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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Nov 14. 2022

서울식 로컬푸드

추억의 박대조림

가을비가 한참을 내리고 나니 노랗게 물들었던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이제 황량한 들녘도 제법 겨울 분위기가 나네요

딱 지금 한 달이 일년중 가장 좋다는 엄마의 말씀도 가을비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요즘 들어 어려서 먹던 반찬들이 생각이 그렇게 납니다

겨울에 뭘 먹었더라?

겨울 반찬이 뭐가 있지?

세월을 거슬러 겨울에 먹던 반찬들을 떠올려 봅니다


겨울이면 아버지가 궤짝으로 사 오시던 생태

시원하고 구수했던 생태찌개가 밥상에 올라오면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던 생태 알


"난 이 세상에서 생태 알이 제일 맛있어"


어린 막내아들이 한 말을 잊지 않고 명란젓을 사 오시던 아버지

밥공기만 한 작은 뚝배기에 물을 조금 넣고 파와 마늘을 올려 빠글빠글 끓여 나오는 건 엄마의 몫입니다


우리 집은 겨울이면 오래 두고 먹기 좋은 생선 반찬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생태를 궤짝으로 사 오시면 굵은소금으로 절여 그날부터 먹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소금 간이 덜벤건 덜 베인 데로 나중에 많이 절여져 짠 건 짠 데로 그냥 그대로 맛있습니다


소금에 절여진 생태가 1/3쯤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대파와 마늘을 위에 얹은 후 고춧가루를 뿌려주고 참기름을 휘휘 두릅니다

그리고 뚜껑을 덮고 빠글빠글 끓여주면

소금에 절여진 짭조름한 생선 살과 국물 맛이 일품인 생선조림이 완성됩니다


내가 알기론 이런 조리법이 서울식 조리법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림도 아니고 찌개도 아니고.. 찜은 더더욱이 아닌 서울식 로컬푸드입니다


그때 먹던 그 겨울 반찬이 요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생태는 이미 추억의 생선이 되어버린지 오래지만


그를 대처할 만한 겨울 생선으로 박대라는 생선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선 서대라고도 부르지만 저희 집에선

박대라는 말이 더 귀에 익습니다


우리 집은 박대 역시 구이보다는 짭조름한 박대를 쪄 먹거나 뚝배기에 물을 넣고 끓이는 방법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옛날 반찬 생각이 나

박대를 여러 마리 사 왔습니다



예전엔 연탄불에 구어 불 맛이 입혀진 박대 구이였지만

이제는 추억의 연탄불 구이 대신 프라이팬에 구워 먹습니다



식구가 적다 보니 싸울 사람도 없어 큼지막하게 한입 먹어봅니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습니다

흰쌀밥에 소금 간이 알맞게 베인 큼지막한 박대 한 조각을 얹어 크게 한입 베어 물면.. 갈치가 형님 합니다


박대를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여유가 있어야 맛볼 수 있는

고추장 찍어 먹기도 해 봅니다

기가 막히게 맛있습니다..ㅎㅎ


와이프는 맨날 박대만 먹었으면 좋겠답니다




오늘은 제가 추억의 박대 찜?

서울식 박대 조림을 해 보았습니다



박대의 머리와 내장을 잘라내고 물에 잘 씻어

반으로 잘라 뚝배기에 얼기설기 놓습니다


다진 마늘과 대파를 박대위에 올려주고

고춧가루도 솔솔 뿌려줍니다  

두툼한 생태였으면 소금에 많이 절여져 간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지만

생선 살이 얇은 박대는 그냥 하면 싱겁습니다


뚝배기 가장자리에 새우젓 1 티스푼 넣고 맛을 봐가며 나머지는 소금으로 간을 맞출 겁니다

마지막으로 청양고추 하나를 썰어 넣고

참기름을 휘 둘러둡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쌀뜬물을 박대의 반이 잠길 정도로 가장자리에 부어주고 뚝배기 뚜껑을 닫고 약한 불로 5분 정도 끓여주면 서울식 박대 조림이 완성됩니다



식탁 위로 가져온 박대 조림은 아직도 보글보글 끓고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국물을 자박하게 끓이는 게 특징입니다



글쎄요~

이렇게 먹는 집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새우젓을 넣고 하는 음식들은 제가 알기론

마포, 영등포, 강화.. 이렇게 나루터가 있어

새우젓이 유명했던 곳들에서 해 먹던 음식이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런 짭조름하고 자박하게 국물이 있는 이런 조린 음식들을 많이 먹고 자랐습니다


아마도 한강유역에 살던 사람들이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생선을 소금에 절여 겨우내 먹던 음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에게 물어봐도 딱히 이름을 모르십니다

시집와서 할머니가 하던 음식을 하게 된 거랍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겨울 분위기가 나니

예전에 먹던 겨울 반찬 생각이 많이 납니다



음식은..

누구를 생각나게 하고

그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한동안 안 해먹던 음식을 오랜만에 해 먹어 보니

그때 그 시절 아버지와 한상에 마주 앉아있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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