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소 Jan 03. 2023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속에 빠르게 자리잡은  문화3가지

생수이야기, 예약문화, 금연문화

요즘 유튜브를 보다 보면 외국인들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외국인들이 한국에 가면 놀라는 한국인들만의 특이한 문화를 콘텐츠로 제작하는 1인 미디어 방송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우리는 그냥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고 생활하던 한국인들만의 일상적인 문화들이 외국인들 눈에는 특이하게 비춰지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위로 음식을 자르는 식문화,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식탁에 올려놓고 입을 닦기도 하고 다시 그 화장지를 화장실 갈 때 들고 들어간다든지.. 또는 그 반대로 식탁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먹다 코를 푸는 건 매너 없다 생각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코를 푸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받아들이는 경우들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식탁문화만 보더라도 수십수백 가지의 서양과 동양.. 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는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고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로 자리 잡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뒤돌아 생각해 보면 몇 년 안된 이야기인데 지금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 예전엔 저러고 어찌 살았지? 하는 3가지 이야기로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생수 이야기>

에헴..

그러니까 바야흐로 1990년~2000년 사이의 이야기가 될듯합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친구내 집을 갔는데 냉장고에 못 보던 음료병을 발견했습니다


"관우야.. 이거 뭐야? 먹어도 돼?"

"응.. 먹어.. 그거 물이야~"


물?

야 이.. 개살구야.. 어디서 구라를 쳐 이게 물이라고?


맞습니다.. 500미리 페트병에 든 투명한 액체는 지금 우리가 먹는 생수였습니다

생수는 1980년대에도 있다는 얘기는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사다 먹는 집이 있다는 걸 내 눈으로 처음 본 게 1990년이었던 겁니다


수입 소고기가 있는 줄도 몰랐던 시절

소고기는 모두가 한우인 줄 알았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소고기를 수입하는 화사를 크게 운영하였고 엄청나게 큰 냉동창고를 여러 곳 가지고 계신 걸 그때 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친구네 집엔 수입 물건들도 많았고 생수도 수입 생수를 사다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 뒤로 방학이 되면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는 운동장 만한 크기의 냉동창고에서 고기 나르는 알바를 하는 게 저의 10대 시절 방학을 보내는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생수 이야기로 돌아와

저는 그때 한 손에 딱 들어오는 그 생수를 본 첫인상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쁜 디자인에 새하얀 투명한 물!

운동장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축구를 하고

수돗가에 우르르 몰려가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수도꼭지에 입을 때지 않고 수돗물을 먹던 나에게

1천 원을 주고 사 먹는 저 수입 생수는 중학교 때 전학 온 친구가 가져와 나눠준 바게트 빵을 손톱만큽 얻어먹어본 그 신세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생이 되어

집 앞 놀이터 드나들듯 매일 출근도장을 찍으러 다녔던 신촌..


신촌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편의점이 생기고 바게트 빵은 흔하게 볼 수 있는 빵집의 시그니처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었고 그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금 잘 나간다는 친구들의 손에 쥐어져있던 물건은 하나같이 500미리 생수병이었습니다


불과 2~3년 만에 편의점 냉장고엔 생수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 뷔페엔 생수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여전히 수도꼭지에서 입을 대고 물을 먹는 나라도 있었지만 1천 원의 돈을 들여 생수를 구입하는 건 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자리 잡아가던 생수는 2000년대를 맞이하며 이젠 누구나 생수를 사다 먹는 시대가 찾아온 겁니다

그 기간이 불과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야.. 미래엔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며?"

"야 이.. c.. 무슨 봉이 김선달이냐.. 누가 물을 사 먹어?"


이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지 딱 10년!

생수를 사다 먹는 게 일상이 되기까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이면 충분했습니다

이젠 어디를 가도 생수를 팔고 따지 않은 1인 1생수를 공짜로 주는 식당도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문화라기보단 환경 오염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건강에 대한 심리적 요인이 급속도로 확산하면서 자리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듯합니다


아무튼 요즘 점심시간이 끝나면 손에 쥐어져있는 아메리카노의 숫자만큼은 아니지만

그땐 그래도 예쁘고 잘생긴 남녀들의 손엔 생수병이 꼭 들려 저 있었습니다

"나 생수 먹는 여자야~"이런 거죠..ㅎㅎ

커피숍의 커피 가격이 1~2천 원 하던 시절 1천 원의 생수는 말 그대로 시와 사치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예약문화>

이 이야기 역시 1990년대 ~ 2000년대에 이르는 생수 이야기와 함께 이어지는 이야기이니 그냥 킬링타임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턴 반말 어법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 어법을 편하게 써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예약문화는 1990년 대 만해도 말 그대로 개판이었다

노쇼란 말이 나오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안된 이야기이다

1990년 아직 예약문화가 자리 잡지 못했을 당시 지금으로 말하면 페널티라던가 위약금이란 단어는 그 자체를 이해조차 하지 않으려 할 시절이다


"내가 내 돈 내고 먹고 시간이 안 맞아 취소하는데 나에게 위약금을 물게 한다고? 어떻게?"


