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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Oct 18. 2022

군 입대 한달만에 돌아온 아들의 소포

28사단신병교육대

한달 만에 군대 간 아들의 소포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의 물건을 받아보고 눈물이 났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세상이 많이 변해 요즘은 군입대할 때도 핸드폰을 가지고 입대하는 부대들이 늘어난 덕일 수도 있고

소포 박스를 붙였다는 이야기도 며칠 전 아들과의 통화에서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기다려지거나 감동이 밀려오지는 않은 이유가 있다



들어갈 때 신었던 신발, 바지, 티셔츠, 바람막이점퍼, 모자, 팬티, 양말, 가정통신문,

훈련소 입대 날 찍었던 사진과 편지도

택배 박스에 함께 들어있었다


택배 박스를 열어보는 순간 묘한 감정이 교차하는 건 숨길 수 없었다

30년 전 내가 군에 입대했을 때도 똑같은 방법으로 집으로 소포를 붙였었고

그때 물건을 받아본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


나도 그때 엄마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편지를 써보고 나 역시 엄마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받아보고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렀어도 군대라는 곳은 세상과 단절된 특수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 반에 의해 모인 곳이라 썩 유쾌한 곳은 아니다

악이 끝까지 차오르게 하고 억압과 분노.. 갈등..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여러 가지 감정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 나쁜 것만 배우고 나오는 건 아니다

스스로를 통제하고 희열을 잠시 맛볼 기회도 함께 주어진다

또한 극한의 상황에서 동료애를 느끼기엔 이곳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2년간의 군 생활 동안 동료애로 똘똘 뭉쳤던 전우애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죽자 살자 동료가 최고라고 생각하며 밖에 나가면 평생을 함께 연락하며 지낼 거라고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고 하지만

막상 제대 후 평생을 연락하며 지내는 이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생각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민국 군대란 곳은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내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란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특수한 목적 달성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 그곳에서의 악몽 같던 시간들을 쉽게 잊혀지길 원해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여기는 지옥입니다..로 시작하는 아들의 편지에

덜컥 겁이 났다

친한 친구 중 동우라는 친구가 올 5월에 입대해

3일 만에 못 버티고 퇴소한 친구가 생각났다

동우의 마음이 이해 간다는 아들의 말에

혹시 우리 아들도 적응 못하고 뛰쳐나오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의 기우였음을 아는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 주 있었던 각개전투에선 아들이 분대장을 맡아 공포탄을 쏠 수 있다며 좋아하는 모습에

헛웃음과 함께 안도감이 밀려 오기도 했다


입소 3~4일 동안이 가장 힘들었을 거라 예상한다

생전 처음 보는 또래들이 모여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말투를 쓰며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같은 시간에 눈을 감는 상황은 꿈속에서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일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진 속 아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쿵쾅 쿵쾅거리던 내 심장도 잔잔해지기 시작했다


예전 아버지들은 어깨 한번 툭 쳐주는 무뚝뚝한 표현이 아들에게 해주는 최고의 격려이자 애정표현이었다

'남자 놈이..''우리 땐 더했어..''그거 하나 못 버티면 나중에 뭐가 될라 그러냐..'


이런 말들은 이젠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더 많은 애정표현과 더 많은 격려만 해주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애들이 나약해진 게 아니라 환경이 변했을 뿐이다

배고팠던 시절 이야기를 해봐야 라면 끓여드시지 왜요?..라고 말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이해를 구하려 할 필요도 없고 이해를 하려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면 일은 의외로 간단히 해결된다




어느덧 5주 군사기초훈련 중 행군만을 남겨두고 다음 주면 수료식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잘 견뎌주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저 남들 다가는 군대라지만

내 아들이 막상 군대에 가고 나니 나 역시 남들과 다를 바 없는 부모였음을 느낀다


내 부모도 가슴 졸이며 2년을 보내셨을 것이다

아니 2년은커녕 1년 만에 아들이 군 생활 중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해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군 병원에서 전해 들으셨다

지금도 나는 그때 부모에게 큰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래서 내 아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잘 해온 것처럼 아들은 다치지 말고

군 생활 잘 마무리 짓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음 주 수료식이 기다려진다

처음으로 이렇게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보니

많이 보고 싶다


다음 주 만나면 오랫동안 꼭 안아주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도 귓속을 파고들게 하고 싶다


이번주는 나에게만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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