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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이 Dec 05. 2023

다이어리를 사는 12월


 12월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희망을 다잡는 일엔 신년 다이어리를 사는 일도 포함되는 듯하다. 일 년간 다이어리를 열심히 사용하고 자주 낙서를 끄적이며 일기를 쓰는 편이라 나는 연말이 되면 다이어리가 전시된 가판대를 오랜 시간 동안 기웃거린다. 마음에 드는 다이어리를 고르기 위해서.


 아직 다가오지 않은 새로운 1년을 떠올리며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은 다소 까다롭다. 기나긴 1년 동안 쓰기 위해서 다이어리에 그려진 이미지나 그림도 내가 보기에 질리지 않는 것을 골라야 한다. 현재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더라도 약 몇 개월간 성장한 내가 다시 보았을 때도 그 디자인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충분히 예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파악한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다시 돌이켜봐야 한다. 몇 년 전, 아기자기한 곰돌이가 그려진 다이어리를 샀다가 6월쯤엔 그게 갑자기 너무 유치해 보여서 곰돌이가 꼴도 보기 싫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두 달이나 서너 달가량 나이를 먹은 ‘나’의 취향까지 고려하며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 크기나 무게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수록 작은 다이어리를 고르게 된다. 이젠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다니지 않으면 어깨가 결리기 때문이다. 다이어리 하나 때문에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아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한 시간 이상을 서성이며 모든 다이어리의 샘플을 펼쳐보고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그리고 결국 다이어리 하나를 고르기는 했다. 표지엔 별다른 디자인 없이 애플민트 색이 눈에 띄는, 줄이 그어진 페이지가 많은, 위클리를 세 단계로 나눠 쓸 수 있는 다이어리이다.




애플민트 색을 고른 이유는 내년엔 내 삶이 좀 더 상큼해졌으면 싶어서였다. 

지금보다 좀 더 가볍게 밝게 살고 싶다. 


마찬가지로 줄이 그어진 페이지는 꼭 필요하다.

난 늘 메모할 일이 많다. 


무엇보다 위클리를 세 단계로 나눠 쓸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페이지엔 요일마다 세 칸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위의 칸에는 약속이나 중요한 일정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번째 칸에는 운동이나 나를 위한 특이사항을 기록하기 위해, 세 번째 칸에는 일기를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일기를 쓰다가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 지겨워져서 6월쯤에 그만두었었다. 그러나 내년엔 나를 지겨워하지 않고 좀 더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일기를 쓸 수 있는 칸이 많고 이런저런 일정을 기록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은 다이어리를 골랐다.



 다이어리는 종류도 다양했지만, 개중엔 올해 12월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과 1월부터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뉘어 있었다. 얼른 내년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12월부터 사용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고를까도 싶었지만, 그 마음은 접어두었다. 작년 이맘때 12월부터 기록할 수 있는 다이어리를 사서 사용했었는데, 12월 중순쯤 다이어리에 커피를 쏟아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울퉁불퉁 커피색으로 물들어버린 다이어리 내지를 묵묵히 12개월 내내 사용했다. 아직 새해가 오지도 않았는데 다이어리 내지가 몽땅 울어버린 것이 꽤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난 새 다이어리로 바꾸지 않았다. 어떠한 일 년이 되더라도 그 한해를 껴안고 살아가고자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고 종이 가루만 조금 날릴 뿐, 커피색도 점점 옅어져 갔다.


 새로 구입한 다이어리를 사서 가방에 넣어두고 길을 나섰다.


 물론 내년이 올해보다 좀 더 나을 것이라는, 좀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그런 터무니없는 기대감은 이제 없다. 안 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기대’를 갖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 어쩌면 이 바람이 ‘터무니없는 기대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 기대감 하나로 나는 30년 이상을 살아왔으므로 다시, 또다시 한해를 끌어안고 살아가자고 다짐했다.



(마지막 장까지 커피물이 든...) 2023년 다이어리 이제 안녕!!



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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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를 사는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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