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만나는 시간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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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부끄러움을 느낀다. 모든 일과를 마친 늦은 밤, 거실 테이블에 앉아있을 때 그렇고, 일하다 말고 잠깐 창밖을 바라볼 때 그렇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도 전날의 부끄러운 기억이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그렇다.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는 부끄러운 감정의 근원지는 그날 하루에 겪은 일들 때문이기도 하고 또는 몇 날 며칠 전의 일이나 사건 때문이기도 하다. 또는 굳이 일, 사건 때문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문득 부끄러워질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올해 처음 매미 소리를 들은 순간이라든지, 더위가 섞인 바람에 나뭇잎이 정신없이 나부낄 때라든지, 내 허리 높이보다도 작은 아이가 아성을 지르며 뛰어갈 때라든지, 빗방울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창문을 다급히 두드릴 때라든지. 그런 장면들은 늘 나에게서 어느 한 편의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전혀 크지 않아 보이던 기억의 단편들은 때로 생각보다 날카롭기도 했다. 특히 나의 인생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기억의 조각들이 그랬다. 그런 종류의 부끄러움 혹은 기억은 여전히 나를 옭아매는 것들이었다.

“뭐 어떡할 거야,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 그만 떠올려.”


그런 말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 기억의 조각을 지금 당장 꼬깃꼬깃 접어 서랍 맨 안쪽에 넣어둘 수도 있지만, 이는 내가 무방비 상태일 때 다시금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해야 하는 기억이자 부끄러움인데 여전히 나는 그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겠다. 아니, 어쩌면 이제 그 해결 방안이란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무력감이 들면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아버렸다. 물론 아무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안다. 나에게만 보이지 않을 뿐. 그러나 알면서도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기억이 쉽게 없어지진 않죠.”


선생님은 책상에 놓인 지우개를 들더니 갑자기 내 눈앞에 아주 가까이 갖다 대었다. 앞이 가려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지우개에도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눈은 뜨고 있지만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나에게 방해되는 것이 눈앞을 가로막고 있으면 누구나 앞이 보이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할 수는 있죠.”


선생님은 지우개를 내 눈앞에서 조금 멀리 떨어뜨렸다. 지우개를 책상에 내려놓지 않은 채로. 눈앞의 지우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눈으로부터 훨씬 거리가 멀어져서 나는 아까보단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생님의 얼굴, 상담실 내부와 벽에 걸린 그림까지도. 지우개 주위로 풍경이 보였다.


“지우개가 아직도 시선을 가로막고는 있지만 아까보단 좀 낫죠? 시간이 지나면 이 지우개는 좀 더 멀리, 더 멀리 멀어질 거예요. 어느 순간엔 시선에도 걸리지 않게 되겠죠.”


상담받을 당시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도 눈감는 연습을 한다. 눈앞의 지우개인지, 뭔지가 먼 미래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 주위 풍경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농도 깊어 이렇듯 나를 놓아주지 않고 찐득하도록 내게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부끄러움. 언제쯤이면 내게서 사라질까 싶었지만, 이 부끄러움의 팔 할이 나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사실 그렇다. 떨쳐내고 싶은 것들. 그러나 이미 내 곁의 사람들은 이런 나를 사랑해주고 있었다. 이걸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비가 내리는 오늘은 시간을 좀 내어 깊숙이 숨겨둔 부끄러움을 만나야겠다.



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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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만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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