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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Aug 04. 2020

[오로빌+23] 일상


요즘 나의 일상이다


아침 7시쯤 새소리에 잠에서 깬다.

여기 와서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정말 많다.

아주 낮은 소리로 우는 새도 있고, 박자 맞춰 우는 애들이 많다.

(얼핏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여기 새들은 우는 게 아니고 짖는다. 일어나지 않을수가 없다.)

가끔은 도마뱀 울음소리도 듣는다.

우리가 처음 와서 봤던 그 녀석이 아직 우리 집 안에 있다.

들어올 수는 있었으나 나가는 길은 찾기 어려운 모양이다.


7시에 잠에서 깨면, 일어나서 산책을 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대체로 안 가고 버틴다. 안 일어나고 계속 누워있는다

하늘이 예쁘다는 생각도 하고, 오늘은 비가 오려나? 하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러 8시가 되고 아이들이 일어난다.

그래도 또 한동안 뒹굴거린다. 뒹굴거리다가 또 선잠을 잔다.


8시 30분이 지나면 아이들 입에서 배고프다는 말이 나온다.

남편과 느릿느릿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한다.

아침이라야, 게하에서 주는 빵에 콘프레이크, 과일 몇 조각이다.

이렇게만 먹어도 괜찮더라.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꼭 밥을 먹었어야 했는지.






10시 30분에 앨리스의 영어수업이 있다.

수업을 듣는 사람도 들쑥날쑥이고, 진도랄게 없고,

short I 발음이 안돼서 될 때까지 하다 보면

금세 12시가 된다.


앨리스는 포기하는 법이 없다. A와 E발음부터 꼬이기 시작한 나는

매번 지적당하고 homework!라는 말을 듣는다.

이러다가 진짜 꿈에도 나올 지경이다.

(언젠가 앨리스에 대해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12시쯤 수업이 끝나면 게하로 돌아온다.

그리고 어디서 밥을 먹을지, 지도를 펼쳐놓고 넷이서 심각하게 고민한다.

오로빌에 있는 여러 식당 중에서 우리의 단골 식당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매번 어디서 점심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은 직장인들과 비슷하다.


오늘은 Neem Tree에서 인도음식을 먹었다.

아직 인도음식에 익숙하지 않아서 팬케이크, 오믈렛들도 함께 먹는다.

샐러드를 시켰더니 생야채가 배 터질 만큼 나오기도 하고

탄수화물 하나도 없는 메뉴도 많다.

대체 서양애들은 이런 걸 먹고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한국인은 역시 밥심!!



한식당 고요에서 점심을 먹은 날.




점심을 먹고 나면 너무 덥다.

점심을 멀리서 먹으면 게하로 돌아오는 길에 땀이 한가득이다.

돌아오는 길에 가끔 장도 본다.

그러면서 좀 시원할 때 나올걸 하고... 후회하지만 계속 그 시간에 장을 보게 된다.

필요한 것들을 사고, 과일을 많이 산다. 과일과 야채가 진짜 싸다.


집에 오면, 점심을 먹었으니 좀 쉰다.

이때쯤 나의 LTE테라스는 그늘이 져서 아주 시원하고 바람도 잘 분다.

핸드폰과 책을 들고나가서 책을 보다가 졸리면 핸드폰을 하고

또다시 책을 보고... 를 반복한다.

한국에서 읽기 힘들었던 책들을 여기서 읽고 있다.

아주 두꺼운 책이라 구박받으며 들고 왔는데

이게 없었으면 이 오후 시간을 어찌 보냈을까 싶다.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정원




3시쯤 되면 애들이 심심하다고 주리를 튼다.

아빠랑 셋을 묶어서 비지터센터에 아이스크림 먹으라고 보내버린다.

그리고 나는 또 뒹굴뒹굴.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부엌살림도 정리하게 되고,

다른 책들도 좀 보게 되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4시가 넘어가며 해가 한 풀 꺾이면

아이들과 남편은 축구공과 배드민턴을 들고 운동장으로 간다.

또는 아이들은 친구네 집으로 보낸다.

또는 이제부터 각자 쉰다.


오후에 랭귀지 랩에서 남편과 나는 요일을 번갈아가며 수업이 있다.

남은 한쪽은 아이들과 함께 있는다.



저녁을 챙겨서 먹고.

저녁에 있는 공연들을 보러 나서거나 그냥 또 뒹굴거리거나

함께 보드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다 갔다.


며칠 전 저녁에 본 공연. 제목도 모르고 그냥 갔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목소리와 선율이 감동적                                          




영어 문장을 하나 외운다.

발음도 연습해 본다.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려본다.

애들은 재운다.

남편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우리도 일찍 잠이 든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하루가 꽉 찬 것 같다.

중간중간 사람들을 만나고

일자리를 찾아보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하고 있다.

책을 보고,

자전거를 타고,

핸드폰을 줄이고,

그래서 하루가 꽉 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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