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aramoi Jul 16. 2021

'골때리는그녀들' 단상

가족들은 하계 한국 휴가를 떠나, 나는 큰 집에 홀로 남았고, 이 상태는 앞으로 2개월 유지될 예정이다.  그 첫 주말, 일상적으로 '좋은 분들과 즐거운 라운딩'을 마쳤고, 길고 디테일한 샤워로 홀가분하고 정제된 몸과 마음 상태를 만들고, 이빠이 시야시된 맥주를, 멋진 독일제 1000CC 맥주컵에 담아 거실 탁자에 곱게 올려놓고, TV를 켰다. (=한국 프로그램이 잘 송출되는 인터넷 포탈을 연결하여, 나의 TV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도록 하였다) 


*독일제 맥주컵에는 500CC 사이즈가 없다. 미친 맥주의 나라. 맥주에 진심인 게르만 녀석들... 아니겠는가. 왜 맥주는 1000CC 이하로는 마셔서는 안된다고, 아예 그럴 수 없도록 1000CC보다 작은 잔은 아예 만들지도 않았단 말인가?...*


'골 때리는 그녀들'이 새로운 시즌을 시작했다는 텍스트 중심의 토막 기사가 (내가 언제 그 텍스트를 육안으로 식별했는지 모르겠지만), 떠올랐고, 바로 그 프로그램을 켰다. 이때까지 이 프로그램을 켠 이유의 95%는 박선영 때문이다. 그 절대자의 그 여유. 그 스타의 질주를 다시 확인하고, 그 스타의 팬덤에 100% 흡족하게 참여하기 위함이었다. (이 글과 상관없이, 이 목표는 이뤄졌고, 그 시점부터 완벽하게 박선영님의 팬덤이 되어부럿다. 선영님, 영접하였습니다. 사랑합니다. 십대 소녀들이 왜 아이돌 오빠들한테 쵸코파이, 치킨, 과자, 사탕, 영양제, 건강보조제 등을 정성스럽게 포장하여 보내는지... 백퍼 이해가 된단 말이다.)


동네 아마추어 동호회 프로그램부터 최근 허재가 참여한 프로그램까지 해당 종목의 비전문인이 해당 종목의 플레이어로 참여하여 재미와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은 종종 있어 왔는데, '골 때리는 그녀'들은 여기에 토너먼트/리그전이라는 스포츠의 핵심 중의 핵심인 요소를 버무려 넣어, 보는 재미와 개입도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마지막 회에서 액셔니스트 클럽을 이끌고 경쟁팀들의 경기를 관람하는 이영표의 표정은, 토너먼트/리그전의 핵심을 보여준다. 흡사 북산이 산왕공고와의 경기에 사력을 다할 때, 관중석에서 경기를 흥미롭게 관람하고 분석하는 해남고 선수들과 감독의 그것을 제대로 재현한다. (이 포인트를 정확히 연기해내는 이영표는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다.)


나는 왠지 불나방은 파랑이(=레블뢰) 프랑스 군단 같고, 노랑이 개벤저스가 한 국팀 같다. 개벤저스와 2차전을 앞두고 몸을 푸는 장면에서, 박선영은 여유있게 몸을 풀면서, 길지 않은 칼날 같은 분석 및 대응책을 선수들에게 주문하고, 여유있게 경기를 시작한다. 반면 개벤져스는 1패를 안겨준 파랑이 군단을 보는 것만으로 위축되고, 위축을 떨쳐내고 기어이 1승을 달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죽기 살기로 실현한다. 붕대를 감은 안영미의 감독은 왜 하필 황선홍인가?


안 질 것 같은 경기에서 지는 것이 축구다. 마지막 휘슬이 울려야 ' 아, 내가 진건가?' 혹은 '정말, 내가 이긴건가?' 망연히 깨닫게 되는 것이 축구다. (이 성질은 모든 스포츠 중에서 축구가 유일하고 강력하다유럽인들은 그래서 차별적으로 축구만이 스포츠이다. 라고 못 박는 것이다.) 박선영은 끝까지 자기가 질 수 있는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그녀를 봉쇄하는 게 이길 수 있는 실날같은 가능성을 그나마 높이는 것이므로, 신봉선은 공포를 떨쳐내고 끝까지 박선영을 막아내는 것이다. 신봉선이 승리에 기여한 것은 세 쿠션 먹어야 분석 가능한 것이나... 축구에서 승리 혹은 패배는 그렇게 세 쿠션짜리들이 모여진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스포츠는 룰에 갇힌 생존게임의 다른 말일 뿐이다. 경기의 결과는 승리와 패배, 지배하는 것과 지배당하는 것,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나누는 게 스포츠의 본성이다. 스킬이 우월한 자와 팀이 생존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이유 때문에  항상 스킬 우월자가 승리하는 것은 아닌 것이, 졌을 때/지배당하는 것은 끝장이므로 이때 약자는 최선의 몸부림으로 이를 극복할 계기를 항상 갖게 되기 때문이다. 스피릿이 발동한다. 결국 스포츠는 스킬이 아닌 스피릿이다. 


'골때리는 그녀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스포츠의 이 본질이다. 스피릿. 


이기고자 하는 진심이/스피릿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그녀들의 축구경기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것에, 사람들이 (2002년 이상으로.. 아마도.) 참여하고 감동하는 이유이다. 


또 다른 진심. 2002년의 축구스타들은 왜 이리 이 프로그램에 진지한 것인지... 마치 자신의 프로팀의 승리를 일궈내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것을 이 '골때리는 그녀들'을 위해 똑같이 쏟아내고 있는데, 이게 그녀들의 진심 위에 얹혀서 적잖은 심쿵 상승작용을 만들어낸다.


100% 동의하는 몇 가지 멘트와 장면.


-불나방 파란 깃발만 봐도 가슴이 떨린다는 신봉선의 멘트   


-안영미. 저 정도 부상이면 경기 끝나고 최소 몇 주 붕대를 감아둬야 하는 부상인데.. 경기중에는 그냥 자체 엔돌핀 공급받고 뛰는 것이다.


-신효범이 외치는 '화이팅'은... 음정이 너무 정확하구나


  #스포츠는_축구_골프는_저리가


매거진의 이전글 백일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