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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무 Sep 13. 2021

일상의 작은 우주정원

식물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나의 첫 식물은 올리브나무였다. 

평화의 상징, 올리브. 그 이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코스트코에서 데려왔다. 창문도 없고, 햇볕도 바람도 통하지 않는 창고에서. '어디에 살던 지금 있는 창고보다 더 나은 곳에서 살겠지' 하는 마음으로 데려왔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빈 냉장고를 채우러 간 코스트코에 진열된 올리브나무는 식물의 필수 생장 요소인 햇빛과 바람을 차단당한 채 팔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가격리를 하며 잃어버린 당연한 일상 중에 가장 큰 상실감을 준 것은 자연과의 접점이었다. 하루에 1시간 산책을 하고, 파도가 있는 날에는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하는 나의 유일한 낙인 그런 일상 말이다. 나는 오늘치의 아름다움을 다 채워야만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매일 마음에 흔적이 남을만한 감동을 갈구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밥상 앞에서, 초록색이 많은 숲 속 산책에서, 햇빛에 반사되는 물가에서 그 감동이 채워진다. 가끔 물건으로도 채워질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감탄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고, 그 물건의 단점을 찾아낸 동시에 유효기간이 끝나게 된다. 


마음에 남는 감동은 곱씹을수록 힘이 나는 것들이었다. 사람과 자연.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이 두 가지를 지지하지 않는다. 이 여름날의 끝엔 잡초보다 불안이 더 잘 자랐고, 불안은 권력의 힘을 키웠으며 물음도 의심도 금지된 세상에서 모두가 단 한 가지 만을 외친다. 그건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종교 같아 보였다. 다들 그렇게 사는데 왜 너 혼자 진지하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기 위해 말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즈음 다 죽은 이름 모를 초록색 잎사귀에 새순이 났다. (나중에 찾아보니 디시디아였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 바짝 말라 보자마자 물을 주었는데 2주가 지나니 새싹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올리브에도 원래 있던 색과 달리 연두색 새 잎이 돋아났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할 무렵, 좋아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는 사실에 작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날 이후 매일 식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아마도 사람과 자연과의 접촉이 끊어진 커다란 상실감이 자연스럽게 흙을 찾게 되는 마음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맨손으로 흙을 만지고, 뭔가를 심으면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는 식물처럼 나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 낯설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새 잎을 내어주는 식물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다면 그 마음을 나도 갖고 싶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이 일찍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새 공기로 집안을 채웠다. 나보다 먼저 일어난 식물들을 위해 빨리 닫힌 창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화분 하나하나 손가락을 넣어 흙의 상태를 점검한다. 물을 준 식물은 식물 일지에 적는다. 선인장은 무른 곳이 없는지 햇빛에 비춰보고, 카랑코에의 곁순과 진 꽃대를 잘라준다. 몬스테라에 지지대를 세워주고, 알로카시아와 고무나무의 잎을 닦아주고, 응애가 생기진 않았는지 햇빛에 잎을 비추어 관찰한다.


공중 분무를 좋아하는 페페와 야자에 분무를 해준다. 줄기를 쭉~ 늘어뜨리며 자라는 디시디아의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자로 재본다. 몇 달째 뿌리만 내리느라 아주 천천히 성장하는 포인세티아의 흙에 곰팡이가 생기진 않은지 살펴본다. 폭풍성장 중인 무늬 아이비의 새잎이 몇 개나 났는지 세어본다. 새 잎은 신기하게도 털이 보송보송하다. 


몇 개의 식물을 키웠을 뿐인데, 집 근처의 화단조차 새롭게 보인다. 지난봄, 제주도의 작은 책방에서 구입한 책의 한 구절이 스쳐 지나갔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 카렐 차페크 <정원가의 열두 달>

 



(왼) 엄마 올리브나무 / (오)본체에서 가지치기해서 작게 키우고 있는 아기 올리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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