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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ramoi Jul 02. 2021

백일몽

정형돈과 기타

약 2주 전, 어떤 특별한 순간과 조우했다. 인생의 모든 순간이 특별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개인적으로 건 혹은 보편적으로 건, 좀 더 '특별한' 순간을 정의할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으로 봤을 때 특별했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순간적으로' 나에게 부여한 어떤 특정한 느낌(우울/그리움/기쁨/분노/사랑/즐거움이 그 순간에 딱 어떤 특정 비율로 섞여있던 그 느낌)은, 나의 인지의 영역 혹은 기억의 영역 어딘가에 묻혀있던 그 '노래'를 생각나게 했다. (아마 그리움/상념의 느낌이 70% 이상이었던,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다만, 그 특정한 느낌이 명확한 어떤 것이 아닌, 언덕 아래 살짝 숨은 채 풀잎 사이로 살짝 머리카락만 보여주는, 혹은 초가을 새벽녘 짙은 안갯속 너머에 서 있는 것 같은 어렴풋한 어떤 것, 이쪽 인지의 영역을 정확하고 좁게 핀포인트 해서 찌르지 못한 채, 두루뭉술하게 (한 점이 아닌) 인지의 계곡을 바람이 지나치듯 살짝 스쳐갔기 때문에, 


그 노래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은 채, 불확실한 음과 가사 일부만 2주 동안 간질간질하게 반복하고 있었다. 불행히 이런 일은 노래와 연관된 것 포함하여 인생의 많은 카테고리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최소한 나한테는 자주 발생한다.


 그 full set을 기억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어렴풋한 일부'는 2주 동안 자주 출몰하여, 기억의 끝자락까지 더듬다가 결국 실패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하게 만든다.  




어제.

그 순간의 특정한 느낌이 발생한 지 2주가 흐른 시점.

이쪽 인지영역에서 거의 포기하고 항복을 선언할 때쯤.

'어렴풋한 일부'도 인지영역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출몰하기를 드문 거리고 멈출 무렵.


특정한 느낌과 고통과 포기의 총괄적 물리적 주체인 '나'는, 유튜브를 보고 피식거리다가, 자신의 귀에 그 '어렴풋한 파트'가 얼핏 스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웃음기를 상실한 채 동영상의 그 파트를 타겟하여,


play/stop/back/replay

play/stop/back/replay를 반복하였고, 


드디어, 2주간 진행된 자신의 고통이 해결되었음을 확인하고 안도와 기쁨과 쾌락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동영상은 관찰예능이라고 불리는 장르에 속한 어떤 것인데, 뚱뚱한 두 남자, 정형돈과 데프콘이 관찰대상자로 등장하는 공중파 프로그램의 인터넷 동영상 버전이었다. 


'어렴풋한 일부'는, 정형돈이 대기실에서 심부름 간 파트너이자 일일 매니저인 데프콘과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아주 잠시, 정해져 있는 모든 대본과 대본 사이, 정말 순전한 정형돈 개인의 시간에, 자연인 정형돈이 반쯤 누운 상태에서, 소파에 걸쳐 올려있는 기타에서 불안정하게 D코드를 잡고, 오른손을 쭉 편 상태에서 엄지로만 기타 줄을 주욱 긁는 (어처구니없는) 순간, 입으로 거의 중얼거리듯 노래하는 순간, 안개 같은 어렴풋함이 걷히고 명확히 실체를 드러내었다. 


'D...이 G른..... 봄날 D에......꿈...처럼(Em)... 다가온...............' 


그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최근 가요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젊은 날 많이/자주 들었던 포크나 민중가요의 카테고리에 속한 어떤 것도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뮤지컬의 한 장면으로 씌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가 중얼거리듯 여자를 그리워하던 장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통의 주관은, 재빨리 형돈의 읊조림을 몇 번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고 텍스트로 옮겨적고(정형돈이 읊조린 것은 그야말로 대본에 없이 자연인이 아무 제재 없이 읊조린 것이어서 몇 번을 주의 깊게 반복해서 듣고 나서야 겨우 정확한 가사를 받아 적을 수 있었다), 구글에서 검색해서, 그것이 '백일몽'이라는 번안곡이었으며, 이 노래를 2015년 한국출장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던 대한항공 011기 LA행 야간 비행기 D035 좌석에 앉아, 오랜만에 비행기 안에서 눈이 빨개지도록 ending자막이 오를 때까지 봤던 영화 '쎄시봉'에서, 트리오가 결성되는 장면에서 셋이 처음으로 입을 맞춰 부르던 노래였다는 것을 확인 해/내/었/고,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결국 이 잡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1. 정형돈이 음악 활동하는 것. 진실한 무엇이다. (단순 예능, 개그의 연장선이 아니다.)

2. 포기하지 않으면 잡아낼 수 있다.

3. 인지의 영역 저쪽에 묻혀있는 나도 모르는 수많은 것들은 나의 일부인가? 나의 외부인가? 나와 뭔 상관인가? 이렇게 주절거리는 나는 잊혀진 것들까지 포함한 총합인가? 아니면 잊혀진 것들 외 지금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의 순간적인 합치일 뿐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ziFNB0uhO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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