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이 Sep 16. 2023

기억 수집


 비가 내리면 사과할 수 없던 일들도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왠지 절망적인 기분까지도 훌훌 씻겨 내려가 주는 느낌이랄까. 평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 스리슬쩍 전하면 잠시 곤란한 건 그 순간일 뿐, 나의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도 그 내용은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찰나를 빌어 얘기해볼까. 망설이던 마음은 다시 한숨으로 적적해진다.


 아직 비가 내리는 걸 보니 누군가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말을 여전히 전하지 못했나 보다. 왠지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현실은 비에 젖어 모든 게 막막하고 불안한데, 그 기억이 평생 나를 쫓아올 때가 있다. 전하지 못한 말이 계속 꿈에 나타날 때가….


 언젠간 그 애매모호한 기억을 수집하며 즐겁게 웃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삶에 가깝기 위해 오랜 시간 다른 일에 열심 다해 바보 같이 살아오기도 했었고. 그런데 이제 이 나이를 먹고 나서 다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전해야 할 말은 즉시 전하고 흔적조차 샅샅이 없애버려야 한다.



 나의 짝사랑은 너를 마지막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이 말만 남겨두고 나는 사라져버리기로 했다.



23.09.16.

_

기억 수집

작가의 이전글 곰보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