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닮은 고요하고 몽환적인 그의 작품세계
최근 3개월간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가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피터 도이그 전이다.
국립 근대미술관에서 준비한 피터 도이그 전은 코로나로 인해 연기와 연기의 연속으로 결국 2월 예정이었던 전시가 10월까지 연기되었다.
일본 미술계도 역시 코로나의 여파로 국립 미술관 박물관들이 수개월간 문을 닫기도 하였지만, 긴급선언 사태 해제 이후로는 점점 다시 문을 열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사람이 몰리는 전시는 예약제로 미리 예약을 받고 인원수를 조절하는 느낌이었다. 국립 근대미술관은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써서 현장 구매도 가능하였다. 다만 사람이 많이 몰리는 전시 막바지의 경우에는 선예약을 같이 받기도 하였다.
타케 바시(竹橋)에 있는 국립 근대미술관은 최근에 이사하고 나서부터 더 자주 가게 된 미술관이다. 이전에는 근대 미술관까지 거리가 멀어서 오고 가고 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많이 방문한 적은 없지만, 방문하여 전시를 볼 때마다 꽤 기획전이 인상 깊은 전시가 몇 가지 있었기 때문에 근대 미술관은 조금 애착이 가는 미술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상설전의 내용도 매우 좋고,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근현대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방대한 소장품에 언제나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미술관 중 하나이다.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근대 미술관의 1년 기획전시를 전부 리뷰하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피터 도이그는 1959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현재 yBa (Young British Artists)에 속해있는 생존 작가 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작가이다. 리서치하며 알게 된 것은 그의 작품들이 무려 100억 원 이상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작품이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전시가 이번 국립 근대 미술관 피터 도이그 전이다. 미술작품의 가격 측정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고 느낀다. 특히나 현대 미술일수록 그 기준이 모호하다.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고,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미술공부를 했지만 사실 아직도 감이 잘 안 온다. 이렇게 현재 살아있는 작가의 전시도 근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것이 나는 더없이 반갑고 좋다고 생각한다.
근대와 현대의 구분을 하는 것은 어쩌면 경계가 모호한 일일지도 모른다.
Peter Doig, 'Milky Way', 1989-90. © Peter Doig. All Rights Reserved, DACS (2015)
전시를 감상할 때 나는 되도록이면 사전 지식을 미리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과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오롯이 감상에만 집중한다. 또 같은 전시를 여러 번 봄으로 써 내가 이전에 놓쳤던 작품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거나, 또 전시장을 방문한 관람객들의 저마다 다른 전시 감상 태도를 관찰하는 것도 다른 즐거움이다.
피터 도이그의 그림은 한 마디로 꿈의 세계와도 같다. 두 가지의 상반되는 감정이 교차하여 만들어내는 기묘함, 몽환적인 요소들이 작품에 잘 녹아있다. 또, 그는 색을 아주 잘 조합하기도 하여 몽환함을 한 층 더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첫 번째 감상에서는 언제나 수평선을 기준으로 나뉜 이등분적인 요소들이 눈에 띄었다. 예를 들면 일직선으로 나있는 호수에 물에 비친 풍경과 실제 풍경의 괴리 라던가, 캔버스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레이아웃을 그는 아주 잘 이용하고 있었다. 강렬한 메인 이미지가 보이고 그 뒤로 보이는 부속적인 이미지들이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과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무언가 인 '무감각'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우리가 느끼는 감각들을 말로 재현해낼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노랗다'라는 형용사도 샛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리끼리하다 등등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사용해왔다. 단어에도 그 나름의 감정이 묻어있듯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때에 자신의 감정을 대체하는 단어로 표현하곤 한다. 그런데 무감각이라니! 그가 말하는 무감각은 감각을 아예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닌 묘하고 상반된 감각을 동시에 느끼는 아이러니한 감각을 창조하는 것이다.
©Peter Doig.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Gift of Nancy Lauter McDougal and Alfred L. McDougal, 2003. 433. All rights reserved, DACS & JASPAR 2020 C3120
그는 또한 자신의 아버지가 예전에 그림을 그리던 럼주 공장을 개조해 아틀리에를 만들고 그중 일부는 극장으로 사용하며,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매주 목요일 저녁 무료 영화 상영을 한다. 이것이 영화 클럽 '스튜디오 필름 클럽'이다. 그는 매주 상영하는 영화의 포스터를 직접 그리고 정말 자신이 즐거워서 하는 것임을 영화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이 바로 출구로 향하는 길 양 옆으로 그가 그린 영화 포스터가 나열되어있는데 전시를 다 보고 난 후에 마치 영화 한 편을 관람하고 나온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갱을 생각나게 하는 피터 도이그의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가 된다. 전시는 끝났지만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