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병영일기 90
2023. 03. 25. 토
[등]
등에도 표정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등은 얼굴보다 더 솔직하다.
#1. 직장에서 일할 때
오늘처럼 토요일인데 일해야 하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환경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도 좋고, 환경수업도 좋고, 외근도 좋고, 함께 가는 팀장도 좋고, 심지어 날씨에 점심밥까지도 좋았다.
근데, 그날이 토요일이란 게 싫었다.
'왜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데? 이런 열정페이 딱 싫어!'
남편도 일하는 날이었고, 우리 아이들은 집에서 저희끼리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탄 버스 안에서 조수석에 앉아 있는 팀장의 뒷모습을 찍었다.
점심을 먹고 쉬는 시간에 팀장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봤다.
"나 뒷모습 찍는 거 되게 좋아해. 앞모습보다 훨씬 낫거든."
사실 그래서 찍은 거였다.
155cm 정도의 키에, 40kg이 채 안 될 것 같은 체구. 가늘게 찢어진 눈보다 더 굵어봬는 진한 아이라인. 가을웜톤으로 보이는 각진 얼굴. 일한 땐 겨우 묶일 정도의 뱅 헤어를 고무줄로 바짝 묶고 있었다. 그러다 금요일만 되면 웨이브 단발을 하고는 살짝 이른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는 그녀.
#2 남편이 S대를 나온 재원으로 불렸다고 했다.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의미를 찾는 그의 고상한 취미가 매력적이었고, 결혼을 해서도 그 취미를 놓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는 아들 둘 맘이었고, 대학 ㅣ학년과 고3이었다. 직장에서 아이들 대학 등록금 지원은 되지만 휠 등골도 없다고 했다. 남편은 아직도 취미생활 중이고, 아이들이 이만큼 자랄 동안 단 한 번도 생활비를 쥐어준 적이 없다고 했다.
오늘 환경수업을 마치면, 전세금을 올려줄 수가 없어 지금 가진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집을 알아보러 다녀야 한다고 했다.
휴~~~ 하는 그녀의 한숨소리와 방금 들은 삶의 무게에 비해 그녀의 등은 아담하지만 꼿꼿하고 기름기 없고 생각보다 안쓰럽지 않았다.
그리고...
책상 서랍에 두고 온 usb를 가지러 다음 날 회사에 갔을 때, 그녀도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기 책상이 있는 회사에 있는 게 좋다고 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아이라인은 없었고, 낯빛은 평소보다 더 짙은 누런 빛이었으며, 턱은 더 각져 보였다.
목요일에 북클 시간과 겹쳐 못 보았던 "어쩌다 어른" 재방송을 하길래 보았다.
보고 있자니 8년 전 팀장이 생각났다. 전해 들은 바로는 국장이 되었다고 했다.
금요일마다 이른 점심을 한 이유는 그녀의 사정을 회사가 배려한 것이었다. 근처 KBS에서 소비에 관한 라디오 방송을 고정으로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녀에겐 제대로 된 점심시간이 있었을까?
그녀의 아든들은 25,24세가 되었을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어떤 모습일까?
다음주에 100일 휴가 온다는 아들내미의 등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녀의 등이 생각보다 안쓰럽지 않았던 이유, 지금 다시 이야기를 나눠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