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리더쉽의 털보 아저씨 - 1편]
* 1편으로 하기엔 이야기가 너무 길어 나누어서 올립니다 :)
"멍- 멍- 쿡- 멍- 쿡- 쿡-" 사냥개 다섯마리 짖는 소리와 멧돼지의 성난 킁킁대는 소리가 모든게 얼어붙은 겨울산을 깨운다. 다섯마리의 개가 멧돼지 한마리를 포위하고 있고, 멧돼지는 개들에게 쫓기다가 뒤가 암벽인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개들은 멧돼지를 사냥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죽을 수 있다는 것도 매우 잘 알고 있어 신중하다. 사냥개 무리 중 리더는 멧돼지를 먼저 뒤쪽에서 살짝 물어뜯으며 멧돼지의 중심을 흐뜨러뜨린다. 뒤를 보인 멧돼지에게 순식간에 4마리가 달라붙는다. 이제 산에는 사냥개들의 무는 힘이 느껴지는 '꾸웩!' 소리만이 가득해진다. 소리를 듣고 한참 뒤 쫓아오던 수염이 잘 어울리는 사냥꾼이 암벽 위에서 총을 장전한다. '철컥' 소리에 개 다섯마리는 동시에 사냥꾼에게 시야가 옮겨진다. 리더가 마무리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텅!' 소리에 산은 무슨일이 있었냐는듯 조용해졌다.
"선생님, 교육에 있어서 리더쉽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대체 그게 뭔지 좀 모호해요. 알려주세요." 내가 훈련사로서 종종 받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네! 맞아요, 원래 모호한거에요.
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교육비 환불 요청 받을까봐 못하지만. 사실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에 나 또한 애매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것이다. 네이버에 리.더.쉽 '검색을 하면 조직체를 이끌어나가는 지도자의 역량.' 이라고 뜬다. 보호자로서 리더쉽이란, 개를 잘 이끌어나가는 보호자의 역량이라고 해석해보면 된다. 흠, 사전의 말을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잘 모르겠는것이 말그대로 모호하다. 맞다. 리더쉽은 사실 그걸 가진 사람을 딱 보고 느껴보는 것이 A4용지에 리더쉽은 개를 이끄는 역량이라고 백 번 보는것보다 훨씬 와닿기 때문이다.
'리더쉽이란건 이런거구나' 처음 느끼게 해준 사람은 조금 뜬금없지만, 순대국밥을 좋아하시던 털보 아저씨였다. 그는 훈련사가 아니였고, 산에서 개들과 멧돼지 사냥을 다니던 사냥꾼이었다. 아저씨를 처음 만난 건, 다름 아닌 개에 대한 궁금증으로 부터였다. 개들의 역사를 보면, 추운 겨울 따뜻한 보일러틀고 담요에서 포근한 잠을 자는 개들의 역사보다 추운 겨울 같이 산에 올라 사냥한 사냥감의 고기를 무심한듯 툭 던져주는 역사가 압도적으로 길다. 수 많은 책에서도 인간과 개를 이어준 개의 최초 능력은 사냥이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냥하고는 세상 거리가 멀 것 같은 친구네 포메라니안 토토도 하는 짓만 보면 순록이라도 잡은듯 앙증맞은 이빨로 터그 장난감을 갸르릉 거리며 물고 터는 걸 보면 맞는 말인듯 하다. 나는 사냥개들과 산에 오르는 사냥꾼들을 만나면 개에 대해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 당시엔 우리나라는 이런 특수 목적견 매니아들의 붐이였고,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발했다. 한국에 사냥개들이 모이는 관련 카페가 있다것도 알게 되어 바로 가입했다.
그 곳에 올라온 자료들은 새로운 세계였다. MSG 양념을 조금 더 쳐서 얘기하자면, 자동차 모닝만한 멧돼지와 그 옆에 여기저기 피가 묻은 사냥개들과 시크한 표정으로 기념샷을 찍은 아저씨들이 많은 카페였다. "400근 돼지 한수 했읍니다" 라는 구수하면서 살벌한 제목들의 글들이 가득했다. 1근당 60g, 400근이면 240kg다. 그렇게 큰 생명체를 사람하고 개가 합작해서 잡았다는 사진들은 처음엔 낯설었고, 솔직히 멧돼지들도 불쌍했다. 카페에서 알게 됐는데 농작물들을 심각할 정도로 훼손시켜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사냥해도 되는 유해조수로 지정된 동물이라고 했다. 그 불쌍한 마음보다 야생의 눈빛이 가득한 그 아저씨들과 사냥개들에 대한 호기심이 좀 더 컸다. 길에 지나다니면서 보이는 길고양이보고도 무서워서 길을 돌아가는 개들도 있는데, 똑같은 개라는 동물인데 멧돼지를 잡는다니, 감히 상상이 가질 않아 더 궁금해졌다.
