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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라피 Jan 05. 2023

교육을 거절한 훈련사

#3. [교육을 거절한 훈련사]


죄송합니다. 제가 그건 교육으로 못할 것 같아요.



훈련사인 내가 처음으로 교육 의뢰를 거절했다.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거절을 한다는 것은 길을 걷다가 도심 어딘가에 시멘트 사이에서도 피어나보려는 꽃을 밞은 느낌이다. 게다가 그게 처음이라면. 유독 뭐든 처음이라는 것은 엄청 큰 바위가 자리를 잡듯 기억에 박히고 빠지지 않는다. 그 박힌걸 겨우 잠깐 위치를 옮겨서 어딘가에 몰아둘 뿐, 그것이 꽤 강하게 박힌다는 것은 내가 교육 의뢰를 처음 거절했던 것이 선명하니까, 분명하다.




훈련사로서 교육을 거부한다는 것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일이라는 걸 얼추 짐작은 했지만, 마음에 바위가 하나 갑자기 들어찬 듯 꽉 막힌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은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알게 됐다. 그 느낌은 어김없이 저녁밥을 체하게 만들었다. 


저녁밥을 먹으려던 때였다. 

띠잉-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진돗개 공격성인데.. 사연이 좀 있어서요.. 혹시 이게 교육이 될까요? 가능하시면, 전화 상담 하고 싶습니다."


라는 문자의 시작과 함께 전화 상담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대면 상담보다 감정이 덜 느껴지는 2D 화면 속 딱딱해 보이는 문자 텍스트지만, 그 속에도 감정이 다 느껴진다. '다른 곳에서 방문 교육을 받았거나, 훈련소를 다녀도 안 됐거나, 깊은 사연이 있겠다'라는 생각이 문자와 함께 스친다. 경험상 보통 전화 상담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은 꽤 무거운 사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교육 예약을 하기엔, 일반적인 행동 교육보다는 자신의 사연이 무겁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교육 신청이 가능한 지부터 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지 싶다.


문자가 온 번호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쎄요." 똑같은 단어지만 억양으로 경상도 지방에 계신 분이란 걸 알 수 있는 중년 여성분의 전화였다. 핸드폰 너머 속 고민과 사연이 많은듯한 목소리 톤은 문자를 본 내 촉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네 안녕하세요. 문자 내용 잘 받아봤어요. 사연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그기 말하자면 좀 긴데에.." 대화의 운은 말하기 귀찮다는 느낌보다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기를 기다렸다는 느낌이었다. 경상북도 구미에 산다는 진돗개 설이(가명). 자신은 설이 보호자가 아니라, 본가에 살았던 개라고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자 전화기 너머 속 시간 타임라인은 설이를 처음 만났을 때로 같이 거슬러 올라갔다. 설이는 오빠 분이 운영하시던 택시에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에 유기된 개였다. 배짱이 두둑하다 해야 할지, 극악무도하게 잔인하다 해야 할지 상자에 강아지를 넣어 잘 키워달라는 쪽지와 함께 택시에 버린 것이다. 당장 블랙박스를 뒤져 찾아내고 싶었지만, 하얀 강아지가 먼저 들어왔다. 개를 키울 맘이 없었던 오빠분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은 상자 속에 낑소리 하나 하지 않고 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하얀 강아지 때문이었다. 차라리 버림받아서 위축되어있으면 모르겠지만, 조그마한 강아지가 살려고 하는 의지가 더욱 마음을 끌렸을지도.


그렇게 설이는 택시에서 집으로. 유기견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택시에서 낑소리 하나 안 냈던 거처럼 설이는 한번 짖지도 않고 듬직한 성격으로 컸다. 가족 중에서도 설이는 오빠를 가장 보호자로 생각하고 따랐고,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잠시 나가서 소변을 한번 보더라도 오빠분과의 산책이었다. 그렇게 택시에서의 첫 만남이 추억으로 자리 잡고, 가족으로서 시간이 많아질 때쯤. 


이 다음 이어질 이야기를 떼기 전,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보호자님은 감정을 조금 고른 뒤에 겨우 대화를 이어가셨다. 그 대화를 듣고 내가 뱉은 말은 "아..."였다. 우연히 받은 건강 검진에서 오빠분의 시간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무섭게 3개월이 받았다.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이었다.


