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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Mar 18. 2024

아빠와의 이별은 안녕(11)

살고 싶어졌는데...

누나가 멀어져 간다. 누나를 한 번만이라도 안고 싶은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누나가 뒤를 돌아본다. 익숙한 웃음을 보이며 끄덕끄덕한다. 그리곤...

누나가 연수로 바뀐다. 연수가 다가온다. 배시시 웃으며 닿을 듯 다가오더니 이마를 댄다. 따스하다. 연수가, 내 눈물을, 눈으로 담아가다 보드라운 입술로 핥아준다. 나 살고 싶어 진다.

 

눈이 떠진다. 연수가 여전히 있다. 꿈이 아니었구나, 다행이다. 살아야지.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내 방이 아니었던가? 연수는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그래도 좋네. 네가 옆에 있으니.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내게 와 주었구나. 손을 뻗어 연수의 얼굴을 보듬어본다. 이런 느낌이구나, 참 좋다. 너란 존재는.

"연수야, 고마워... 그런데 너 한 번의 만남으로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되자라는 약속을 못 지켰으니 벌이라도 받아야겠다. 지금부터 내게서 멀어지면 안 되는 벌, 네 눈앞에 늘 있어야 돼"

어랏! 연수가 갑자가 사라졌다.


누군가 울고 있다. 울고 싶은 건 난데... 넌 누구야?


"나쁜 자식! 너 내가 살린 거야, 밤새 네 곁에 있었다고. 네 피붙이, 네 아빠, 네 얼굴 본 지가 얼마나 됐지? 몇 달은 되었을 걸. 불쌍한 녀석. 부모도 없어, 넌.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다 떠났어. 넌 철저히 혼자일 수도 있었는데. 나, 이 천하의 배소정이 널 떠날 수 없어. 끔찍하게 창피해. 너 알고 있었지?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지. 네가 선생님인지 연수인지 좋아하는 마음? 웃기고 있네. 그 이상이야. 비교할 수도 없어. 널 향한 내 마음은. 날 좋아해 주지 않아도 좋아. 그저 옆에만 있게 해 줘. 내가 죽을 때까지 옆에 있을게. 연수는 너 이미 잊어버렸을 걸. 그런 애 잊어버리고 내 사랑을 받아, 그냥.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날 옆에만 있게 해 줘. 널 행복하게 만들 거아. 약속할게"


소정이? 날 좋아했어? 전혀 몰랐는데... 네 느낌이었을까? 연수가 아니라 맘이 저린다. 따스했는데... 연수가 아니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너인 줄 알았어도 그토록 좋은 느낌이었을까? 내가 만들어낸 느낌이었을지도...

네가 날 좋아한다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너도 그동안 많이 아팠겠구나. 내게 오지 않은 사랑하는 자의 시선.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향해 있는 누의 시선에 내 몸은 희미해져 갔어. 존재할 의미가 없으니까. 살아야 할 의미를 굳이 찾는다면 누나의 시선을 받는 그 아이를 응징하는 거였다. 처절히 미워하고 망가뜨려보고도 싶었다. 운명이 내 편이 아닌 건 그 아이를 본 순간 한눈에 사랑하게 된 것이다. 망할 노파의 말이 맞았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여자를 가까이하면 안 되었지. 운명에 굴복해 버린 내가 싫었다. 앞으로도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게 낫지 싶었는데, 죽음마저 안 돼. 누나가 웃고 연수가 날 보듬어주었거든. 나보 살라는 거야. 다시 살고 싶어 졌는데 꿈이었어? 현실은 변한 게 없고, 내 앞엔 버림받은 나 같은 소정이가 울고 있다. 사람이 말이야. 느낌이란 게 있잖아?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은. 널 아무리 해도 좋아하게 될 것 같진 않아. 그래도 좋으니? 그렇다면 옆에 있어도 괜찮아. 슬픔은 너의 몫이니까. 버림받은 내가 게만 우월하네. 네가 얼마나 버티나 한 번 보도록 하지. 난 변하지 않을 거야.


"옆에 있어도 되는구나. 아직 날 몰아내지 않는 걸 보니. 고마워, 휘야. 휘, 휘이... 네 앞에서 휘라고 부를 수 있다니 꿈만 같아. 너 원하는 것 다 해줄 테니 말만 해. 알았지?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같이 공부할까? 나 공부 잘하잖아. 내가 가르쳐줄게. 아마 학교가 발칵 뒤집힐걸. 완전 하위권이던 네가 전교 1등이 될 테니까. 널 위해 내가 2등 할게. 혹시 알아, 연수도 널 다르게 보게 될지. 자, 오늘부터 시작이다. 우선 씻고 뭐 좀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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