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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Oct 30. 2023

준비 없이 워킹맘이 되었다

"너 다시 일 시작할 생각 있어?"

알고 지내던 언니가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일을 시작할 생각이 있냐고 묻는다.

마지막 직장에서 퇴사하고 경단녀 기간 대략 6년인 나에게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도움 청할 곳 없이 초등학생 두 아이를 놔두고 일과 집안일, 육아까지 병행하기엔 그대로 '노'라고 거절해야 마땅했지만 매일이 마이너스인 우리집 가계부를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겠다는 대답으로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대답과는 별개로 6년 만의 취업이란 단어는 나를 긴장시켰다.

경단녀로 오랜 시간 지내오며 원래도 없었던 나의 자존감은 더 낮아졌고, 이제 전업주부로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시기였다. 바닥을 친 자존감을 극복하기 위해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며 혼자서 끄적이는 글을 쓰고 있었는데, 일을 시작하면 그동안 써 온 글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pixabay


꿈이냐 현실이냐 이런 어이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겠지만 나에겐 중요했다.

글로 성공하겠다는 꿈까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관심 갖고 있던 비폭력대화를 더 배우고 싶기도 했다. 방향을 찾은 것 같은 시기에 다시 주저앉게 되는 것인가 좌절스러운 한편 가만히 있는데 취업의 기회가 온 것은 행운이 아닌가 싶은 양가감정이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일을 하겠다고 절반은 결심을 하고 면접을 봤고, 인수인계 날짜까지 잡아둔 상태에서 글 쓰는 모임 면접까지 봤으니 나의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누가 보면 몇 년을 준비한 작가지망생이라도 되는 줄 알겠지만 실은 그냥 평범한 40대 아이 둘 키우는 여자일 뿐이다.

대신 작가까진 아니지만 그냥 나를 기록하는 사람이다. (몇 부 팔리지 않은 전자책은 냈으니 아마추어작가 정도는 될까.하핫)



엄청난 고민 끝이라고 쓰지만 2주 만에 결국 나는 현실에 타협했다.

아이들도 고학년이 되며 하교 후 몇 시간 정도는 아이들끼리 있을 만큼 자랐고 무엇보다 가계부를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내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아마 생각할 시간이 짧았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지 싶다.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았다면 걱정만 하느라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는 워킹맘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이렇게 쓴다.


#워킹맘#경단녀#재취업#쓰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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