문제는 그 시점부터 가족들과 매우 잘 지내던 설이가 굉장히 예민해지며 이빨을 드러내고 그것을 가족들에게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공격을 종잡을 수 없었지만, 가장 확실한 포인트는 오빠 분 근처로 오면 설이는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그 이빨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족 중에 아무도 오빠 근처로 가지 못했다. 실제로 개들은 보호자의 몸상태가 달라지면 알고 행동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람들은 의사의 말이든, 병명이 적힌 문서이든. 눈으로 보고 오빠분의 상황을 느꼈겠지만, 설이는 그런 걸 받아보지 않아도 무언가 안 것이 분명했다. 오빠분의 근처로 못 오게 하고. 지키려는 듯 행동을 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체크하듯 따라다녔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이전과는 대비될 정도로 너무나 설이의 태도가 확고했기에 몸이 불편한 오빠분을 대신하여 실외에서 대소변을 봤다는 설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는 것도 일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개들의 후각은 보호자의 감정은 물론 건강 상태까지 감지할 수 있다고 알려진 바 있다.


시간이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시는 오빠분이 데리고 나갈 순 없었기에 어찌 저지 줄을 건네어받으면, 오빠 옆에 있으려 하고 그 좋아하는 산책도 잘 나가려 하지 않았다. 집안에는 순식간에 그림자가 드리웠고, 아마도 오빠분의 시간이 3개월이라는 믿기지 않는 시간도 확연히 달라진 설이의 행동을 보며, 조금씩 실감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쯤 사건 하나가 터지게 되는데 오빠분의 방문을 연세가 지긋하신 아버지께서 여셨다가 설이가 그만 아버지께 이빨을 쓰고 말았다. 어르신들의 피부는 젊은 사람들과 달라서 그 상처를 떠올리고 표현하는데도 어려워하는 게 전화로 느껴질 정도였다. 


오빠분의 시한부 선고에 지칠 대로 지친 가족들에게 설이의 이빨은 종지부를 찍는 듯했을 것 같다.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점점 모두에게 아픔이 되는 그 상황의 무게는 내가 느껴보지 못한 무게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 이것이 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정말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선뜻 운을 떼기 어려웠고,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처음 받아보는 사연이라 생각이 필요할 것 같고,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고. 사실, 교육이 가능할지 여부보다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으시고 교육 거절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이란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공격성을 행동 수정하는 방법들에 대한 고민이나 다른 레퍼런스를 찾아볼 생각보다 생각을 거슬러서 올라갔다.


내 생각이 멈춘 곳은 2005년 진도의 여름이었다. 드륵- 틱- 조금 낡은 선풍기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시험 요정정리가 잘 외워지지 않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잠시 핸드폰을 잠을 재워놓았다. "민혁아" 내 이름을 부르던 학원 선생님의 부름이 왠지 이상했고, 학원 선생님의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건네어받았을 땐 아이처럼 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워낙 건강하셨고, 항상 같은 모습으로 나를 정말 사랑해주셨던 진도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믿기 힘든 소식이었다. 짐을 싸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눈물이 시야를 가로막아 눈앞이 뿌옇게 보였다. 얼마나 울음이 큰지 달리기를 계속 이어갈 수 없어서 달렸다가 멈춰 울었다가를 반복하며 집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학교 친구가 그 모습을 지나가다가 봤다는 사실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슬픔과 충격이 섞여서 휘감아 울며 달렸다.


물건 하나 바뀐 게 없지만 집안 분위기에 잿빛이 선명했고, 내 표정과 똑같은 가족들이 있었다. 바로 외할아버지께 마지막인사드리러 누구 하나 지체 없이 바로 진도로 향했다. 그날 진도로 가는 시간 내내 아무도 말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 가족에게 그 충격을 대신 설명해주고 있었다. 억지로 누군가 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 하지 못할 7시간을 말없이 갔다. 외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진도에 도착했고, 더운 여름의 장례식장의 온도는 내 기억에 차가웠을 정도로 낯설었다. "민혁이 왔냐" 하는 인자한 인사와 미소 대신, 영정 사진 앞 외할아버지 모습을 보고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장례식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왔다. 매년 올 때마다 아름 다고 따스워보였던 진도 작은 마을의 산, 바다, 들의 풍경이 그날은 유난히도 쓸쓸해 보였다. 그때 당시에 우리 진도 외가에는 많은 개들이 있었는데, 그중 까만색 털이 곳곳에 많았던 아리라는 개는 평소 거의 짖지 않던 개였다. 심지어 옆에 다른 개들이 짖는데도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라고 생각하는 거처럼 행동했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에는 아예 다른 개가 된 거처럼 침에 피가 나올 정도로 짖어댔다. 나는 아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는데 무언가를 보고 짖는 게 아니었다. '반려견 행동학'에서 나오는 경계성, 방어성, 공격성, 요구성 짖음 모두 아니었다. 아리에게 조용히 해, 그만 짖어라는 말을 그날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개가 아는 갑다.



