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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산 Aug 23. 2020

미군이 일상에 위협이 되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01

소통이 안되니 통제가 안되고. 통제가 안되니..


미군부대동네, 위험하지 않냐- 이런 질문을 커서는 종종 듣게 된다. 아니, 듣지 않더라도 뉘앙스로 힘들었겠는데 하는 위로 비슷한 느낌을 전달 받고는 한다. 오늘은 내가 느꼈던 미군부대동네의 일상. 이곳을 벗어나면 느낄 수 없었던 일상의 위협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지형이 많이 달라졌다. 거대 클럽은 많이 없어지고, 작은 펍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다

나 여섯살부터 아홉살까지 우리집은 비디오 대여점을 했다. 태극영상이라는 상호였는데, 어떻게 등록되어있는지 몰라도 집 전화가 살아있던 2000년대 초까지 전화가 오고는 했다. 나름 프랜차이즈였다. 그렇다고 본사에서 혜택을 주거나, 관리를 해주는 건 일체 없었던 듯... 당시엔 뭐든 주먹구구식으로 만들면 그만이었으니까. 비디오가게 아들로 태어나는 건 꽤 좋은 입지조건이다. 덕분에 새 빋오 구경이라도 하려고 기웃거리는 친구들이랑 연일 재미있게 놀 수 있었고, 위험한 일에 처할라치면 동네에서 침 깨나 뱉고 다니던 형들이 티나게 지켜주어 안전할 수 있었다.


비디오 대여점은 목이 중요하다. 접근성이 좋고 통행인의 왕래가 잦은 곳. 그래서 당연히 우리집은 평택 미군기지 안정리 문화거리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가게 안에 작은 단칸방에서 생활을 했는데 내 기억엔 이때가 그래도 괜찮은 집에 속했다. 화장실도 우리만 썼고.) 문제는 번화가다 보니 근방에 술집이며 클럽이 득시글댔다는 것이다. 당장, 맞은편은 동네에서 가장 큰 클럽이 있었다. 이층높이의 건물에(들어가본적이 없어서 실제로 이층인지는 알 수 없음)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커다란 네온사인이 밤마다 번쩍였다. 밤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음악 소리, 비트 진동. 클럽 옆구리에 오줌을 누는 아저씨들로 성황이었다. 낮에 부근을 가보면 플라스틱 맥주병 수거함에 다 마신 버드와이저, 덜 마신 버드와이저가 가지런히 꽂혀 있었는데 인상적이게도 거기에선 하나같이 맥주 오줌 냄새가 났다. (지금도 맥주 마신 날 소변을 보면 옛날 우리집이 생각 난다.)


우리 집에서 바로 옆에 붙어있는 건물들은 더 가관이다. 맞은편 아라비안나이트보다 규모가 작을 뿐이지 저마다 자기주장이 강한 클럽들이 길 따라 다섯 개 정도(이 길에만 이 정도고 코너를 돌면 또 그만큼 더 있었다) 있었다. 문화거리 가운데를 지나면 작은 펍 분위기에 홀 중심에 당구대가 설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미국 펍들이 많았는데 여기는 진성 클럽으로 내국인이 찾아갈 엄두도 못 내는 곳이었다. 그러니 밤만 되면 온 동네가 네온사인 번쩍번쩍하고 쿵쾅쿵쾅 하는 수밖에. 지금 같았으면 실내에서 흡연을 못하니까 다들 나와서 연기 만들기에 열중이었을텐데 그렇지 않아 뛰어 노는데는 문제 없었다. 다행이었다.


우리 집 주변을 소개했을 뿐인데 괜히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이건 지금의 사회 인식과 90년대 초중반 사회인식이 조금 갭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옛날엔 오락실, 피시방에서 뻐끔뻐끔 담배 피우고 가래침 찍찍 뱉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나. 그래도 어린이들 잘 다녔다. 그래도 충분하지 않은 듯 하니 여기, 주지육림 골목에서 있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라비안나이트 클럽. 실내는 나도 처음 본다(왼쪽 상단 트럼펫이 최수종 아저씨)

