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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lias Apr 03. 2024

잃어버린 유머를 찾아서

방어기제 : 노란 분홍 - 유머 

요즘 머리가 혼란스러워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이상한 건  원래는 고민이 있거나 마음이 아플 때 내 도피처가 책이었는데 이번엔  책도 날 외면하더라는 것이다. 망상일지 모르지만 허둥대는 내 마음을  책이 어찌 알고 날 불러 운명 같은 만남을 선물하지 않았던가! 때론 일침을 가하고, 포근히 위로도 해주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한  책. 어린 시절.... 어둑어둑 땅거미가 져서 글씨가 겨우 보일 때까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과 뒹굴던 나에게  책은 현존하는 친구이자 정신적 멘토였는데... 지금은 존재하지 않다니 믿기지 않는다. 끌림이 가는 책들은 쌓여만 간다. 막상 책을  펼치면 글자가 날아간다. 세줄을 넘기지 못한다.  


 무엇일까? 지금 옆에서 이주가 다 되도록 내 맘을 콕콕 찌르는  책들이 한숨을 쉰다. [화성과 나], [지능의 사생활], [영혼의 돌봄], [감정을 할인가에 판매합니다]. [사랑받을 권리].  참으로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그런데... 어째서 함께하지 못하지? 아뿔싸, 내게 여유가 없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넉넉하게 바라봐 줄  마음의 공간이 없다. 내 맘이 왜 이리 팍팍해졌을까. 내게 사라져 버린 게 무엇일까?


아빠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일행은 셋. 아빠, 친구와 나. 그저 소중한 나의 친구와 아이가 된 아빠와의 여행. 생각해 보니 나의 친구가  천사와 다름없다. 사고로 머리를 다쳐 아이가 된  아저씨와 동행하는 여행이라니.  친구와 나는 굳이 그런  여행을 어찌하고자 했을까? 나야 아빠니까  무엇이든 가능했겠지만 친구는? 아빠와 각별한 사이는 아닌데,  절친의 아빠여서? 나름 의미 있는 존재여서? 모르겠다. 이번을 통해 한번 물어봐야겠다.


우리의 여행에 아직까지 생생히 남아있는 내 기억은 하나다. 운전 실력도 미숙한데 강원도 정선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급격한 U 자 꼬부랑 길을 겨우 지나며(행운이 여신이 함께 했음이 분명하다. 생초보 운전자가 무사한 걸 보면) 숨이 고르지 않았다. 아빠가 놀라 언성을 높인다.

"어어... 혜진아, 앞이 안 보여... 어어엉... 무서워, 깜깜해, 살려줘,.."

(내 정식 이름은 혜진이가 아니다. 아빠는 뇌를 다친 이후 딸의 공적  이름과 사적 이름을 왔다 갔다 하신다. 뇌가 망가진 상태에서도 혜진이란 이름을 부르시는 걸 보면 아빠에게도 혜진이란 이름은 중요했나 보다).



우리가 지나고 있던 곳은 터널이었고 아빠는 선글라스를 쓰고 계셨다. 터널로 들어오자 갑자기 깜깜해진 세상에 덜컥 겁이 나신 것이다.

"아빠, 선글라스를 벗어보세요- "

"어, 보여보여... 무서워 죽을 뻔했네"

"죽을뻔 했는데 살려드렸으니 점심은 아빠가 쏘세요~ㅎㅎ"


우리의 여행은 '이번이 마지막이구나, 이별이구나' 하면서도 유쾌했다. 예측지 못한 돌발 상황들이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다. 언제든 아빠는 성격이 돌변하여 난폭해질 수도 있고,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코마상태에 빠질 수도 있고,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볼 수도 있는 예측불가의 상황에 놓여 있었음에도. 하늘은 예뻤고 마음은 따스했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 덕분이었다. 바로 '유머'란 방어기제다. 유머는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거나, 특정 상황에서 괴롭거나 불편한 기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웃음과 농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힘겨운 상황이 오면 주로 유머를 사용한다. 차사고가 나서 수리비가 왕창 나가게 되면 "몸 안 다친 게 어디야? ㅎㅎ",  아빠가 계단에서 붕 날라 떨어지셔서 뇌의 절반 이상이 망가졌음에도 "사지는 멀쩡하고 뇌만 다친 게 어디야, 명은 하늘에 있다니까. 운이 좋았지",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면 "이제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십 년 뒤에 아는 것보단~" 하며 넘겨버렸던 내가 아니던가? 그때마다 늘 함께 하던 고마운 책들과 사람이 있었다.


현재 나쁜 상황이 100% 나쁜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도, 고통의 깊이가 기쁨의 높이와 비슷하다는 감정의 폭을 알게 된 것도 유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현재의 고통, 이까짓 것 별거 아니야 하며 씩 웃으며 넘겨버릴 수 있었던 유머의 방어기제는 마음의 여유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절박해도 삶에는 명랑함이 존재했고 의미를 찾다 보면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최근의 나는 유머를 잃어버렸다. 불만과 슬픔이 커지다 결국 유머가 차지하고 있던 마음의 공간마저 차지해 버리고 유머는 사라졌다. 내게 말을 건네는 정겨운 책들도, 다정한 사람들의 시선도 내 마음까지 닿지 못하고 놓쳐버린다. 무엇이 문제일까? 곰곰 생각해 본다. 욕심인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할 것을 또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에도 사사로운 욕심에 방향을 틀지 못하고 움켜잡고 있다 보니 마음이 고정되어 버렸구나 싶다. 마음에도 숨구멍이 있어서 바람을 맞으며 환기가 되어야 하는데 무엇이 두려워 구멍을 다 막아버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까?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이지? 유지하고 싶은 욕심,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어리석음...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듯하다. 


흘려보내자~해결되지 못한 일들에 붙잡혀 있는 부정적 감정들을, 욕심을. 

잃어버린 유머를 되찾고, 사람과 책의 아름다움을 어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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