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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지 않는 말티즈 Mar 06. 2021

30대 후반 퇴사 일기 / 무료의 고마움

실속 없이 살던 나.

오늘 오랜만에 가족과 외식을 했다.

외식의 주제는 내 '생일'


사실 내 생일은 3주 전이었다. 3주 전, 회사 일이 너무나 바빴던 시기였고 축하할 시간도 없이 프로젝트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냈다.


가족들이 보기에 내가 너무 안타까웠는지 퇴사하자마자 내 생일 축하하는 자리를 잡아주었다.


누가 보면 웃기겠지만, 15년을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나이기에 생일 따위는 축하 같은 것도 없이 살았다.


외식을 마친 후, 동생네 부부는 다음 일정을 위해 떠났고 우리 아빠는 작게 하고 계신 회사 업무를 하기 위해 가셨다.


엄마와 둘만 남은 나는 나온 김에 뭔가 하고 싶어 졌고, 그때 엄마가 꺼내 든 한 초대권.


지금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 보단 많이 나아졌다. 그 정도로 정말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 가난이 지긋지긋했지만, 어느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가난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그런 스토리는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은 나에게 어쩌면 도피처였던 것 같다. 작은 집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고, 회사에서는 나름 커리어 우먼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일에 목숨을 걸 만큼 매달렸다.


그래서 그런지 저런 초대권이나 할인쿠폰, 세일 상품을 보면 내가 가난하다는 걸 자꾸 깨닫게 되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릴 때 고속터미널에서 좌판에 한 장에 5,000원씩 가끔은 1,000원씩 하는 옷 더미에서 골라 옷을 사던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돈을 벌면서부터 나는 쓸데없이 비싼 옷, 화장품 등등을 사들였다.


쇼핑을 하면 내가 마치 현실과 다른 중산층 집의 딸내미가 된 거 같았나 보다.


결국 퇴사 후 남은 건 비싼 옷뿐... 내 몸은 망가지고, 정신은 끊임없이 공허한 상황.


그래서 오늘 엄마가 꺼내 든 초대권을 보자마자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뜰한 우리 엄마는 신문에 끼워서 온 초대권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대권에 '조경, 정원 박람회'라고 적혀있었다. 엄마와 손을 잡고 박람회를 갔다. 솔직히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시되어 있는 꽃 사진도 찍고 화분도 찍다 보니 기분이 좋았다.


너무 가난했던 나에게 [무료]는 나의 현실을 일깨워 주는 단어였다. 하지만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지...


무료나 할인을 잘 사용해서 알뜰하게 사는 것이 훨씬 똑똑하고 오히려 경제관념이 있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아마 이해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밖에서 내가 가난한 걸 들키기 싫어 공작새 마냥 날지도 못하는 화려한 깃털만 가득 달고 다니며 살았다는 뜻이다.


물건이 나를 만드는 게 아닌데 말이다.


아직은 우울증과 불면증을 고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렇게 작은 것부터 내 잘못된 생각들을 고쳐나가면 마음속 공허함이 조금씩은 줄어들겠지...


초대권 하나로 깨달은 오늘, 조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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