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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라피 Jan 01. 2023

훈련이 싫었던 훈련사

#.1 [훈련이 싫었던 훈련사]

 

“앉아, 엎드려, 기다려 기계처럼 저런거를 대체 왜 하는거지? 필요한가? 훈련 저런거 싫다.” 누가 알았으랴. 저 생각을 가진 아이가 직업을 소개할 때, 훈련사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됐을줄은.



 

쾌쾌한 체육관 특유의 냄새와 개들의 대소변 냄새가 섞인 그 중간 어딘가가 가득한 체육관에서 열린 ‘애견 대회’에 포스터를 보고 잔뜩 기대를 가지고 갔던 꼬마 아이가 처음으로 전문 훈련사와 세퍼트의 시범을 본 뒤 생각이였다. 농구 코트의 끽-끽- 소리가 날만큼 미끄러운 바닥에서도 훈련사의 신호를 놓칠세라 그 세퍼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동작을 명확히 수행했지만, 눈의 영혼이 없어진지는 꽤 오래 된듯한 눈을 가졌었다. 연신 마이크를 잡은 다른 사회자는 “개와 사람이 살아가려면, 이 정도의 고난이도의 훈련도 할 줄알아야...” 하는 멘트가 체육관을 웅웅 울렸다. 그 소리에 개들 다수가 위축 됐었는데 그 세퍼트를 훈련 시범을 이어갔다. 지금 돌아보면 그 웅웅 소리에 세퍼트는 안심을 한게 아니라, 모든 영혼이 나가 소리와 접촉이 안됐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훈련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은 단순히 그 세퍼트 때문은 아니였다. 그것은 수 많은 개들과 이야기 속에서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고, 이 의문을 풀어낸 시점에 글이 됐든, 말이 됐든 꼭 기록을 하고자 했었는데, 그것은 십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 이제야 제대로 운을 뗀다.

 

개들의 눈빛 속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던 그 시작은 나의 외가댁이자 진돗개의 고장 전남 진도에서였다. 덜커덩. 온갖 짐을 바리바리 싸든 어르신들 목포에서 진도로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포장, 비포장을 골고루 섞어 달리면, 동상이지만 왠지 반가운 진돗개 황구 백구가 지키고 있고, 옆으로는 파랗다 못해 검푸른 색의 명량해전이 일어났던 바다가 넘실대는 진도대교를 넘어선다. 약 6-7시간을 달려서 피곤함이 그 때부터 사라진다. 지나가는 풍경으로 진돗개들을 봐야 하니까 그랬다. 산이 낮고, 집이 옹기종기하며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 풍경이 그 때는 형용하긴 힘들었지만, 마음이 포근해졌었다. 그렇게 온 집중을 다해서 창 밖을 보다가 진도 시외 버스터미널에 내리면, 어르신들의 우렁찬 사투리들과 함께 진귀한 풍경이 있었다. 풀어진 상태로 자연스러운 진돗개들이 차분하다 못해 견생이 귀찮아 보일 정도로 터미널 여기저기에 누워있었다. 그 풍경을 보면 “진도에 왔구나”하고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였다.


진도 대교의 모습.



그 읍내에서도 동남쪽으로 차를 타고 20분은 들어가면 진도 지도에서도 가장 동남 쪽 끝에 위치한 도목리, 거기에서도 가장 끝 주황색 지붕 집 앞, 외할머니 댁에서 내렸다. “아따 내 아들놈 왔는가” 반가운 소리로 손주를 맞아주시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마치고 짐을 풀어 해친 뒤, 진돗개들과 인사를 나눈다. 전국에 수십만마리는 될듯한 이름을 가진 백구는 허락없이 들어오는 사람들에겐 경계선을 쳤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무장 해제 되어 몸을 맡겨주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지만, 잘 지냈는지 그간 안부를 묻고 그렇게 개학 전날까지 진도에서 보내던 시간을 9살때부터 23살때까지 했다. 고3이 되고, 재수를 하던 해에도 진도에 가야겠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누군가 나를 붙잡고, 너는 진짜 개에 미쳤다고 했다고 딱히 반박할 것이 없었다. 그 당시 또래들이 좋아하던 게임보다 PC방에 가면 나는 개와 관련된 사이트를 보는게 낙이였으니, 집집마다 최소 한 마리 이상은 풀어서 키우는 문화가 있었던 진도는 천국 그 자체였다.


진도의 개들은 자연이 운동장이였다.


