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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엽 Jul 19. 2020

평화의 분쟁 사진가

책과 사진 사이 1 분쟁지역

나는 MILF가 장악한 투부란과 아브샤야프가 장악하고 있는 띠뿌띠뿌를 거쳐 말라위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 시각으로 부터 5시간이 흐른 뒤였다. 말라위에 도착하자마자 정부군 장갑차와 병력은 쏜살같이 자기 부대로 돌아갔다. 나는 캠프에서 마중을 나온 5명의 무장 MNLF 게릴라의 안내로 밀림 ‘하이킹’을 시작했다. 35도를 넘는 더위와 찌를 듯이 솟아있는 야자수로 햇빛마져 스며들지 않는 밀림 속에서 2시간 가까이 곤충과 수풀을 헤치고 다녔다. ‘내가 안전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오직 ‘알라’만이 알고 있었다.


내 나이 29살이었고, 사진을 직업으로 삼은 지 4년째, 결혼한지는 1년차 되던 해였다. 다니던 회사의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르포 전문 프리랜서 사진기자를 선택한 해, 주저없이 모은 돈을 탈탈 털어 분쟁지역으로 떠났다. 아마도 다큐멘터리 사진가나 포토저널리스트를 업으로 삼으면서 분쟁지역 전문가 꿈꾸지 않은 청년은 없을 것이다. 제임스 낙웨이, 질 페레스, 크리스토퍼 모리스 등은 우상이자 양심의 징표였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심심찮게 전쟁터로 떠나던 선배 사진가들이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이는 드물었다. 무엇보다도 사진을 사줄 언론사가 부족했다. 게다가 그 분쟁지역이 우리와 정치 경제적으로 밀접하지 않았다면 더더욱 관심 밖이었다. 그 때문일까? 필리핀에서 돌아와서 한 주간지에 특집기사로 쓴 것이 전부였다. 노력에 비해 소소한 결과물이었다. 그것은 몇 해 후 동티모르 독립현장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외국 통신사와의 연결은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좀 더 공부를 하고 결과물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로 했다. 그래서 열린 전시가 <NO WAR NO CRY>였고, 동명의 사진집도 제작할 수 있었다. 


우리 사진계는 해외 분쟁지역 취재에 대해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주목 할 만큼 큰 지면을 할애하는 언론사도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분쟁지역 사진을 센세이셔널 포토저널리즘의 일부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사진가가 부재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며 주목할 만한 성과물을 계속 만들어냈다면 그에 대한 사진계의 평가도 달랐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포토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이들 역시 ‘하드 포토저널리즘’ 사진을 실어주는 매체가  줄어들긴 마찬가지지만 꾸준히 단행본 책을 통해 사진과 글을 발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현지에서 리포팅은 일본 사진가들의 장점이기도 하다. 서구 사진가들에 비해 세계적인 상을 수상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이는 서로 갖고 있는 사진 미학적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우리는 미려한 이미지를 쫓는 서구식 분쟁사진을 취하지만 그만한 시장이 없어 지레 그만두고 마는 것이다. 나 역시 2000년 이후로는 더 이상 분재지역으로 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의 청년 사진가들이 이상을 포기 할 필요는 없다. 분쟁 지역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딜레마를 온 몸으로 부딪치며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래서 분쟁지역 전문 사진가를 꿈꾸는 청년이 있다면 제임스 낙웨이의 <인페르노> 사진집을 보는 대신 이 책을 일독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오늘의 세계 분쟁> (김재명 저, 미지북스, 페이지 580, 판형 A5, 148*210mm, 정가 20,000원) 이다. 필자는 신문사 기자 출신으로 사진이 전공은 아니다. 마흔 넘어 국제정치학이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신문사를 그만 두고 미국으로 떠나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어 귀국 뒤 국민대학교에서 「정의의 전쟁이론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프레시안」의 기획위원으로 일하면서 성공회대학교(겸임교수)와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 필자가 지난 십여 년 동안 세계 15개 분쟁 지역을 취재하며 써 내려간 전쟁과 평화론이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내전, 테러리즘의 본질적인 이해와 사건, 해결 방안 등을 담은 책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분쟁지역에 가서 얻어 올 것은 자극적인 살육의 이미지가 아니다. 수잔 손택에 의해 그리도 비난당하고 그래도 싼 저열한 포토저널리즘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전쟁에 대한 올바른 철학을 갖추고 평화를 주장하는 분쟁 사진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찍히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사진가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 후배들 중에 그런 사진가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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