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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신 Sep 09. 2020

엘리베이터 버튼에 꿀밤 주는 시대

늘 움츠린 나의 소심한 손


"아아악! 아 아 안돼!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지 마!"

버튼을 누르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액션 영화 속 대사가 아니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서울에서 들려오는 평범한 일상의 소리다. (사실 잔잔한 재난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문밖을 나섰을 때 장 먼저 만나는 잠재 위험요소는 엘리베이터 버튼이다. 나는 나가기 전부터 버튼으로부터 미니 인간들을 사수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이들은 버튼 하나에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약 올리고 싶었는지 일부러 버튼 누르는 시늉을 해댔고 나는 열을 받으면서도 작은  하나까지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굴어야 하는 이 현실과, 손이 달려 있어도 어느 것 하나 맘 놓고 만질 수 없는 미니 인간들이 불쌍해서 더는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끙....' 한다. 그러고는 손 안쪽을 대지 않으려고 꿀밤 손으로 1층을 누르고 이들에게도 꿀밤 손으로 누르라고 가르친다.

"손잡이 만지지 마"
"아무것도 만지지 마"
"손 씻자"
"소독제 싹싹 비벼 발라야지"

정말이지 지긋지긋한 말들이다. 지금으로선 위생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 지겨워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손으로 만져보고 몸으로 쓸어보고 입에 넣고 싶어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들을 통제하지 않으면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일 거다.

손에 닿는 건 뭐든 찝찝하다. 매일 피할 수 없는 아파트 공용 현관문 버튼이나 엘리베이터 버튼, 엘베 손잡이, 공용 화장실 문고리 같은 것에는 특히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서 손을 직접 대지 않으려고 팔꿈치, 팔뚝, 팔목, 발을 이용하는 아크로바틱 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미세요'라써진 문이 제일 반갑다. 등이나 팔뚝으로 밀면 손쉽게 열 수 있으니까. 사실 '당기세요'라고 써져 있어도 그냥 민다. 가끔씩 무조건 당겨야만 열리는 융통성 없는 문을 만나기도 하는데 무방비 상태에서 맨 손으로 그 손잡이를 당겨야 할 때는 위험을 감수하는 비장한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문을 연 뒤에는 편집증 환자처럼 얼른 손을 씻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제일 난감한 문고리는 직접 잡고 돌려야 하는 둥근 손잡이다. 지난번에 갔던 대학병원 화장실 문 그랬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가려는데 손잡이가 동그란 모양이었다.

나를 근심하게 만든 망할 둥근 손잡이

하...  난감했다. 기껏 손을 씻었는데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또 손을 씻어야 하는 건가. 양 손목을 콜라보시켜 열어보려니 둥근 모양이라 계속 미끄러질 것 같았다. 어찌 이 화장실을 빠져나가야 할지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손잡이를 돌려서 문을 반쯤 연 다음, 안 닫히도록 한쪽 발로 지탱하면서 동시에 두 손을 세면대 쪽으로 뻗어 다시 씻고, 발로 문을 차서 순간 반동을 이용해 휙 빠져나갈까..'


그런데 그러려면 몸을 2시 방향으로 거의 90도 기울이는 유연성이 필요했고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방법이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존엄한 인간이기에 휴지를 손잡이에 덧대어 돌렸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가 보다. 내 옆에 있던 아주머니도 그 문고리가 찜찜했던지 내가 문고리를 돌리자 손 씻던 걸 급 마무리하고 내 뒤에 바짝 붙어서 화장실 탈출을 시도하셨다. 나는 아주머니가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문을 더 활짝 열어 주었다.(화장실에서 꽃피는 인류애) 손을 쓰지 않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 아주머니는 "아유"하는 머쓱함이 가득 밴 탄식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요새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을 하려고 해도 명단을 작성하라고 한다. 모든 손님이 그 명부를 작성하려고 펜 하나를 돌려 쓰다가 되려 바이러스가  퍼지는 거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에스프레소 없이 이 시간을 견디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어서 냅킨에 펜을 싸서 명단을 작성하고 꿋꿋이 커피를 사 먹는다.

냅킨은 나의 동반자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나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대지 않고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각종 도구팔고 있다. 심지어 둥근 손잡이를 팔꿈치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 보조장치 있고, 발로 여는 편의점 냉장고, 발로 누르는 엘베 버튼도 생겼다. 팔꿈치랑 발이 진화되기 전에 그냥 코로나 시대가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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