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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서 May 06. 2023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한다고 하니 사재기 하겠습니다.

젊어서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나는 불행을 사재기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긁어모으고 있는 것 같다.     


정식 작가로 처음에 프로그램에 들어갔을 때 마냥 순진하게 그냥 기뻤다. 그래서 질 낮은 외주 pd들에게 부당하게 욕을 먹어도 참았고, 최저임금은커녕 한 달 페이를 주지 않으려고 한 부장에게도 끝까지 공손함을 다해야 했다.     


내 주급이 무슨 비트코인도 아니고 50으로 시작했던 내 주급은 이번 주는 45 다음 주는 47. 정작 약속한 50은 구경도 못 했지만, 방송국 바닥이 이런 거겠지. 부당함이 당연한 곳이라면 나도 순응해야겠지.    

 

막내 작가 페이도 보장 못 해주는 메인 작가들은 오히려 후배들을 괴롭혔고. 결국에 선배 작가는 잠수를 타고 새로 온 작가는 출근 첫날 도망가 버렸다. 설렘으로 몸을 갈아 넣었던 나의 첫 프로는 이제 티비에서 재방송을 하면 눈을 질끈 감고 빠르게 채널을 돌려버리게 되는 진절머리가 나는 작품이 되었다.      


일을 쉬는 동안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한국인 dna의 소유자는 딸 수 있는 온갖 자격증을 따기 시작했다. 만료된 토익, 컴활, 포토샵...     


그러다가 사설 자격증이지만 취미로 다녔던 학원 대표에게 강사 제의를 받았다. 대표라는 사람이 나를 좋게 봐줬다는 우쭐함과 여기서라면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또 속없이 마냥 기대했고 행복했다.     


강사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마케팅이며 매장 운영이며 다 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다 할 수는 있었다. 그게 페이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5만 원이라고 들었던 외부 출강은 시간당 3만 원으로 내려갔으며, 내부 강의는 그의 반절인 만 오천원이었다. 프리랜서 시간강사로 계약을 해서 대표가 잡아준 수업만 강의할 수 있었다.    

 

페이가 제일 많은 달은 120만 원. 내가 경력이 없어 페이가 적은 거라고 내년에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고. 참고 견더라. 일 힘든 건 견딘다고 해도 120만 원 견딜 수 없어 다른 일을 병행하겠다고 하니. 불쾌한 기색을 적나라하게 내비쳤다.      


내 시간을 자신이 원할 때 써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심통이 난 모양이다. 주말에 하루는 왕복 2시간의 매장에서 3시간 근무도 해줘야 하고 sns운영이랑 포토샵은 페이 없이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한다고 하니 화가 난 게 분명했다.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으면 pc방을 가지 못해 얼굴에 불만이 넘쳐흐르는 중학교 2학년 남자 아이 마냥 구는 모습에 이제는 지쳐버렸다.     


수업 끝나고 청소 열심히 하라고 하도 성화이길래 수업 전에 1시간, 수업 끝나고 1시간. 결국 3시간 강의에 노동시간은 5시간이니 45,000원이라고 치면 9천 원. 최저도 못 받는 인생이었다. 나는 도대체 언제 최저를 받을 수 있을까.     


대표 가족이 운영하는 학원이라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 게 노골적으로 느껴지는 나날이다. 돈 안 주는 건 일 못 한다고 말한 게 그렇게 배은망덕한 일이었을까.  

    

처음 겪는 일이 아니라 그런지 실소가 나오는 나날이다. 불행도 겪다보면 담담해지기도 하는구나. 그들은 오늘은 또 어떤 유치한 행동으로 나를 웃기게 할지.  

    

6월 중으로 지금 담당하는 강의가 끝나 근무를 마무리하려 하는데 다음에는 어떤 일을 해볼까.     

내 인생은 꼬여버린 건지 아니면 다채로운 건지 그것도 아니면 다채롭게 꼬여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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