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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Sep 18. 2023

면접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지는 7개월 차가 다 되어간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책 편집은 물론 하고 싶던 개인 작업도 하고 글도 쓸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서 살아가는 건 금전 문제를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크게 걸리는 건 없다. 그러나 가장 다루기 힘든 건 나의 ‘마음가짐’인 듯하다. 불안한 속에서도 나름대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늘 몸에 여유를 지닌 채 일을 잡아야 한다. 이런 마인드컨트롤을 제외하면, 또 어려운 건 루틴 지키기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밤새는 일은 곧 잦아지게 된다. 루틴이란 루틴도 금방 깨지게 되기 마련. 나름대로 부지런하고 일정 등 자기관리는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업무 관련 일정 영역’이었고 내 생활은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였다. 일할 때 자칫 욕심이 과하거나 방심하게 되면 낮과 밤이 바뀌고 반나절 이상 잠으로 보내는 날도 많아졌다.


 프리랜서의 가장 좋은 점은 회사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21살 때부터 이런저런 사회생활을 경험해온 나로서는 ‘이젠 절대로 회사에 데이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러나 살아보니 아직 창창한 나이에 사회생활을 겁내는 이들에게 세상은 가혹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회사생활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겐 쉽사리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기도 하고, 덜떨어진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좀 더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난 20대 내내 물불 가리지 않고 어디든 가서 돈을 벌어야 했다. 철도 없고 나이도 어렸던 탓에 회사 보는 안목은 전혀 없었다. 유달리 세상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사람을 부려 먹으려는 회사가 많았고, 그 속도 모른 채 나는 밤낮없이 나를 갈아 넣으며 일했다. 사무실에서 이틀 혹은 삼 일 내내 일하다가 집에 못 간 적도 많았고, 다른 동료들은 하지도 않는 새벽 야근을 직속 상사를 따라 일주일 내내 하면서 살았으니(업계 상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바보 같이 일해왔었다. 무엇보다 잠을 자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체력이 받쳐주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난 그렇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이를 인정하기에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인정했을 땐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아리기도 했다. 내가 나를 돌보지 못한 탓이 크기도 하니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중소기업 대표들은 정상적인 사람들보다 비정상적이거나 비상식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대기업을 가고 싶지도 않았고 준비할 새도 없었다. 물론,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을 것이란 건 잘 알고 있지만. 아무튼 중소기업만 조지는(?) 나에겐 회사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그러던 내가 오랜만에 면접을 보게 되었다. 이전 신문사에서 함께 근무했던, 잘 아는 동료의 소개였다. 물론 그녀와 나는 다른 자회사에 있어서 같은 일을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 신문사를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역할이 컸었다. 다른 듯 나와 닮은 부분이 많았던 그녀를 난 곧잘 따랐다. 동료는 최근 새로운 곳에 취업하게 되었는데,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난 다시 그녀와 회사생활을 할 수 있다면 즐겁게 일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쌓아온 경력과 전혀 다른 일이라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우선 면접을 보기로 했다.


 회사 대표는 우리 아빠와 동갑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그의 질문마다 나름 외워 준비한 대로 자신 있게 답변했다. 작년과 올해 면접 본 횟수만 합치면 스무 번은 족히 넘는다. 그래서 이제 웬만하면 면접은 크게 무섭지 않았다. 난 그저 회사가 무서울 뿐…. 내가 나를 떠올린다면 난 그다지 사무적이거나 똑똑해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일단 면접 자리만 넘기면 된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준비한 말들을 읊조렸다. 그런데 면접을 보는 대표는 나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다 말고 갑자기 피식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아, 젠장…뭔가 허술한 게 뽀록이 났나…? 이런 일은 잘 없었는데…? 뭔가 나의 빈틈이 뽀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또한 면접의 재미일 뿐, 난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 나는 멀뚱멀뚱 앉아있었다. 어디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그러던 어느 순간, 내 얼굴만 쳐다보던 대표는 내 이력서로 눈을 돌리며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저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 아니에요.

  

 그 순간 알았다. 아, 나 지금 많이 긴장했구나…! 다른 면접 땐 그렇게 긴장한 적이 없었는데, 오히려 잘 아는 사람이 소개해준 회사다 보니 긴장한 것 같았다. 그걸 깨달으니 나도 모르게 엄숙한 자리에서 킥킥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본 대표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


 결론은 10월부터 출근. 아주 오랜만이었다. 회사에 가는 것도, 주로 하던 익숙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나 20대 내내 일하면서 깨달은 철칙이 하나 있었다. 어렸을 때 세워온 철칙이라 지금까지도 쓸 수 있는지 몰랐지만, 나의 성장보다 세상의 흐름은 그다지 빠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두려움이 있다면, 두려움을 어떻게든 없애고 나서 덤벼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어지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이. 그렇기에 두렵다면, 두려운 채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뛰어들 때 나는 그제야 나만의 바이브를 탈 수 있다.


 두렵다면 몸도 마음도 내던진 채 뛰어들어라. 그 속에서 견뎌내면 세상은 비로소 살만한 곳이 된다. 이 다짐이 다시 내게 힘을 전해줄 수 있기를.



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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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면접은 너무 오랜만이라서….면접은 너무 오랜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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