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쇠줄의 손목시계.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맞물려진 호크.
내 앞의 아이는 자기 무릎 위에 손목을 비스듬히 세우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른한 초여름 날의 오후,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의 손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동시에 시계만을 남겨두고 그 주위 시야가 부옇게 변했다. 현기증이 났다.
"선생님!"
아이가 나를 불렀다. 순간 멋쩍어진 나는 책상 위에 올려둔 팔을 모아 팔짱을 꼈다. 잠시 어리둥절하게 날 바라보던 아이의 얼굴에 다시 초조한 기색이 나타났다.
“안돼. 야간자율학습은 내 권한이 아니야. 돌아가.”
말을 마치자마자 아이의 초조한 얼굴 위로 짜증이 더해졌다. 아이는 엄마가 어쩌고 하면서 다시 나에게 야간자율학습을 빼달라고 진득하게 조르기 시작했다. 해가 길어진 오후 6시경. 점심시간 때보다 훨씬 선선해지긴 했지만, 낮에 내내 땀을 흘린 탓에 지쳐있었다. 왼쪽 관자놀이를 꾹꾹 두어 번 누르고 책상에 놓여있는 식은 녹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는 쉴 새 없이 조잘대고 있었다. 난 아이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식은 녹차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여드름이 가득한 아이의 얼굴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의 입만 바라볼 뿐. 계속 아이의 손목으로 옮겨지려는 시선을 억지로 붙잡아 둔 채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직접 학년주임 선생님께 말씀드려 보는 건 어때? 허락받아오면 나도 보내줄게.”
아이는 난감해진 듯 보였다. 결국 알았다고 대답하곤 힘없이 교무실을 나섰다. 일개 선생님들에게도 그렇듯 학년주임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번거로운 대상이다. 아마도 아이는 그에게 갈 엄두조차 못 낼 것이다. 나는 종이컵 안의 남은 녹차를 다 마셔버렸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피로가 잔뜩 쌓인 몸을 이리저리 젖혀보며 기지개를 켜고선 야간자율학습을 준비하는 반 아이들을 위해 아무도 없는 교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