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함과 친숙함의 경계

by 김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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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때면 인스타그램을 즐겨 보고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는 편이다. 인스타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라서 다양한 반응이 오진 않지만 그래도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이 댓글을 남겨주거나 ‘좋아요’를 눌러주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리고 간혹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들로부터 디엠이 오기도 한다.


두 번 정도 고등학생 때 친했던 친구들에게 디엠을 받았다. 대학생 1학년 때만 하더라도 아주 가끔 메시지를 주고받던 친구들이었는데, 서로의 삶이 바빠 연락이 끊긴 친구들이었다. 대학생 땐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다가 관심이 시들해져 탈퇴했다. 그러다 인스타그램이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뒤늦게 가입하고 지금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 팔로우 신청을 했다. 신기한 것은 지금도 오프라인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먼저 SNS상으로 관계를 맺었을 뿐인데, 그들의 팔로워 중엔 나의 중고등학생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나의 어릴 적 친구들을 회사 동료 또는 취미활동이나 대외활동으로 만난 인연으로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내 어릴 적 친구들을 발견하면 먼저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그들에게 팔로우 신청을 해도 되는 건지 망설여졌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팔로우 신청을 했고, 인스타그램 친구가 된 경우가 몇 있었다. 그렇지만 우린 서로의 피드만 구경할 뿐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대부분 그랬다. 그러다 1, 2년 정도가 지나면 그 친구들은 나에게 디엠을 보냈다.


‘안녕! 네 스토리를 여러 번 보다가 연락하고 싶어서 디엠 보냈어. 너무 오랜만이지? 같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때가 그립다ㅠㅠ 잘 지내고 있어?’


내가 용기를 냈듯 친구들도 용기를 내어 먼저 디엠을 보내오면 나도 기쁘게 답장을 남겼다. 그렇게 우리는 오프라인상에서 한두 차례 만났다. 그 친구들을 처음 만나는 날이 오면 남자친구와 만날 때보다 훨씬 더 긴장되곤 했다.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지? 뭘 먹어야 하지? 혹시라도 살이 왜 이렇게 많이 쪘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그때랑 많이 달라졌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안은 채 약속을 잡고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처음엔 소개팅하는 것처럼 내 앞에 마주 앉은 친구도, 나도 조심스럽고 어색한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으음, 나만 그랬나? 그러나 어쨌든 어느 정도 시간을 넘기면 친구와 나는 자연스레 학창 시절 때를 주제로 이야기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너 그 선생님 생각나? ‘사마귀’ 있잖아.”

“어, 생각나. 난 아직도 사마귀한테 뺨 맞은 게 억울해.”

“너 그때 핸드폰 안 냈다가 야자시간에 진동 소리 울려서 뺨 맞았었지? 난 그때도 그건 좀 너무하다고 생각했어!”

“그치? 내가 괜히 억울한 거 아니지?”


학창 시절 때도 선생님들 욕을 하며 친해졌다. 그러나 이제 우린 그 선생님들이 보고 싶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었다. 사마귀 선생님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실까…?


예상했던 것보다 나는 그 친구들과 자주 만났다. 그리고 매일매일 카톡을 주고받았다. 성인이 되어 친해진 친구들과도 자주 카톡을 주고받지만, 어릴 적 친구와 주고받는 카톡은 어딘가 신선한 구석이 있다. 어린 시절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성장하면서 조금씩 달라진 성향이 어김없이 보였다. 칼라가 뚜렷해졌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친구들이나 나나 공감하는 포인트가 분명히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 널 만났다면 난 너랑 이렇게 친하게 못 지냈을 것 같아.”


많은 부분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친구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외모와 옷차림과 분위기를 갖고 있기도 했다. 그런 이질적인 분위기에 우리가 서로 손을 맞잡고 다니거나 가게에 들어서면 몇몇 사람들은 우리를 훑어보기도 했지만, 친구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친구는 큰 키와 마른 몸매에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브라탑나시만 입고 굉장히 짧은 반바지에 킬힐을 신었으며 온몸에 문신이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차림새일 때…? 그러나 친구가 신경을 쓰지 않기에 나도 타인의 시선은 무시하기로 했다. 우린 서로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만, 많은 과거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친구가 청첩장을 내밀었다. 지난번 만났을 땐 남자친구와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던 친구가 청첩장을 주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 나 속도위반한 거 아니고, 갑자기 빨리 결혼하게 되었어. 근데 나 이거 너한테 먼저 전해주고 싶었어. 네가 내 청첩장 1호로 받는 사람이야.”


청첩장 안엔 자그마한 카드도 들어있었다. 친구가 부끄러우니 카드는 나중에 읽어보라고 했다. 카드 쓸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너한텐 카드를 써줘야 할 것 같아서 썼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드를 열어보았다. 다채로운 문장들 속에 이 문장이 가장 먼저 눈에 틔었다. ‘너와 함께 나이를 먹어갈 수 있어서 참 좋다. 진국인 내 친구!’ 학창 시절만 같이 보냈을 뿐인데, 그 문장이 진심으로 느껴져 마음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친구의 정의란 무엇일까? 여전히 그 상황은 다양해서 나는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외모나 성향이 달라도, 공유해온 시간이 달라도 어느 한 포인트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결말에 다다랐다.



2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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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함과 친숙함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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