하는 어르신들 말은 나를 수긍시켰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아린 거짓말처럼 여느 때같이 또다시 전혀 짖지 않았다. 아리의 행동이 엄청나게 놀랍지는 않았던 건 진도에서 어릴 적부터 봐온 개들은 인간이 모르는 것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펜스가 없고 바로 마을 끝에 마당이 있는 주황색 지붕의 외가댁 집. 그곳에 차가 들어서면 꼬리를 쫙 세우고 살짝 긴장한 듯 백구가 다가갔다. 백구는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가족이면 짖지 않았고, 사무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면 흡, 힙하면서 바람이 잔뜩 섞인 가벼운 짖음, 우리 외가 식구들이 티는 안내도 싫어하는 사람이 오면 그렇게 짖었다. 사람 눈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태풍이 오기 전 날이면 개들은 안전히 머물 곳을 찾아다니고 마당으로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나온 지 100일도 안돼서 이것저것 물어뜯고 방방 거리던 강아지들도 아빠, 엄마를 따라서 차분하게 숨어있었다. 동네 진도 사람들은 개들 움직임을 보고 하나둘씩 그물이나 어망을 실내 창고로 들이곤 했다.


몇 없는 아리의 사진.


"개들도 다 안당께. 알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당연한 듯 이야기했던 것들이, 개에 대한 수십 권의 책, 수백 개의 웹사이트, 전문 학사 과정에서도 설명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땐, 내가 겪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날 슬퍼 보였던 아리의 짖음, 아무 말하지 않아도 알던 백구의 행동, 개들이 먼저 느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행동은 나에게 무얼 알려줬을까. 훈련사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면 참 아이러니 할지 모르겠지만, 개들의 행동은 교육으로 모든 게 설명되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개의 행동 모든 것을 교육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현대 반려견 교육 이론에 가장 주축이 되는 행동 이론을 만든 학자들은 어떤 행동의 원인은 '경험' '학습' 때문에 생긴 행동들이라고 했고, 개의 감정이나 보이지 않는 내재된 것들에 대해 배제하는 언급을 많이 했다. 


과연 그럴까, ‘경험' '학습'이 개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나, 개들의 행동은 '경험' '학습'이 아니어도 일어나는 일들은 무수하게 많은 것을 먼저 느껴오고 사례들도 많다.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감각이나 내면의 세계는 인간이 최대한 접근하지만, 전부 다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개들의 행동을 더 하게 만들거나 덜 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쉬워지니까 그런 것일까. 보통 그래서 하게 하는 방법은 간식을 주고, 못하게 하는 방법은 단순하게 힘으로 누르는 방법이 쉽고 대중적이다. 


개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가족을 잃어 슬퍼하는 개를 조용히 시킬 수 있는 교육은 없다. 보호자의 몸이 변하여 불안해지는 개에게 무얼 가르쳐줄 수 있을까. 뭔가 아는 듯 짖었던 아리, 말하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 알았던 백구, 보호자가 아픈 이후로 달라졌던 설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감히 다 손댈 수 없는 개들의 행동도 있다는 것, 개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간과 얽혀있다는 것이다. "설이의 오빠분의 건강을 설이가 알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운을 떼고, "죄송합니다. 제가 그건 교육으로 못할 것 같아요."라며 나도 느꼈던 교육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고, 교육만으로 다 해결할 수 없었던 개들의 행동 에피소드에 대해 설명드렸다. 



전화 주신 분께서는 되려 충분히 이해하셨다고 했고,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나에게 연신 해주시며 울먹이셨다. 설이는 내가 교육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설이의 행동은 훈련사인 내가 아니라, 보호자님을 낫게 해 줄 의사분이 먼저였을 것이다. 설이는 교육을 못 시켜서 그랬다고 보기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것을 노크하기 어려워하는 탓에 설이 이야기를 그 이후로는 연락드려 열어보지는 못했지만, 상담 때도 그랬듯 부디 잘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그때도 지금도 진심으로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다시 꺼내니 꾹 눌러놨던 바위를 다시 마주해야 해서 망설였다. 하지만, 그만큼 무겁게 느꼈던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이야기 확실히 할 수 있다. 때론, 훈련사가 가서 줄을 채우고 기다리게 하고, 간식을 주고, 행동을 가르친다고 될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기에 개들은 우리랑 함께 했었고,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반려견 교육 이론만으로 아리, 백구, 설이를 알고 다가갈 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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