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지는 시간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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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구멍 난 듯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참 맑았다. 높은 기온 속에서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딱 걷기 좋은 선선한 날씨.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걸었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모처럼 찾아온 짙은 남청색 하늘도 한껏 푸르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남청색은 어릴 적부터 사랑하는 하늘의 색이었다. 섬세한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오늘과 같은 이 하늘은 한 시간 정도 그 아래에 있는 모든 세상을 자신의 빛으로 물들인다는 것을. 흥미로운 건 이 남청색 하늘은 시간의 개념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박모’ 또는 ‘땅거미 지는 시간’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무도, 고층 건물도, 인도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 심지어 가로등의 불빛마저도 하늘로부터 온 빛으로 파랗게 물들여지는 시간. 그 모든 것이 물이 들며 내 손과 발마저 푸르스름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그제야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든다.


특히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 하늘의 색은 꽤 오랜 시간 동안 펼쳐진다. 그리고 점차 가을이 깊어질 때 저녁 바람이 차다고 느껴지는 그 시기까지 오랫동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다가 완연한 겨울이 되면 그 하늘과 시간은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이 하늘과 푸르스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땅거미 지는 시간을 다시 만나기 위해선 다음 해 가을을 기약해야 한다. 물론 오늘처럼 드물게 봄이나 여름에도 아주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실 지금 계절엔 보기 힘든 하늘이다. 어쩌면 겨울에도 이 남청색 하늘은 잠시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어두운 밤이 되기에 추운 계절엔 자취를 감추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인지도. 천문학이나 날씨에 관한 지식은 없어 이 남청색 하늘과 땅거미 지는 시간이 왜 주로 가을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기에 나는 사계절 중 이 하늘과 땅거미 지는 시간을 자주 볼 수 있는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나 하늘의 선물을 받았으니 다시 마저 남은 여름을 견뎌야겠다.



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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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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