예약금이란 정의조차 제대로 서지 않았을 때였다

만약 식당 예약을 하는데 예약금을 내라고 하면

아마 그 식당은 망하는 지름길을 택한 것일 것이다


예약문화는 그저 우리와는 거리가 먼 서양 문화 중 하나라는 인식이 강할 때였다

그러면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예약문화는 음.. 뭐랄까 의식이 조금 깬 사람? 들에게서부터 서서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비행기 티켓의 예약을 취소할 경우 위약금을 물 수 있다는 것에 반감보다는 나로 인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호텔 식당이라든지 공연장, 스포츠 관람장에서도 노쇼에 대한 위약금으로 나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가 갈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며 인식하기 시작했다

작은 식당들도 예약문화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위약금을 물지 않는다고 해도 만일 내가 예약하고 가지 않는다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식당 주인이나 나로 인해 예약하지 못한 손님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약속하듯 자리 잡은 건 아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1997년

예약문화는 극장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다

예전 극장은 현장 티켓 발매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남자들은 특별한 날 이벤트를 위해 여자친구를 만나기 전 극장에 먼저 가 영화티켓을 예매하는 게 일이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극장 예매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젊은이들은 환호했다

미리 극장 가서 줄 서는 일도 취소하는 일도 간편해지면서 예약문화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게 불과 10여 년 만에 이루어낸 성과다

지금은 어떤지 생각해 보자

예약문화는 당연시되고 있고 소비자도 업주도 모두가 합리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소비자는 자리가 없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업주는 그날 팔 재료를 예측할 수 있어 좋다

안 좋은 문화는 빠르게 받아들이는 대한민국 국민성과는 맞지 않게 예약문화는 자리를 잡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대한민국도 나쁜 문화는 걸러내고 좋은 문화는 발 빠르게 받아들이는 현명함을 발휘하고 있다



<흡연문화>

이 부분에서 할 말이 참 많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1990년 대만 해도 거의 모든 사무실에 재떨이가 놓여있었다

갓 들어온 여직원은 커피 타는 일과 함께 재떨이 비우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방송에서도 담배 피우는 모습은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던 시절이었다

2003년 ~ 2008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내신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를 마치기 얼마 전 제작된 1,2편 특별 다큐멘터리 방송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은 그대로 방영되었다

새로 나온 승용차엔 재떨이가 부착되어 있었고

아직 구형 버스가 돌아다니는 시골 버스엔 재떨이가 달려있었다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노래방에서도 담배는 일상화되었다

심지어 병원에서도 담배 피우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었다


금연문화가 고개를 들 즈음 시대와 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대 앞에서 신촌역을 향해 여성 여러 무리가 풀랜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여성들이 외치는 구호는 이런 것이었다

"남녀평등! 우리도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고 싶다!"

하지만 그 여성들의 바램과는 달리 기사에 실리기가 무섭게 지탄에 대상이 되었다


꼭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아니지만 그 이후 금연문화가 우리나라 전체에 급속이 확산되었다

아마도 국민건강보험제도가 활성화되면서 건강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비용에 대한 정부의 노력으로

불과 1~20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흡연문화는 한순간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흡연자의 권리냐 비흡연자의 권리를 따지기 전에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흡연은 좋지 않음을 스스로가 선택한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남성의 흡연에 대해 상당히 관대하다

그중 흡연을 정당화시키는 일등공신 중 군대라는 특수집단이 한몫한다

국민의 4대 의무에도 속해있는 국방의 의무는 젊은 20대 초반의 남성들을 자유를 박탈한 지정된 곳에 몰아넣고 담배를 무료로 나누어주었다

내가 안 가지면 남이 갖게 되는 불합리한 시스템 덕에 담배를 안 피우던 사람들도 담배를 배워 나오는 곳이 군대가 되어버렸다

지금이야 월급으로 대신 주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알아서 사 피우는 시스템으로 바뀌었지만 옛날엔 그렇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간 옛날이야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얼마 안 된 이야기다


지금은 시골 작은 마을을 가도 식당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건 상상도 못하는 일이 돼버린 지 오래다

담배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당구장에서도 담배가 사라진지 오래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 100% 캐시미어 코트를 차려입고 나가도 아무 소용 없다

회식의 마지막 코스인 노래방을 다녀오면 담배 냄새에 찌든 코트를 다음날 또 똑같이 입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옛날 같던 시절도 불과 5년 전 일이라는 건 기억을 되살려보면 정말? 그랬네.. 맞네 맞아 하며 손뼉을 마주치며 웃을 것이다


옛날 아버지들이 라때는 말이야~

쌀이 없어서 밥을 못 먹었어

그럼 아들이 말한다 "이크 라면이라도 드시지"


아마 그 말을 들은 딸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담배 냄새나는 코트를 다음날 또 입고 나갈 수가 있어? 스타일러에라도 한번 돌려서 입고 나가야 하는 거 아냐?"


좋은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아 좋다

향수라고 하기에 담배는 추억의 소재로도 등장하기 힘든 물건이 돼버렸다

추운 날 뒷골목에 모여 분유 깡통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곳에 가면 사장님 이부장 김대리 모두가 친구가 된다

마지막 남은 흡연자들의 우정을 확인하는 장소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간다

엄마는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워 카페에 혼자 가지 못한다

은행은 점점 줄어들고 ATM 기계만이 건물 한켠을 지키고 있다


부모님들은 예전엔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굴뚝 청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신다

노인이 못 따라오는 게 아니라 뒤처진 노인을 챙기지 않은 채 너무 빠르게만 가는 건 아닌가?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엊그제 같던 많은 일들이 하루아침에 변한듯하다

10대의 10년과 60대의 10년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한 번쯤은 노인에 입장에서도 사회를 바라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이런 것도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