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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망고 Nov 05. 2020

남편이 사고를 쳤습니다.

- 꿈이었으면 좋겠지만 실화입니다. 

요 몇 달 남편의 행동이 이상했다. 


밤에 잠을 자다가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퇴근하고 집에 오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또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귓등으로 듣거나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회사 일에 바빴고, 또 일곱 살 딸아이를 돌봐야 했으므로,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평상시처럼 나의 일상을 살았다. 


올 상반기에 주식으로 돈을 좀 번 남편은 그 돈으로 해외 선물을 시작했다. 생활비에서 돈을 가져간 게 아니라 남편이 가지고 있던 돈으로 하는 거라 나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한 동안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선물 모의 투자를 하던 남편은 나에게 자금을 좀 대 달라고 했다. 자금만 있으면 승산이 있다고…… 함께 선물투자를 하는, 단체 카톡방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 밤마다 수천 달러씩 번다며 남편의 눈에도 승부욕이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다음 날 나는 오백 만원을 송금하며 다 잃어도 뭐라고 안 할 테니 이것만 하고 더 이상 달라고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남편은 대답 대신 돈을 벌어 신상 가방을 사주겠다며 의기양양했다. 


밤늦게까지 다양한 표정과 간혹 작은 환호성을 지르며 컴퓨터 앞을 지키던 남편은 언제부턴가 밤이 되어도 컴퓨터를 켜지 않았다. 나는 그냥 모른척했다. 애당초 남편이 선물로 돈을 벌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나는 남이 잃어야 벌 수 있는 불로소득을, 어쩌면 지극한 요행을 원하지도 또 바라지도 않았다. 


남편의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졌고, 또 다크 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정도로 수심도 깊어졌다. 나는 속으로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이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릴 참이었다. 괜히 물어보았다가 또 자금을 대 달라고 하면 곤란했으므로. 그것은 필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테니까.  








며칠 전, 저녁을 먹은 후 남편은 자진해서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그래 봤자 뭐 준 돈, 오백만 원을 다 날리기 밖에 더 했겠어?’ 

나는 내심 불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큰 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남편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신중하게 노력하며 살았고, 왕년에는 기타리스트로 잘 나갔던 사람이라 허세가 좀 있었지만, 또 어느 한편으로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매우 소심한 사람이었다. 

아이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고, 우리는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무슨 일 있어?” 

“일이 생겼어…..”

남편은 내 눈도 쳐다보지 못하고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뭔데?”

나는 짐짓 차분한 어조로 되물었다. 

“……”

남편은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선물로 돈 다 날렸다고?”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다 못한 내가 물었다. 

“어……”

“괜찮아. 그건 내가 줄 때부터 기대도 안 했던 거야. 대신 다신 선물한다는 소리, 주식한다는 소리는 하지 마. 길고 나는 사람들도 결국엔 다 잃는다고 몇 번을 말했잖아 내가.”

나는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냐며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남편이 내 팔을 잡았다.   

“그거 말고 또 있어……” 

“뭐… 뭔데?”

내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사기를 당했어……” 

갑자기 뒤통수를 한 데 맞은 것 같았다. 침착해야 했다. 나는 속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사…. 사기라니? 무슨?”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남편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다. 속으로는 별일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대출 사기를 당했어.”

“뭐? 대출은 왜? 뭐 하려고? 얼마나?”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날이 서고, 남편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선물로 잃은 돈 만회하려고…… 돈만 있으면 딸 수 있거든. 다른 사람들도 다 따더라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돈이 없잖아 그래서.”

“휴, 그걸 말이라고 해? 얼만데 금액이?”

나는 흥분을 가라 앉히고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 내가 천만 원까지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좀 커.”

“뭐?? 그래서 그게 얼마냐고?”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삼천오백 하고……”

“뭐라고??”

“친구들한테 빌린 돈 천만 원…… 다해서 사천 오백….. 할 말이 없다 내가. 며칠 전에 형 카드 값이라고 했던 것도 대출 원금하고 이자 낸 거야. 오늘까지 현*카드 하고 우*카드 두 군데에 원금이랑 이자 송금해야 해. 안 그러면 이자가 자꾸 불어난 데…… 정말 미안해.”

남편은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갚아야 할 금액을 줄줄이 내게 고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찬물을 한 잔 마시고 굴러 다니는 종이를 앞에 갖다 놓았다. 

“어디서 어떻게 빌렸는지, 왜 사기를 당했는지, 친구 누구에게 얼마나 빌렸는지 말해봐.” 

연필을 잡은 손이 바르르 떨렸다. 


뭉크의 <절규> 외에는 딱히 생각나는 그림이 없었다.             (출처:하이 파니)





남편은 대출 알선 회사에서 온 문자를 보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두 군데 카드사에서 대출을 받고, 대출 알선 회사에 송금한 후에 다시 돌려받으면 "이자를 2% 내려준다는 말"에 대출받은 돈을 알선 회사에 모두 송금했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보이스 피싱을 당한 것이었다. 송금 후 당연히 그들은 바로 돈을 빼서 날랐고, 그동안 잃은 돈을 만회해 보려고 친구들에서 돈을 빌려 주식과 선물을 했지만 결국에는 다 날려버렸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대출원금과 이자, 친구들에게 빌린 금액을 종이에 적었다. 나도 모르게 종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저 통장을 스치고 가버린 돈. 물건을 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을 한 것도, 주식으로 남아 있지도 않는 돈은 자그마치 우리 둘이 1년을 꼬박 벌어야 저축할 수 있는 돈이었다. 


남편은 연신 미안하다며, 자기가 너무 급해서, 또 뭘 잘 몰라서 그랬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자기가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며, 사고 후 검찰에 고소장도 접수는 했지만, 돌려받을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고 했다. 


결혼 후에 경제권을 쥐고 살림을 도맡아 하던 나는 남편에게 몇 번 얘기를 했었다. 혹시 돈이 필요하거나, 사고를 치면 즉시 나에게 얘기를 해 달라고. 혹시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몇 번이나 얘기를 했건만…… 




남편 덕분에,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은퇴가 1년 더 길어졌다. 탐욕에 눈이 먼, 무지한 남편을 둔 나의 업보랄까…… 주위에서 쉽게 돈을 버니, 남편도 후딱 돈을 벌고 싶었던 모양이다.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한 순간 탐욕의 늪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버린 것이다. 


부끄럽지만 무지한 남편의 불찰을 이곳에 고하는 이유는, 나는 그런 보이스 피싱에 절대 안 당한다고 장담하시는 분들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걸려들지. 조심하시라. 작정하고 두세 명이 달려들어 작업하면 아무리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려들고 만다는 것을. 특히 탐욕이 절정에 달했을 때 누군가의 표적이 되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드시 당하고 만다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었다. 




나는 어디다 말도 못 하고, 어떻게 빚을 갚아야 할지 계산기만 두드리며 마음이 매우 심란한 가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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