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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무 Mar 01. 2021

아날로그 피난처 만들기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를 보고 달라진 일상

"한 세대 전체를 훈련하고 길들이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본 이후로 인터넷을 켤 때마다 IT 개발자들의 경고가 자꾸만 떠오른다. '빅브라더'가 되어버린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IT기업들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다룬 이 다큐는 막연하게 문제라고 생각해온 것들을 선명하게 해 주었다. 


그로부터 벌써 세 달이나 지났다. 그 사이 노트 2권을 다 채워 한장 한장 다시 읽어보다가 그때 적어둔 문장들을 옮겨 적었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더 오래 마음에 남겨두기 위해 내가 기억하기 쉬운 순서와 문장으로 다듬었다. 





그들은 내 정보를 채취해서 데이터를 모은다. 내가 관심 있어할 만한 뉴스들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그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게 하려고 연구한다. 내가 그 공간을 찾지 않자 그들은 이제 내 친구들을 인질로 데려온다. '어머, 네가 좋아하는 친구가 새 글을 올렸네. 궁금하지 않아?'


클릭.


'이런 뉴스는 어때? 너가 요즘 꽂혀있는 거잖아?'


클릭. 클릭.


나의 성실한 '클릭'은 매일같이 분석되고 연구되어 점점 더 발전한다. 어느새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가 탄생했다. 그 존재의 이름은 알고리즘. 나는 알고리즘의 세계를 알지 못하지만, 알고리즘은 나의 세계를 꿰뚫어 본다.


그러던 어느 날, 몹시 외롭고 슬픈 날에 '그 누구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근원적인 고통에서 작은 위로를 받게 된다. 그 이후론 불편하거나, 외롭거나, 불확실하거나, 두려울 때마다 디지털 젖꼭지를 찾게 된다.


클릭, 클릭, 클릭.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춰진 '정의'가 생겨난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제 그들은 나와 비슷한 성향의 집단에 광고를 보여준다. 수도세가 사용한 물의 양에 따라 세금을 내듯 기업이 가진 데이터 양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야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정보로 막대한 돈을 번다. 이들을 통제할 수단은 현재 없다.


한 기업의 성공을 위해 알고리즘을 만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업적인 이익'이 목표이다. 그들에겐 옳고 고름, 진실과 거짓은 중요하지 않다. 거짓 정보는 진실보다 회사에 더 이익이다. 자극적인 가짜 뉴스는 더 많이 클릭되기 때문이다. 진실은 지루하다. 그들에게 진실은 오직 '클릭'뿐이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채취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당한다. 그들에게 나는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컴퓨팅 노드일 뿐이다. 자동차의 기술이 겨우 두배 빨라지는 동안 그들의 기술은 전례 없는 속도로 빠르게 발전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생리와 두뇌는 전혀 발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스스로 회복할 능력이 있는가?

그런데 매트릭스를 자각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매트릭스에서 깨어나죠?


다큐는 이렇게 끝난다. 


유튜브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소개글 - 우리가 과연 더 큰 세상을 만나고 있는건지 의문이 든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인스타그램의 알람을 끄고 유튜브 계정에서 시크릿 모드로 바꾸는 일이 우선이겠지.


하지만 여전히 알고리즘이 내 마음의 가장 은밀한 미지의 영역까지 침범하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SNS에 의존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또 다른 노력. 


그래서 만들었다. '알람'과 '푸시'기능이 없는 아날로그 피난처. 

궁금한 것들을 잔뜩 적어 놓아도 그와 관련된 광고나 뉴스들이 뜨지 않는 물건. 

가장 내밀한 것들은 결코 그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은 나의 비밀.


바로 노트다.


나는 요즘 노트를 열심히 쓴다. 초등학교때 가죽 다이어리를 선물 받은 이후로 쭉 노트를 써왔지만, 노트를 만들어보기는 처음이다. 처음엔 노트바인딩 키트를 구입해서 만들다가 종이 질감이 너무 거칠어서 원하는 종이를 사다가 다시 만들었다. 노트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도구는 꽤 단순하다. 종이와 튼튼한 바늘, 본폴더, 코르크판, 송곳, 왁싱실, 커팅매트, 철제로 된 자와 가위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적고보니 생각보다 도구가 많네^^;)


<안녕 늘보씨>에서 구입한 노트바인딩 기본 키트



노트를 직접 만들어 쓰다보니 헤프다. 헤퍼서 좋다. 그만큼 곁에두는 생각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몰스킨 처럼 가격이 있는 노트를 쓸 때는 조금 하찮다고 생각한 글들을 써도 되나? 망설여져서 쓰지 못했는데 지금은 마음껏 쓴다. 반짝 머릿속을 스쳐 간 것들이 시들어 죽을까봐 늘 가까운 곳에 두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라도 적어 놓는다. 어떤 단어는 관심을 주면 씨앗처럼 싹을 트기도 한다. 자꾸 들여다 볼수록 더 잘 자란다. 

 

생각을 더 잘 붙들어 매는데 도움을 주는 몇가지 도구들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스티커와 떡메모지, 마스킹 테이프 같은 것들이다. 손바닥만한 공간이지만 그 어느곳보다 넓고 깊은 이 아날로그 안식처가 요즘 내가 가장 자주 찾아가는 곳이다. 




A6 크기의 수제노트


자르고 구멍 뚫고 실로 엮으면 끝


가장 쉬운 방법으로 바느질을 해보았는데 이거 은근 중독성이 있다


더 부드러운 질감과 미색의 종이를 쓰고 싶어서 내지는 두성종이 (80g), 표지는 켄트지(200g)를 사다가 다시 만들었다.



만들어서 남는 노트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편으로 선물해주고 있다.  


내친김에 스티커도 제작 - 책이나 영화, 칼럼 등 인상깊게 본 것들을 기록하는 노트다



모조지에 인쇄한 스티커 색이 몽글몽글해서 붙여서 쓰는 재미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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