그 당시 나는 컴퓨터 수업 시간에 졸지 않아서 포토샵을 조금 만질줄 알았는데, 이것이 사냥개 카페 아저씨들에게 이쁨을 살줄은 몰랐다. 카페를 꾸미는 것을 전혀 하실줄들 모르셨는데, 내 초보 포토샵 기술이 카페를 화사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덕분에 나는 사냥개 분야에 1위 카페 운영자가 됐다. 그 이후로 아저씨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한참 카페를 보다가 그 중에서도 마초 향기가 가득한 수염을 가득기르고 무심한듯 사냥개들과 사진을 올리시는 일명 털보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댓글을 달며 친분을 쌓았고, 그는 내게 "한번 시간 되면 놀러와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시간 되면 밥먹자, 시간 되면 놀러와"는 인사치레라고도 하지만 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겼고, 2005년 겨울, 나는 카페에서 알게된 털보 아저씨를 만나러 떠나기로 결심한다.
생전 가보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경남 진주행 고속버스 티켓을 아저씨 덕분에 끊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용기도 가상한데, 아저씨를 믿고 떠난것이다. 거의 4시간을 달려서 도착한 진주 터미널에서 아저씨께 전화를 했다. 170 중후반대 되보이는 키에 떡벌어진 어깨, 당당한 몸짓, 쌍커풀 없지만 강인하고 초점이 정확한 눈, 미군복을 입고 요즘말로 힙한 모습에 아저씨는 수염이 잘 어울리셨다. 아저씨는 "니가 민혁이여? 고생혔어. 밥 안 먹었지?" 하시며 나를 몇 번 본듯 대해주셨다. 그러곤 당연히 약속이나 한듯 단골 순대국집으로 데려가셨다. 사실 그 땐 순대국을 그닥 안 좋아했는데 말씀드리기엔 아저씨 포스가 굉장했다. 순대국을 먹으며 아저씨는 물으셨다. "얌마 너는 오란다고 진짜 오네. 대단혀. 사냥 이런거 빠지면 곤란한데, 뭐가 그리 궁금한겨?" 아저씨는 충청도가 고향인듯 하셨다. "저는 동물을 다 좋아해서 솔직히 사냥은 싫은데요. 책으로만 보던 사냥이란게 개들이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 사냥개들하고 아저씨가 궁금해서 왔어요." 했더니 국밥을 호호 불다말고 똘똘하다며, 맘에 든다고 허허 웃으셨다.
밥을 먹고 사냥용으로 개조 된 갤로퍼를 탔다. 차에 타니 개, 멧돼지, 아저씨, 오래 된 차 냄새들이 섞여서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살짝 찡그려졌던 미간은 5분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펴졌다. 15분쯤 달려 산과 논만 나오는 동네로 접어들었다. 차 한대 겨우지나가는 시골 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잘 잡어~ 쬐끔 움직일겨~" 왠지 아저씨만 다니실 것 같은 비포장 시골길을 갤로퍼가 좌우로 댄스를 추고 들어갔다. 쬐끔 움직인다는 아저씨의 말에 신뢰가 떨어지는 댄스였다. 마지막 언덕쯤 다다랐을 때 개들 짖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언덕에서 자동차 엑셀을 쎄게 밞아 부웅하면서 올라가니, 황토를 깔고 평지로 다듬어 놓고 근사하게 지어진 사냥개들 견사들과 사냥 장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저씨가 모두 다 만든 아지트라고 하셨다. 솔직히 처음 갤로퍼에 타고 맡은 냄새 때문에 개들도 대충 키우겠다 싶었는데, 근사한 아지트를 보니 아저씨의 반전 매력이라 속으로 조금 죄송해졌다. 새로운 세상에 온 것 같아서 "와..." 만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개들 보러 왔으믄 개를 봐야지, 개 보자" 하면서 견사로 안내했다.