 

“개를 풀어 키운다고?” 지금 생각하면 뉴스에 자극적인 제목이 버무려진 개물림 사고 뉴스가 넘쳤을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사고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의 풍경을 가졌다. 시골 길에 보이는 길고양이들의 모습을 개들이 하고 있었다고 표현하면 가장 적절하지 싶다. 개들을 풀어 키우면 개들은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신들만의 룰을 정한다. 강아지 때는 그걸 몰라서 폴랑폴랑 돌아다니가다고 엄마 개, 아빠 개가 동네의 룰을 알려주듯 데리고 다닌다. 진도는 담이 낮고 대문이 없어 개들도 사람도 네 집이 내 집, 내 집이 네 집 같은 묘한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개들은 기가막히게 5개월쯤되면 남의 집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않았고, 그 개들은 집에서 행동하고 동네 마을 회관 앞에서 행동이 달랐다. 마치, 우리 집 구역에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호롭게 지낼거라는 무언의 약속을 한거처럼. 그 광경을 보고 있으면 누가 툭-하고 개를 알기 위한 비밀 노트를 던져주는 기분이였다. 그런 광경을 통해 내가 알아낸 비밀 노트 글귀는 개들에게 ‘영역’이란게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였다. 그것은 두꺼운 동물행동심리학 전공 서적 어딘가에 있는 개의 영역에 대한 설명보다 피부로 와닿고, 개들 스스로 생각하고 그들만의 소통이 있구나 하는 것이였다.

 

이런 마을에서도 외가의 ‘백구’는 아주 유명했다. 백구는 암컷중에서도 작은 체구였지만, 따로 헬스는 배우지 않았지만 건강한 몸을 가진 자연인처럼 몸이 굉장했다. 유명해진 이유 중에 이런 외모도 외모였겠지만, 하는 행동이 보통 내기 개가 아니라는 것이 암암리에 퍼져나갔던 것이다. 운송 수단이라곤 경운기와 포터가 암묵적인 공식이였던 곳에서 검은 세단을 끌고 가끔 육지에서 사람들이 왔다. 영화 옥자를 보면 생각나는 꼭 그 장면처럼, 그냥 같이 잘 살던 우리 식구인데 육지 사람들은 백구가 어떤 의미로든 값어치가 있었기에 그렇게 찾아왔었다. 그 때마다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가족이라며 백구를 보내지 않았고, 그 믿음 덕인지 방학 하기 전 안부 전화속에 백구 잘 있냐는 이야기는 백구가 어딘가로 갈까하는 걱정보단 보고 싶은 마음 정도로 그쳤다. 대체 어느정도였는데 서해안 고속도로도 뚫리지 않아 국도로 돌고 돌아 들어와야 하는 시골 촌동네를 들어왔었을까?


 

백구는 대단한 사냥 솜씨를 지녔다. 이 백구는 무자비하게 동물을 사냥하거나 하지 않았고, 새끼 동물들은 눈앞에서 잡을 수 있어도 잡지 않았다. 네발달린 동물을 넘어 꿩도 매복해있다가 순식간에 덮쳐서 사냥했다. 그리고는 마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자랑하듯 신발장에 가지런히 정돈해두었다. 꿩 한 마리를 들어보니, 생의 온기가 느껴졌던 기억이 선명하다. 과거에 진도에서는 사냥을 잘하는 진돗개를 소2마리와 바꿨다고 하니, 찾아올만도 했다. 백구의 진가는 사냥에서가 아니였다. 앞집 옆집에는 고양이들이 살았는데, 외할머니께서 “백구야 저짝에 고양이들은 이웃이니껜 잡지 말그라잉” 말그대로 대화를 건냈다. 백구가 그 이야기를 알아들었는지 백구가 되보진 않아 모르지만, 진짜 그 고양이는 백구가 무지개 다리를 건널 때까지 일절 건들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 백구에게 그 외할머니의 바람이 전달 된 것만은 분명하다. 동물행동심리학 서적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백구는 알려주었다. 성격이 급하고 포악한 개들은 사냥을 할 수 없으며, 차분하고 사람 말을 잘 알아듣는 개가 사냥을 한다는 것. 무슨 사고만 나면 사냥 욕구가 포악한 개를 만드는 것이라 묘사 되는데, 타인, 타견과 어울리는 것과는 전혀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되어 공부시켜주던 게 백구였다.

 

위잉~ 달달달달달. 그런 백구가 가장 동네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경운기를 몰고 나갈 때였다. 여름이 되면 멸치 어업에 나가기 위해 외할아버지는 경운기 앞 모터 어딘가에 쇠꼬챙이 같은 것을 끼우고, 있는 힘껏 돌리셨다. 그럼 윙, 위잉, 위이잉, 하면서 이내 달달달 하면서 시동이 걸렸다. 앞산에 올라서 고라니들과 달리기 시합을 하던 백구가 외할아버지의 힘찬 경운기 시동 소리를 들으면, 백구는 수풀을 헤쳐서 바로 경운기 앞으로 왔다. 경운기를 호위하면서 앞정서던 백구가 기다렸던 시간은 날씨와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경운기를 선착장에 세워두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배를 끌고 나가시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백구가 하얀 실타리 뭉치 같은 강아지들을 낳았을 때면, 집에 와서 젖을 주고 다시 선착장에 가서 경운기를 지켰다. 한번도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는데 그걸 지키는 개처럼.

