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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20. 2023

앞머리를 자르며


 한 달에 한 번씩 앞머리를 자른다. 싹둑. 잘라낼 때마다 미련이 생기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앞머리다.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면 주기적으로 조금씩 쳐주어야 한다. 어렸을 적엔 앞머리 하나 자르는 일로도 미용실을 갔었지만, 헤어디자인용 가위가 생기고 난 뒤부턴 앞머리까지는 내가 자르기 시작했다. 사실 아주 짧게 자르는 것 하나도 다 요령이 있는 터라(웬만하면 미용실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듯) 내가 앞머리를 자르면 어느 날은 아주 짧게 잘리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삐뚤빼뚤 잘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실패해도 한 달은 그냥저냥 버티며 살아가는 재미가 있다. 지난달엔 삐뚤빼뚤 잘린 내 앞머리를 보고 어떤 지인은 개성이 강한 미용사가 잘라준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괜찮게 잘리면 기분이 좋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다음 달도 괜찮게 잘리는 법은 없는 것이 흠이다.


 싹둑.


 앞머리를 자르면서 한 달여간 쌓였던 미련과 아쉬움을 툭툭 잘라낸다. 누군가에게 실망했다면 또는 놀랐다면 그래서 무서웠다면, 아팠다면…. 그 일들까지도 모두 다. 며칠간 함부로 머릿속을 떠돌며 나를 힘들게 한 기억이 있다면, 투둑투둑 세면대 흰 바닥에 잘린 머리카락이 떨어질 때 그들도 함께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다음, 휴지나 천으로 얼굴에 붙은 짧은 머리카락마저 톡톡 털어내면 이젠 잔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앞머리에 여전히 붙어있는 머리카락은 없는지 살펴보면서 빗으로 마저 빗어낸다. 수도꼭지를 틀어 물로도 씻겨낸다. 세수도 하고 수건으로 탈탈 털어보기도 하면서. 마지막은 거울을 보며 남은 잔머리나 머리카락이 없는지 다시 확인하기.


됐네.


 다시 한 달을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설 것.



23.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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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머리를 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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