우리 집 맞은편 아라비안나이트. 여기에 서울 방송국에서 드라마 촬영 온 적이 있었다. 최수종, 유동근 아저씨가 형제로 분 했던 [야망의 전설]이라는 드라마였는데, 약간 막 나가던 최수종 아저씨가 잠시 몸을 의탁했던 단란주점이 중간에 나온다. 거기가 바로 아라비안나이트클럽. 티비에서나 보던 스타가 직접 찾아왔으니 온 동네 어린이들이 그냥 지나칠 수가 있나. 집집마다 문 두들겨서 이 소식을 전하고 구름떼같이 몰려와서 드라마 촬영 현장을 구경했다. 아마 안정리 사는 어린이의 30%는 다 모인듯 싶었다. 촬영은 드라마랑 다르니까 딱히 재미는 없었는데 당시엔 그래도 연예인들이 대중을 엄청 기피하지는 않아서 잠깐 대기하는 시간에 우리 사이에 껴서 서 있고는 했다. (나는 라면 한 봉지 가져가서 뿌셔먹고 있었는데 최수종 아저씨가 와서 말도 없이 한 입 빼서 먹었었다. 티비에서만 보던 양반이 나랑 같은 걸 먹으니까 괜히 기분이 좋았다.) 미군 단란주점, 미군 클럽이 90년대 안정리 어린이들에겐 그리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저번에도 잠깐 언급했지만, 휴가 중이거나 개인정비 시간을 갖는 미군들은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낮에는 실컷 놀아야 했으므로 가장 늦은 시간에 찾아갔던 태권도장. 태권도장 운동 시간은 2시, 4시, 8시 반이었는데 2시나 4시는 '어린이'들이나 다니는 시간이었고 좀 나간다 하면 성인들과 8시 반에 다니는 걸 선호했다. 문제는 끝나고 나면 캄캄한 밤이라는 것. 술에 취한 미군과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부대 내부 사정은 알 길이 없으니, 밖에서만 보면 미군들. 꼭 당나라 군인 같다. 그래도 군인이라고 복귀 시간은 잘 지키는 편이었다. 대략 열 시쯤 되면 말짱한 미군들은 진작 다 복귀하고 만취한 사람들만 비틀비틀 게이트로 들어간다. 미군부대 정문 앞에 있던 우리 태권도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술에 취한 미군들과 얼굴을 맞딱뜨려야만 했던 것이다. 다행인 건 이러한 지역 특성을 어른들이 잘 이해하고 있어서 꼭 어린이 여럿이 가거나, 사범님이 데려다준다던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이 반복되면 위험도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법. 나같이 태권도를 오래 다닌 아이들은 친구 한 명이랑 따로 가거나, 혼자 걸어가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세넷 모여있는 미군들을 만날 때, 낯선 생물을 만나게 되었을 때처럼 긴장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아직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고, 그래서 미군들에겐 동양의 신비=쿵푸 같은 차별적 공식이 아직 남아있었던 듯. 우리를 보면 복싱 자세를 취하면서 호이얏 하는 괴상한 기합을 내지르곤 했다. 예의 바른 몇몇 어린이들은 배운 대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지만 대부분은 못 본 척 지나갔다. 다행히 험한 일은 없었다. (나는 어디서 영어 환경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개탄을 했다. 환경이 주어져도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된 거지?)



연합뉴스 [해운대 소란 주한미군, 폭죽 난사도 모자라 음주운전까지(종합2보)]

낯선 존재와의 공생은 일상을 긴장으로 만들고. 긴장은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만든다. 올해 7월 해운대에서 일어난 주한미군 사건. 연합뉴스 기사문 제목은 [해운대 소란 주한미군, 폭죽 난사도 모자라 음주운전까지]. 이야기의 골자는 미국 독립기념일을 맞이하여 부산 인근의 약 8천 명가량의 주한미군이 해운대로 몰려가서 마스크도 하나 끼지 않고 폭죽 수십 발에 음주운전까지 난동을 피웠다는 것.


지금까지 다소 가벼운 이야기를 해왔지만 실상은 어쩌면 이쪽에 더 가깝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미군이 우리 땅에서 범죄를 일으켜도 우리 경찰이 잡아가서 처벌하지는 못한다. 뭐 미군법으로 처벌 받는 다는데, 얼마나 어떻게 받는지는 둘째 치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어떡하란 말인가. 국가가 전쟁의 위험에서, 피해의 위험에서 안전한 테두리로 우리를 지켜준다고 하는데 그건 적어도 미군과 우리 관계에서만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도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아주 예외적인 상황 아닌가? 모든 미국인이 나쁜 건 아니다.' 맞다. 미국인이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려움은 다를 수 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위협을 하나 소개해볼까 한다.


어릴 때는 모르고 지냈던 이야기인데, 커서 미군부대 동네 이야기를 소개할까 해서 어머니에게 나 어릴적 이야기를 물어본 적 있었다. 추억인지라 즐거운 이야기도 더러 있었지만 '동네가 위험한 곳 아니었나'하는 질문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성인 여성들은 밤 늦게 돌아다니지 못했다] 왜? 술 취한 미군이 지나가는 여성을 때리고 도망가기 때문에. 이 문제는 우리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고, 밤에 돌아다니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조용조용 공유하고 있었다. 화가 나는 이야기. 왜 하필 여성들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명확하다. 남성은 반발이 있을 것 같고, 노인들은 폭력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만약 아이들까지 그 대상군에 들어와 있었다면 여기서 아이들을 키울 엄마들은 얼마나 됐을까?) 남성들의 반발이 걱정되는 수준이라는 건 적어도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안전'하다는 의미인걸까.


문뜩 학교에서 선배들에게 들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 학교가 화성과 맞닿아 있어서 선배들 대대로(?) 화성연쇄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꽤 디테일하게 알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흥미로운 건 주한미군 연쇄살인사건 설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피해자들의 일치성이나 피해를 입은 형태가 당시 한국의 문화로는 이해되지 않는 구석이 많았고, 고로(?) 주한미군의 짓이라는 결론이었다. 얼마 전 진범이 잡혔다고 들었는데 사실 진위여부를 떠나서 주한미군이 우리 주변에 뿌려놓은 해악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위협하는 존재. 또 누군가에게는 둘 모두 해당되는 아이러니가 우리 동네에는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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