240kg쯤 되는 멧돼지들을 사냥하는 개들은 어떤 개들일까 가기 전에 상상을 했었다. 야성이 가득차고, 힘이 넘치는 그런 뭔가 와일드한 느낌 그런 상상을 했다. 상상은 실망보다는 의외의 현실에 봉착했다. 산에 올라가보지 않았으면 사냥개로 믿기 힘든 개들이였다. 크기들도 중형견 정도에 상당히 귀여운 외모도 있었고, 그냥 동네 누렁이 같은 개들도 있었다. 그 중에 사냥개 팀에 리더를 맡고 수백마리를 사냥해봤다던 '대장이'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제일 작았다. 15kg도 안되보이는 크기에 몸이 무척 가벼워서 아주 잘 뛰게 생겼었고, 짙은 갈색 털에 선 귀, 말린 꼬리를 가져서 진돗개 비스무리하게 생겼었다. 대장이는 라이카라는 러시아 사냥개와 핏불 테리어라는 미국 투견의 믹스종이었다. 꼬리를 치는게 아니라 거의 엉덩이를 치며 애교를 부려댔다. 쓰다듬다가 허벅지를 만져봤다. "너 사냥개 맞구나" 애교 뒤에는 주사바늘도 안들어갈 것 같은 허벅지 근육이 있었다.
그 대장이를 도와 돼지가 빠르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는 역할을 한다는 대장이랑 비슷하게 생겼지만 큰 귀가 나풀대는 나비, 동네 황구가 숯에다 굴러 거무틔틔해진거 같은 리타. 세마리는 모두 같은배에서 나온 개들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대장이를 보면서 '야가 1번, 야가 2번, 야는 3번' 하셨다. 이 세마리가 찾아서 멧돼지가 도망 못가게 포위해주면, 마지막에 가서 마무리 한다는 탱크와 타이슨을 보여주셨다. 대장이 같은 개를 썰개라고 하셨고, 탱크, 타이슨 같은 개를 뒷개 혹은 물어빵이라고 하셨다. 탱크와 타이슨은 하얀점 위치만 다른듯 하고 똑같이 생겼었다. 외모만으론 내가 상상하던 사냥개였다. 새까만색에 앞선 대장이, 나비, 리타에 비해 골격이 1.5배 이상 확연히 컸다. 아마도 일어서면 당시 165cm 쯤 됐던 내 키를 단숨이 뛰어 넘지 싶었다. 크긴 했는데 어째 영 하는 짓이 애교를 부리다가 물그릇에 자기 발을 계속 빠뜨려댔다. 힘만 쎈 바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어딘가 와일드하고 쉽게 길들여지지 않은 이미지를 떠올렸던 것과 달리 친근감 있는 모습을 보자 되려 "진짜 이 개들이 사냥을 한다고?" 싶었다.
털보 아저씨는 사냥개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납다라고 예상하고 온 걸 아시는지, "사람 좋아하는거보니 신기혀? 사냥개들은 자고로 사람한텐 떡이어야혀. 암만 사냥 잘해도 사람 싫어하고 물고 하면 못 쓰는겨." 생각해보니 그랬다. 사냥은 흥분을 불러 일으키는데, 사냥감을 자기 혼자 포악해져서 물고 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설명은 알아듣겠는데, 여전히 이 개들이 240kg 멧돼지를 사냥한다는게 별로 실감이 안 됐다. 코털 아저씨가 다른 사람의 멧돼지 사냥을 따라가서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겠다는 소설을 쓰고 있던 찰나, "왔으니까 산에 한번 가야지?" 하면서 갤로퍼 뒷 트렁크를 열었다. 뒷 칸은 개들을 타기 위해 개조되서 넓직했다. 견사 문을 한 칸씩 탁 탁 탁 여시곤,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타" 한마디 했다. 부드럽지만 명확하고 당당한 말투였다. 대장이부터 시작해서 개들이 차로 향했다. 나비와 리타가 순서대로 타는 걸 보니 진짜 2번, 3번 표현이 제격이였다. 그 다음으로는 타이슨이 올라탔고, 탱크가 마지막에 조금 뺀질거린거 빼고는 다들 사냥개 체면을 살리며 차에 탔다. 사실 사냥을 직접 따라갈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털보 아저씨는 수원에서 진주까지 온 중학생의 뽕을 뽑아주실 모양이었다. '달려라아~ 고향 열츠아~" 아저씨는 차에 타자마자 나훈아의 고향역을 흥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뭔진 몰라도 신이나신게 분명했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