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이 Sep 20. 2023

게도 자기 집을 지킨다


서해랑 제부도 해상 케이블(크리스탈캐빈) / 아래로 바닷물이 보인다


 며칠 전, 당일치기로 제부도에 다녀왔다. 재작년 12월부터 제부도에 해상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는데, 케이블카도 타보고 잠시 콧바람을 쐬기 위해서였다. 내가 탄 케이블카는 바닥이 투명한 플라스틱 유리로 되어 있었다. 도우미들의 도움을 받아 케이블카에 올라타 출발하니 드넓은 바다 위를 건너는 것처럼 나름대로 아찔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바람 때문에 기우뚱거리며 흔들리는 것이 놀이기구 타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아래와 양옆으로 펼쳐진 서해안 전경과 파도치는 바다, 갯벌, 아직 닫히지 않은 찻길을 가로지르는 차들이 저 멀리 보였다.


 저편 케이블카 도착지에 내리면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그 외 여러 먹거리와 카페 등 각종 시설도 즐길 수 있는데, 밖은 물때만 잘 맞으면 푸르게 펼쳐진 갯벌도 볼 수 있었다. 그 밑으로 내려가 생각지도 못한 갯벌 구경을 한 게 여러모로 기억에 남았다. 10대 이후로 갯벌은 처음이었다. 신발을 벗을 순 없어 모래알로 된 바닥만 디디며 걸었는데 아주 가까운 곳에서도 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망둑어가 여럿이 지느러미로 톡톡 뛰어다니고 있었고, 파란 눈(?)을 빛내며 돌아다니는 게들도 한가로이 진흙을 파먹고 있었다. 그 외에 작은 고둥무리들도 보고 쥐며느리처럼 생긴 바다 바퀴벌레들도 보았다. 그들은 내 발밑을 빠르게 지나다니며 몸을 숨기곤 했다.


작은 새끼 게와 망둑어 그리고 바다 바퀴벌레
자세히 보면 게가 굉장히 많다!


 갯벌을 거닐면서 새끼 게도 한 마리 잡아보기도 하고, 정신없이 도망치는 작은 망둑어도 한 마리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다 그들을 모두 놓아주고 다시 갯벌 위를 걷다가 소라 하나가 눈에 띄길래 집어 들었는데, 깜짝 놀라 다시 소라를 떨어뜨렸다. 그냥 소라인 줄 알았더니 그 안에 게가 숨어 들어있었던 것. 그 모습이 또 신기해서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소라 속 숨은 게를 들여다보았다. 게가 아무리 안으로, 안으로 숨어들어도 집게발이 빼꼼 내다보이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는 소라를 땅이나 물 위에 내려놓기도 하고 물이 있는 곳에 대어보았지만, 게는 있는 힘껏 소라에 숨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기는 절대로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는 듯.


 소라에 숨은 게를 들여다보던 나는 다시 그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놔 주었다. 절대로 집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버티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미물이라고 생각한 이 작은 게도 우리 사람 사는 모습과 다르지 않게 아등바등 갯벌 생태계를 살아내고 있었다. 어디 이 게뿐인가, 망둑어도, 고둥도, 나도 내 집 마련에 급급하다. 내 몸 하나 숨길 곳 말이다. 아마도 게는 주인 없는 소라를 찾기 위해서 이 넓은 갯벌을 몇 날 며칠, 몇 달을 떠돌아다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인내심을 가진 아이인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생명체도 사람도 자기 살길을 마련하기 위해
늘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른 채 일단 눈앞에 주어진 길만 있으면 달려 나간다. 어떨 땐 그게 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삶이란 펼쳐진 앞길만 죽어라 내달린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내 앞에 유리한 조건을 가장 많이 모은 사람이 ‘승리’하는 세상이었다. 아니, 이제 이 세상엔 ‘승리’따위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우승과 승리보다도 내가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기준을 찾아야 했다. 내가 많이 좋아하고, 그나마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어떤 게 있는지 가장 빠르게 찾아내는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여전히 그걸 모르겠다면,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나만의 기준을 세워야 하고 그 기준에 나를 맞추며 살아야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사람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생명체도. 갯벌에서 만난 게에게도 하필이면 내가 집어 든 소라가 자기 기준에 합당한 집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펼쳐진 길을 잘 달려가고 있는가? 동시에 나의 기준을 잘 세워가고 있는가? 내가 만든 기준은 그나마 현실적인 편에 속하는가? 나도 모르게 세상에 타협하지는 않았는가? 케이블카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서 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까까지만 해도 하얗게 보이던 찻길은 사라지고 바닷물만 넘실대고 있었다.



23.09.19.

_

게도 자기 집을 지킨다





작가의 이전글 면접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