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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Aug 11. 2020

사표를 쓰며

- 지금 당장 퇴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동안 나는 회사 출근하는 게 즐거웠다. 


월요병이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출. 근. 하. 는. 즐. 거. 움. 이 내게는 상당했다. 출근을 해야 나만의 생활이 생기고, 회사에 매어있긴 했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고, 또 집안 살림이나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나는 한 번도 사표를 써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회사 출근이 고통스럽다. 자꾸 ‘사표’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고, ‘퇴사’또는 ‘은퇴’라는 키워드를 찾아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적인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는 자고 있는 아이 귀에다 대고 “엄마 회사 그만둘까?”를 속삭이다가 매번 타는 전철 시간을 놓치기도 한다.  


지하철을 빠져나와 스타벅스 어플을 이용해 사이렌 오더로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뿐더러, 회사가 가까워질수록 내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진다. 


이것은 어쩌면 순전히 코로나 때문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나의 직속 상사인 이사가 매출실적 저조로 해고되었고, 나는 본부장에게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디렉트로 업무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8시 30분까지 업무 보고라니?!


가령, 업계 동향이라든지, 새로운 바이어에 관한 것이나 향후 오더 전망에 관해서 주워들은 얘기를 보고하는 것인데, 코로나 때문에 바이어가 모든 업무를 멈추었기 때문에  사실 보고 할 것이 전. 무. 했. 다. 


이렇듯 매일 아침 보고를 해야 하니, 하루 종일 내일 무엇을 보고할지를 찾는 게 나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동종 업계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친한 협력 업체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물어봐도 달리 새로운 뉴스는 없었다. 마른 수건을 또 한 번 쥐어짜는 기분이랄까? 아침마다 모니터의 커서를 노려보며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사장님 추천도서 독후감이라도 써야 하나 날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한 번은 정말 보고할 것이 없어서 “오늘은 보고할 게 없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냈다. 본부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팀장들을 전부 쇼룸으로 소집했고, 이런 성의 없는 메일을 보낸 저의가 무엇이냐며 얼굴에 핏대를 세워가며 노발대발했다. 정말 보고할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인데……


내일 아침에는 또 무엇을 보고 해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나는 고심하다 사표를 써서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다. 사표를 쓰고 나니 왠지 퇴사가 부쩍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 퇴사하면 그것은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자발적 은퇴가 될 거였다. 하지만 정말로 할 말이 1도 없는 날에는 사표라도 보내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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