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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꿈 Feb 17. 2021

여행에서 가져와 내 삶을 물들이는

멋진, 기막히게 멋진 여행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체크아웃하고 집으로 가는 길,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한적하고 아담한 해변이 보입니다. 아는 사람만 찾는 캠핑 장소인 듯 서너 대의 텐트와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보입니다.


“여보, 우리도 저기서 테이블이랑 의자 놓고 좀 있다 갈까?”


짐 되게 뭐 하러 챙겼냐고 했지만, 남편이 부랴부랴 챙겨 들고 온 야외테이블과 의자가 생각이 났거든요.

남편은 바로 차를 돌려 주차를 했고 우리는 트렁크에 실어놓은 짐들을 꺼냈습니다. 야외테이블과 의자, 주전부리와 음료가 든 가방, 강아지에게 필요한 용품이 든 가방, 책과 지갑과 필기도구가 든 나의 가방, 간단히 있다가 오자고 했지만 꺼내 보니 짐이 제법 됩니다.


누가 뭘 하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우리 네 식구는 저마다 자기가 들 수 있는 짐 몇 개씩을 챙겨 들었습니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내리막길 끝에는 차량 진입을 막는 쇠사슬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 손엔 접이식 의자와 가방, 다른 손에는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게다가 긴치마를 입은 내가 잠시 망설이자, 둘째가 강아지 줄을 쇠사슬 아래로 빼주었습니다.


가벼워진 한 손으로 치마를 걷어 올리고 쇠사슬을 무사히 넘어 이번에는 모래밭을 만났습니다. 발이 폭폭 빠져 걷기 쉽진 않았지만, 파도가 보이는 자갈해안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텐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우리 가족은 일사불란하게 테이블을 펴고 의자를 펼쳤습니다. 간식이 든 가방을 올려두고, 그 사이 큰일을 치른 강아지의 응가를 배변 봉투에 담았습니다.


“아, 이제 앉아서 쉬자.”


남편은 자리에 앉은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깁니다. 그런데 그때,


“엄마, 비와~.”

“응?”


자리를 다 펼치고 이제 막 앉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옆을 둘러보니 한쪽에서는 텐트를 걷고 있습니다. 쉽게 그칠 비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안 되겠다. 다시 걷자.”


펼쳤던 의자와 테이블을 접고, 가방을 들고, 다시 자갈이 깔린 해변과 모래밭을 지나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트렁크에 짐을 넣고 차를 타니 그 새 빗줄기는 꽤 굵어져 타닥타닥 차 지붕 위에서 노래를 합니다.   



마티스 더 레이우 지음 | 그림책공작소 | 2016년 02월 25일 출간

  

한 남자가 나무집 창가에 앉아 숲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떠나볼까?”     

남자는 자신이 살던 나무집을 뜯어내어 아주 기다란 다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다리를 짚고 성큼성큼 숲을 걸어 나가지요. 남자의 여행은 흥미진진합니다.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고,  원숭이와 친구가 되기도 하지요. 나무다리가 잘릴 뻔하기도 했지만 친절한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납니다. 환상적인 달빛 풍경 아래 마법처럼 달콤한 잠을 자고 신기한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요.  그리고 여행을 끝낸 남자는 자신이 살던 숲 속으로 돌아와 나무다리로 다시 작은 집을 만듭니다. 처음 그 모습처럼 남자는 창가에 앉아 이렇게 말합니다.     

“멋진 여행이었어!”     

남자의 처음과 같아 보이지만 다른 것이 있습니다. 첫 장면과 달리 남자의 집 벽은 여행지에서 찾은 색들로 알록달록 물들어 있지요. 여행에서 남자가 가져온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이 남자의 세상을 다른 색으로 변화시켰을까요?             




다시 저의 여행으로 돌아오면,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고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푸하하하하하~”

“아, 웃겨. 어쩜 우리가 딱 앉자 말자 비가 와?”

“나는 앉지도 못했어. 사진 찍고 바로 짐 챙겼어.”

“하하하~ 아빠 넘 불쌍하다.”

“엄마, 나 이번 여행 진짜 마음에 들어.”    

 

‘내가 더 무거운 짐 들었어.’, ‘가기 싫어.’ 짜증스러운 말도 없었고, ‘실망이야’, ‘속상해’ 투정도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이번 여행에서 가져온 건 예상치 못한 상황을 기쁘고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마음이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따라 더 근사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낯선 곳이어서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일상에서 나를 꽉 조여 오던 것들을 풀어버리고 여유로워질 수 있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니까요.     

“우리 차 안에서 바다 좀 더 보고 갈까?”

“응. 음악은 틀지 말자. 빗소리가 너무 좋아.”


톡톡 톡톡 차 지붕 위에 빗소리가 음악처럼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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