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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Nov 28. 2023

헛헛하고 따뜻한 연말


연말 분위기 참 좋지 않니? 헛헛하고 따뜻해.


 어둑한 저녁, 캐럴이 울려 퍼지는 한 카페에서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젠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난다면서.


 저녁을 먹은 우리는 미처 다 못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카페 내부는 어두웠지만 트리와 반짝이는 전구들이 곳곳을 비추고 있었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혼자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이 적당히 고적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비단 카페 내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난 친구의 말에 공감했다. 연말은 늘 정답고 따뜻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아마도 열심히 살아낸 일 년을 드디어 보내준다는 기쁨 그리고 그 일 년을 보내야만 하는 아쉬움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밖은 싸늘하게 추운데 따뜻한 불빛이 도드라지는 공간이 많아진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를 만드는 데에 한몫한다.


 친구는 일 년간 그다지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흘러간 것 같다고도 했다. 나 또한 매 순간 열심히 살아온 것 같기는 한데, 누가 뭐 손뼉 치고 인정해줄 만큼 이룬 것은 없기에 친구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마주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저 위안이 될 뿐이었다. 숨 쉬고 있음에도 ‘살아있다’라는 감각을 좀처럼 느껴본 일이 없는데 친구의 한마디 말에 나의 존재감을 느꼈다.


 ‘연말’ 하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감사? 아쉬움? 마무리? 신년 계획? 물론 나도 몇 번 생각해본 적 있는 단어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연말은 나에게 ‘존재’에 관한 물음표를 계속 던져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이 둘은 연관이 없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마지막 12월이 가기 전에 그 이유를 생각해보아야겠다.


 친구의 말에 나는 내가 그간 ‘죽어있었음’을 깨달았다. 추위와 따뜻함이 공존하는 연말처럼, 살아있음에도 죽어있을 수 있다는 모순. 이 아이러니가 당돌하게 느껴지면서 미소를 띠게 만든다. 헛헛하지만 따뜻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모순을 벗어나 조금씩 ‘살아있음’ 쪽으로 발을 옮기고 싶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까 아주 조금씩, 조금씩….


 ‘존재’라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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