된장찌개는 절반을 냉동실에 넣어놓았는데도 좀처럼 바닥을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께 두부가 거의 없는 된장찌개를 그냥 먹었으면 다 먹었을 텐데
굳이 두부 반모를 잘라 넣어서 결국 다 먹고 나니 원래 남아있던 양만큼 도로 남게 됩니다.
이쯤 되면 된장찌개가 새로운 된장찌개를 낳는 거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된장찌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네 번쯤 먹었을까 아이의 간에 맞춘 된장찌개는 대단히 맛있지도 않아 남은 건 버릴까 고민하다 냉장고에 들어갔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두세 시경 허기가 져서 저녁을 먹자니 좀 이르고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나 냉장고를 뒤지다 보니 냄비바닥에 거의 붙을 만큼 조금남은 된장찌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저거나 해치우자'
냉동실에 얼려놓은 밥을 조금 덜어 돌리고 찌개냄비를 불에 올려놓았습니다.
양이 원체 적어 올려놓은 지 1분도 채 안된 것 같은데 금방 끓어오릅니다.
대충 국그릇에 옮겨 담고 밥까지 말아버립니다.
안 그래도 싱거웠던 된장찌개가 밥까지 섞이니 더욱 심심해집니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그런대로 나쁘지 않네라고 생각하던 와중에
김치냉장고에 있는 시어머님이 담가주신 오래된 파김치가 떠오릅니다.
왠지 이 심심한 간에 딱 맞을 것 같아 파김치를 꺼내다 보니 옆에 엄마가 만들어준 오래된 진미채볶음이 있습니다.
시고 짠 파김치와 맵고 단 진미채 볶음 왠지 조화로워 보입니다.
두 개를 작은 접시에 아주 조금만 덜어봅니다.
밍밍하고 고리 한 된장찌개에
시고 짠 파김치가 더해지니 간이 딱 맞습니다.
파김치의 화함과 물컹거리는 식감이 입에서 겉돌 때
달면서 조금 매운 고무 같은 식감의 진미채가 무게를 잡아줍니다.
너무 맛있습니다.
단 진미채가 물릴 때쯤 된장찌개를 먹고
심심한 된장찌개에 파김치로 간을 더하고
파김치의 화함을 진미채로 누르고
다시 된장찌개로..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그릇의 바닥을 드러냅니다.
조금 덜어왔던 파김치와 진미채는 두 번을 더 리필해 먹었습니다.
셋다 저걸 언제 다 먹지 고민했던 처치곤란의 음식들이었습니다.
하나씩만 먹었을 땐 그 음식의 싫어하는 맛과 식감들이 너무 도드라져
고역스럽게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음식에도 궁합이란 게 있습니다.
치킨에 맥주 같은 아주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궁합 말고도
나만이 좋아하는 내 스타일의 맞춤 궁합을 찾아낸 것 같아 기쁩니다.
이 음식들을 보면서 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개인에게는 다양한 면모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의 밝은 에너지를 주는 것 같은 활기참이
또 다른 상황에서는 눈치 없는 소란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진중함이
다른이 에게는 답답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상황과의 궁합에 맞는 나의 면모를 펼쳐내는 건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누군들 그 상황에 딱 맞는 나의 면모를 꺼내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어찌 보면 그간의 경험, 레퍼런스들로 그 결과값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하고
동일한 상황, 동일한 면모에 대해 받아들이는 상대방에 따라 그 결과값이 완전히 다른 경험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잘 변하지 않는 나를 기준으로 삼아봅니다.
오늘의 식사는 나를 위한 식사였고
내 입맛에 맞는 조합을 찾아냈으며
버려질 것 같은 음식들을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별로'인 모습들을 그 결과값이 좋지 않았던 상황이 아닌
다른 상황에서는 꺼내본다면 혹은 여러 면모를 조합한다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요즘 저는 저의 모든 면을 받아들이는 중입니다.
마음에 드는 나도, 별로인 나도
어쩔 수 없이 안고만 가야 하는 별로인 나의 면모가
어딘가에서는 멋지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