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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그린 Jul 14. 2022

왜 나였을까?

돈과 신용(4)


B도 아경에게는 직장 후배였지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 B에게 아경은 신용카드를 빌려 준 적이 있었다. 


뭘 산다고 했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외국 사이트에 등록해서 외국어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바쁜 직장 생활에도 자기 계발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는데 도움을 주고 싶어 빌려 준 것 같았다.


어쩌면 신용카드를 건네 준 것이 아니라 카드 정보를 불러 준 것이라 약간 방심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때는 아경에게 이런 일을 물어볼 수 있는 어머니가 더 이상 계시지 않았다.  


그런데 신용카드 정보를 B에게 알려 준 이후부터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리 해외사이트에 신용카드를 등록해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아 아경도 시스템을 잘 몰랐다. 


문제가 생겨도 국내처럼 해결하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때나 지금이나 아경은 영어를 참 못했다. 


문제가 생기면 B가 해결해 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아경 자신의 신용카드이니, 아경의 책임이었다. 


그리고 문득 아경은 의문이 생겼다. 


하나, 왜 B의 본인 카드를 등록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B는 알려주지 않았다.   


둘, B의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게 신용카드를 빌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B는 알려주지 않았다. 


셋, 회사에서는 B와 절친인 두 사람이 있어 늘 삼총사처럼 다녔는데, 왜 절친들에게 부탁하지 않았을까? 


B는 알려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경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이토록 B에 대해 모르는데 신용카드를 빌려줄 만큼 B를 신뢰하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오>였다.


스스로 답을 구하자마자, 아경은 신용카드 분실신고를 하고 B에게 연락해서 신용카드를 빌려 줄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번복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줬다가 뺏는 것은 치사하고 잘못된 행위임이 분명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날 밤 아경은 불안과 걱정 없이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아경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도 여전히 궁금했다.  


<왜 나였을까?>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어느 쌀쌀한 가을, 회사로 양말을 팔러 온 대학생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학비를 마련하고자 1~2천 원 정도 하는 양말을 5천 원에 팔러 온 학생이었다. 


부서마다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사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B와 절친들은 자기들끼리 내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에서 그 양말을 사 준 사람들은 누구일까 맞추는 것이라고 했다. 


그중에 아경이 있었다. 


학생이 진짜 학생인지, 정말 학비를 벌기 위해 실제 가격의 약 2배 정도를 받고 양말을 판매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데, 마음 약한 아경이 양말을 샀을 거라고 자기들끼리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경은 양말을 샀는지 안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들이 아경 자신에게 양말을 샀냐고 물었던 것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왜냐면 아경을 어리바리한, 조금은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아경은 같은 맥락에서 B가 자신을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B의 절친들은 아경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좋은 집안에 스펙을 갖춘 레벨이 확연히 다른 이들이었다. 


B는 그들에게 자신의 위신을 깎아먹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그런 일에는 만만한 아경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사실 그 전에도 아경은 자신이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B와 절친들이 자신을 살짝 깔보는 경향을 종종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끔 아경을 자신들의 모임에 끼워주면서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듯이 굴기도 했다. 


아경은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편하지 않았지만,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마지못해 어울리고는 했다.   


신용카드 사건 이후에 아경은 B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욕을 하고 다닌 것을 알았다. 


선배가 무슨 일이 있어 B가 그러고 다니는 것인지 아경에게 묻길래, 신용카드를 빌려줬다가 철회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했는데 B는 신용카드 얘기는 쏙 뺀 모양이었다. 


선배는 최종적으로 신용카드를 빌려주지 않은 것은 아주 잘했다고 아경의 편을 들어주었다.





여기서 잠깐, 신용카드를 빌려주는 것과 관련한 언론 기사(한국 금융 신문 2020.2.14)를 인용하겠다.


[신용카드를 빌려 준 것이 잘못입니다. 신용카드는 가족에게 빌려주는 것도 위법입니다. 신용카드 관련법은 여신전문 금융업 법인데요. 이법에 보면 신용카드는 양도나 양수를 할 수 없고 위반한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카드를 빌려줬다가 부정하게 사용된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본인이 지게 됩니다. 따라서 신용카드는 분실이나 도난을 당했을 때에도 신용카드 분실로 인한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신용카드는 비밀번호를 남에게 알려줬거나, 분실을 알고도 신고를 늦게 하는 등의 고의나 중과실만 아니면 분실 신고하기 전 60일 이후에 사용한 금액은 모두 신용카드사가 보상을 합니다]





그 사건 이후 B와 그 절친들이 아경을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싸늘해졌다. 


아경은 좀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럴 거면 절친들이 B에게 신용카드를 빌려주면 되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은 절대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말이다. 


어쩌면 B는 선배에게 그랬듯이 절친들에게도 신용카드 이야기는 안 했는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아경은 B와 그 절친들과는 멀어졌다. 하지만 섭섭하거나 아쉽기보다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그동안 상당히 부담스러웠던, 불편하기만 했던 B와 그 절친들과 마지못해 이어오던 <업무외 사적 관계>를 완전히 끝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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