 

그 시간을 녹화 해둔 것은 없지만, 하얀 백구의 까만 등줄기로 경운기 밑에서 또아리를 트고 기다렸던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선천장에서 들어오는 각기 들어오는데 그 시간이 각기 달라도, 백구는 우리 배를 알아보고 선찬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강아지처럼 날 뛰었다. 점잖고 내공이 가득해보이는 백구가 유일하게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였고, 그 장면을 외할머니는 백구 얘기를 하면 “을매나 기다렸을랑가. 꼬랑지를 그렇게 쳤당께” 하며 항상 하는 장면이다. 하늘이 오묘하게 핑크빛과 주황빛으로 섞여 물들 무렵, 경운기의 볼륨이 미세하게 점점 커진다. 그 때 작은 방에서 문을 열고 쳐다보면 꺾어진 골목에서 백구가 먼저 등장하고 뒤 따라 경운기에 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손을 흔드셨다. 개와 인간이 함께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꼽아보라면, 나는 주저없이 이 장면을 뽑을 지도 모른다.


유일한 백구 사진.


 

“든든한 리더가 돼라”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훈련사는 없을 것이나, 나는 백구에게 의지했고 백구는 나를 정말 잘 리드해주었다. 첫 손주인 나를 귀하게 여기셨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백구를 믿고 산에 같이 다녀오라 했으니, 백구는 그 시대에 시골 어르신들의 대부분이 생각하는 단순한 가축의 개가 아니였던 것임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백구와 함께 산, 바다, 들을 다니고 산을 두 개 넘어 건너 동네로 다녀오기도 했다. 동네의 산을 익히 알고 땅에서 날 듯 뛰어다니고 싶었던 백구가 항상 나에겐 보폭을 맞추고 나의 걸음 걸이에 맞춰주었다. 동네에 못 보던 개가 오면 그 동네의 개들이 경계를 했는데, 직접 싸우지 않아도 백구의 기세에 눌려 근처도 못 오는 개들이 있었다. 대화라는 것을 꼭 인간의 말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백구와 나는 수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때까지 나는 당연히 개라면 이렇게 같이 사는 줄 알았다. 그것이 아주 대단한 것임은 세상에 이런일이와 동물농장에 영리한 행동으로 나오는 그 어떤 개들보다 백구가 영리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던 시점부터였다.



 

백구에게 나는 앉아, 엎드려, 기다려, 이리와, 따라 같은 기본 교육을 시켜본 적이 없었다. 물론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께서도. 산 어딘가에서 부르면 나에게 달려왔고, 그 흔한 보상으로 간식 하나 없었다. 앉아 한번 할 줄 몰랐지만, 먹을 것을 들고 있어도 나를 넘어뜨리게 달려든다던지, 짖는다던지 행동은 백구에게 어색한 행동들이였다. 행동, 명령어, 강화, 소거 같은 전문적인 이론과 실기를 통한 학습은 없었지만 백구는 다 알아 들었다. 백구와 나는 그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우리 백구에게 팔이 조금 안으로 굽는 걸 펴보고 본다면, 동네의 개들도 문제 없이 사람들과 숨쉴 수 있었다. 읍내 어귀에서 바둑을 두시며 옆에 엎드려 있던 개들. 선착장에서 멸치, 굴 작업 하실 때 밞지 않고 돌아다니던 개들. 집에 손님이 와서 짖을 때도 어르신들 한 두마디에 유지되던 개들. 그것이 나는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당연한게 아니였다. 거짓말처럼 세상에 많은 것은 무언가를 깨달을 때 쯤 잃는다.

 

백구의 소중함을 깨달았을 때, 외할머니의 전화가 그랬다. “백구가 쥐약을 먹고, 떠나부렀다. 우짜냐, 우리 백구. 갸는 식구다 식구.” 나는 그 전화를 받고 눈물이 흐르는게 아니라 쏟아져 나온다는 걸 느꼈다. 원래의 눈물이 졸졸 흐르는 물이라면 수도꼭지를 누가 확 튼거처럼. 진도에서 마을 이장이 바뀌었는데 평소 개를 싫어했다고 한다. 명분은 쥐가 많아서 쥐약을 놓는거라 했지만, 그 당시 집집마다 진돗개들이 쥐를 잡는 것은 귀신 수준이였기에 그것은 명분이 되지 못한다는 건 진도에 1주일만 살아보면 알 수 있는 말이였다. 그 똑똑한 백구도 쥐약은 피해가지를 못했다.

 

 

그 시절 백구와 진도의 개들에게 느끼고 알았던 것들은 지금까지 책에서 본 개에 대한 이론서로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을 전문가가 되어서 더욱 알고 있다. “개가 뭘 알아?” ”개는 본능에 의해서만 행동하지.” ”개가 개지 뭐야” “개는 간식이랑 목줄 가지고 다 훈련 돼” “서열만 잡으면 게임 끝” 내가 백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행동 이론 속에 백구를 가뒀을 것이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기정 사실화 되는 분위기에서 백구 이야기를 했을 때 그 누구도 내 얘기를 믿지 않았다. "내가 좀 더 개에 대해 전문가가 되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지? 내가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해서 그 아이들을 기억해줄 수 있을거고" 그것이 훈련사가 되고자 했던 동기 중 하나가 됐다. 그 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어쩌면, 감사하다. 이제 그 이야기를 제대로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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