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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Feb 16. 2022

분유 깡통

정월대보름

10살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이가 약국 문을 힘겹게 밀고 들어간다

오랜 시간 동네에서 함께 산 약국 약사 아저씨께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 왔구나~"

아저씨는 나의 이름에 들어있은 오자를 따.. 항상 나를 부르실 때 오~라고 부르셨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을까? 우리 오~"


오~가 약국에 들른 이유는 분유 깡통을 얻기 위해서였다

기억은 자세히 나지 않지만 그땐 분유를 약국에서 팔았는지 재활용 수거를 약국에서 했는지

약국엔 다 먹고 버린 분유 깡통이 항상 몇 개씩 있었다

지금이야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함에만 가도 여 러크기의 깡통을 원하는 데로 주워올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깡통이 흔하지 않을 때라 약국이 아니면 멀쩡한 깡통을 구하기 힘들었다

오~가 깡통을 구하러 약국엘 들른 이유는

며칠 후면 다가올 정월대보름에 깡통 돌리기를 할

깡통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아빠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아저씨는 손님이 별로 없던 시골 약국에 놀러 온 꼬마 손님이 싫지만은 않은듯하여 오~역시 심심할 때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약국엘 가끔 들르곤 했다

그럴 때면 겉에 기름이 배어 나온 누런 봉투 안에 든 누룽지 튀김을 건네곤 하셨다

설탕을 무친 누룽지 튀김은 집에서도 흔하게는 맛볼 수 없던 간식거리였다

누룽지가 귀해서는 아니었지만 누룽지를 튀기기 위해선 많은 양의 식용유를 써야 해서 엄마가 잘해주지 않는 간식이었다

그렇게 아저씨의 심심함을 달래주고 말벗이 되어 한참을 머물다 얻어온 깡통은 정월대보름 저녁을 위해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서까래 굵기의 원통 나무에 깡통을 끼우고

못과 망치를 이용해 사방에 구멍을 뚫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옆부분의 구멍은 불규칙하게 여기저기 3센티 정도의 간격을 두고 뚫어준다

구멍을 너무 많이 뚫면 깡통을 돌릴 때 화력이 너무 쌘 관계로 안에 넣어둔 나뭇가지가 금세 타버린다

또 구멍을 너무 적게 뚫어주면 산소가 부족해

깡통 안의 불이 꺼져버리는 수가 생겨 그럴 때면 아이들의 놀림거리가 될 수 있다


옆부분의 구멍을 원통 나무에 끼운 채 깡통을 돌려가며 뚫은 후엔 밑바닥의 구멍을 뚫어줘야 하는데 이건 어느 정도의 난이도가 있는 부분이라 정교한 기술을 요하는 부분이다

쉽게 구멍을 뚫으려면 깡통을 그냥 엎어 높고 못을 이용해 구멍을 뚫면 되지만 여기서 남들과의 차별화를 두기 위한 나만에 노하우가 있었다


구멍을 밖에서 안으로 뚫어주면 쉽게 일을 마무리할 순 있지만 반대로 안에서 밖으로 구멍을 뚫어주면 깡통을 돌릴 때 화력이 정점을 찍으면

엄청난 화력에 의해 불꽃이 구멍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새어 나와 멋진 화력쇼를 펼쳐 보일 수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멀리서 보면 시뻘건 도깨비방망이의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멋지고 아이들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모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깡통의 깊이 때문에 못으로는 구멍을 뚫지 못하고 쇠 젓가락을 이용해 구멍을 뚫어줘야 한다

흑 바닥에 깡통을 놓고 조심조심 깡통의 안쪽에 젓가락을 갖다 대고 망치로 내려치기를 30여분..

드디어 깡통에 구멍 뚫기가 완성되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깡통을 올려본다

아직은 쌀쌀하지만 봄의 길목에선 태양빛이 깡통의 구멍구멍 사이를 뚫고 얼굴을 비춘다


마지막으로 깡통의 윗부분 양옆에 구멍을 뚫어

가느다란 철사 여러 겹을 겹쳐 끊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맨다

깡통을 들고 손을 아래로 내렸을 때 깡통이 땅에 다을 랑말랑 할 정도로 철사 끈 높이를 조절하여

여러 번 시범운전을 해본 후 마무리해준다


며칠 후면 돌아올 정월대보름


그렇게 기다려지고 설레던 마음을 느껴본지가 너무도 오래된 듯하다

옛날의 그런 순수했던 마음을 다시 또 느낄 수 있는 날이 올까?


깡통 돌리기 하나에도 밤새 웃음꽃을 피우던 그때가 그립다

깡통을 함께 돌리던 동무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코 주변에 뭍은 검은색 숯자욱을 놀려대며 밤새 돌아다니던 그때가 생각난다

분유 깡통을 구하지 못해 페인트통을 들고 나와

무겁다며 징징대던 친구도 그립다

대보름날 밤 잣불을 켜며 한해의 운수를 보던

할머니도 보고 싶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간인데

왜 그리도 그 시절이 그리운 건지...

지금의 내 모습은 많이 변하였지만

정월대보름 둥근달에 비칠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려 보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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