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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Mar 25. 2024

Touching

날 만져줘~

주 과장님과의 상담시간이다. 그는 늘 창가를 마주 보고 자리를 잡는다. 상담실 문을 뒤로하고 앉는 구조다. 내가 먼저 자리를 잡지 않는 경우, 불안이 높은 내담자는 문이 보이는 자리를 택한다. 누군가 들어오면 다소 예민하게 밖을 살핀다. 예민했던 주 과장님은 어느 순간부터 늘 같은 위치를 택한다. 상담실이 편안해져서일까? 누가 왔다 갔다 하는 부분에 신경 쓰시지 않는다. 대신 창을 통해 흔들리는 나무나 하늘 보기를 즐기시는 것 같다.  주 과장님의 최애 자리에 앉게 되는 다른 내담자들이 몇 달 전부터 공통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다.

소파 뒤의 나무가 번성하여 기다란 잎이 내담자의 머리나 목, 어깨를 자꾸 건드리는 바람에 소파를 앞으로 당겨 앉거나, 자리를 옆으로 이동하거나, 심지어는 일어나셔서 화분의 위치를 살짝 옮기는 행동이다.   

그런데 주 과장님은 한 번도 다른 내담자들의 행동을 한 적이 없었다. 과장님이 미동을 할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며 머리며 상체에 닿는 것을 보고 내가 괜히 간지럽기도 하고 하여 이번엔 먼저 묻고 말았다.


"과장님~불편하지 않으세요? 뒤에 나뭇잎이 머리며 목에 닿는데요. 느낌이 없으세요?ㅎㅎ"

"ㅎㅎㅎ 왜 느낌이 없어요. 있지요. 그런데 불편하지 않아요"

"앞으로 좀 당겨 앉으시면 되는데... 어려운 자리도 아니고"

"아니에요, 좋아서 그냥 있는 거예요. 날 만져주는 것 같아서. 머리도 만져주고 목도 만져주고~이 나이에 누가 쓰다듬어 주겠어요~ 와이프한테 만져달라고 할 수도 없고 ㅎㅎㅎ"



주 과장님의 반응이 재밌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참, 외로운 분이구나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살짝 아팠다. 터치(touch)는 만지다는 동사인데 touched는 감동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만져진다는 것이 마음을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또한 내가 누군가를 터치해도 상대의 마음이 움직여지니 서로가 서로를 터치하면 마음이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을 때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는 스스로를 감싸 앉거나 토닥토닥해 주는 것이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도 같은 원리인 듯하다.


아이였을 때 우리는 누구나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스킨십이 자연스러웠다. 기쁠 때 슬플 때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친구들과 손잡고 시시덕거리며 몸을 부딪히며 놀았다. 사랑의 초창기에는 스킨십이 애정의 증표라도 되는 듯 빈번했다. 그런데 아빠, 엄마가 되고... 학부모가 되더니 품 안의 아이는 독립하여 떠나버렸다. 잦은 일상이던 만지고 만져짐이 사라져 버렸다. 사회적으로는 점잖은 중년의 직장인이라 누가 감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 않는다. 머리뿐만 아니라 손 한번 잡아주지 않는다.


오랫동안 상담했던 과장님이 떠오른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셨던 과장님의 손톱과 손톱주변에는 까만 때가 박혀있었다. 기름이라 그런지 잘 지워지지 않았고 그저 자신의 손에 있는 원래 있던 무늬처럼 존재했다. 와이프는 기름때를 싫어해서 늘 깨끗이 좀 씻어라 핀잔을 주며 청결하지 못한 손이라 여겼는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묵은 검은 무늬는 아무리 씻어도 씻겨지지 않았고 과장님 손은 더욱 메마르고 초라해져 갔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그의 손은 사물을 대할 때만 신이 났다. 과장님은 참으로 외로워하시면서도 결코 와이프 흉을 본 적이 없다. 자신이 못나서 그렇다고만 하셨다. 이제 세상에 없는 과장님의 손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손을 자세히 본다. 많이 만짐을 당한(?) 손과 그렇지 않은 손이 느껴져서이다. 손이 외로우면 그분의 눈빛도 외로워서 참으로 서글프다. 거친 손이면 꼭 잡아주고 보듬어주고 싶다(실제로는 참을 때가 많다.ㅜㅜ)


많이 touch 했으면 좋겠다. 지인과 가족과, 연인과. 잔잔하게, 장난스럽게, 자주,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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