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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눈 오는 프라하에서  뚜벅이로 85km

어쩌다 프라하만 세 번 오게 되었다. 처음 프라하를 왔을 때는 95년도 뜨거운 한여름에 가족과 함께 왔을 때이다. 그때는 나도 어렸을 때고 그냥 수동적으로 따라만 다니던 여행이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너무 덥기도 했지만 여행비를 아끼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끼니를 채웠던 추억은 또렷하다. 


그 이후 20년도 훌쩍 지나고 30년이 다 돼가는 작년 12월에 배낭 메고 프라하로 다시 오게 되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 플렉스 버스를 2시간 타고 도착한 데가 체코 프라하이다. 3박 4일을 프라하에서 보내고 그 이후 체코 카를로비바리, 체스키크룸로프, 그리고 이름 모를 체코 시골에서 여행을 마친 후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프라하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프라하만 세 번 오는 셈이다. 작년 12월에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는 12월 중순, 거기를 떠날 때는 크리스마스였다. 총 5박 6일을 프라하에서 지내면서 눈 덮인 프라하를 뚜벅이로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퇴사 후 도망치듯이 유럽으로 훌쩍 떠나 두어 달 동안 이탈리아, 독일, 체코에서 뚜벅이로 걸은 거리만 639km 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직선거리가 325km 고 하는데, 내가 두어 달 유럽에서 두 발로 걸은 거리는 서울, 부산을 걸어서 왕복한 거리와 비슷하다. 작년 12월 프라하에서는 85km의 눈길을 걸어 다녔다. 


나는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한다. 그냥 걸으면 복잡한 생각도 정리가 된다. 작년 배낭여행 때는 일부러 많이 걸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이곳을 내 눈에 꾹꾹 담아놓고 싶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귀찮아서였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추운 겨울에 차표 끊을 때마다 손시럽게 티켓자판기에 목적지 버튼 누르는 것도 번거로웠다. 또 삼성페이도 안되는데 일일이 가방에 있는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교통비도 아끼고 여행동안 운동을 못하기에 운동도 할 수 있는 뚜벅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1년 전 이 날 매섭게 칼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독일 드레스덴에서 출발해서 체코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 버스터미널에서 나를 반겼던 것은 역시 눈이었다. 그리고 택시 기사들. 이 때는 무거운 캐리어와 배낭으로 예약했던 숙소까지 걸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눈도 많이 내렸기에 택시를 타야만 했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호텔. 호텔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텔이라고 부른다. 난생처음이었다. 강 위에 있는 배에 객실이 있다. 프라하에는 이런 보텔이 많다. 프라하 강변에 유람선 같은 배가 정박하면서 물 위에 둥둥 떠있다. 프라하에 도착해서 3박 4일을 보텔이란 곳에서 지냈다. 12월 중순이서 숙박비도 저렴했다. 3박 4일 동안 109유로(약 15만 원), 그런데 크리스마스 바로 직전에 독일로 가기 위해 묵었던 1박 2일의 프라하 호텔비는 93유로 (약 13만 원). 프라하에서 크리스마스는 성수기여서 당연히 비싸지만 그래도 너무 비쌌다. 특히 백수가 돼버린 나에게 1박에 13만 원은 너무 아까왔다.


 처음 보는 보트 위에 집 보텔. 걸을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긴다.

체코 프라하 보텔

작은방이지만 그래도 필요한 것은 다 갖추어져 있다. 무엇보다 옛날 감성을 자극하는 체리컬러의 책상과 의자.자. 노트북으로 무엇인가 할 수 있어서 맘에 들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 난방이 빵빵하다. 눈 오고 추운 날에는 방바닥은 차지만 그래도 벽에 있는 따뜻한 히터 때문에 얼었던 몸을 녹여주기에 딱이었다. 


하지만 강 위에 떠 있기에 배 밖은 추워서인지 개미들이 보이는 단점이 있다. 호텔직원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개미들도 추워서 그런 거라고 나보고 이해부탁한다고 하는데...

보텔 내부구조

개미와 함께 투숙을 해야 한다는 단점 외엔 다 맘에 들었다. 특히 보트 위에 식당에서 조식은 최고의 밥상이었다. 조식도 포함에서 이 가격이라면 개미와 동거하는 것도 그다지 않다.

보텔에서의 조식

특히 프라하의 눈 오는 광경을 보면서 배 위에서 조식을 먹는 것 누군가는 부러워할 것이다. 

보텔 카페테리아

작년 겨울 혼자 배낭여행 하면서 내가 터득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조식을 든든하게 호텔에서 먹고 빵과 과일을 챙겨서 돌아다니며 점심을 때우고 저녁만 맛있게 사 먹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호텔에서 지낼 때는 아침마다 나의 도시락과 그다음 날에 방탄커피에 필요한 버터를 이렇게 챙겼다.


이 때도 도시락을 챙겨 눈 오는 프라하를 걷고 걸으면서 프라하 성과 카를교 근처 크리스마스 시장을 뚜벅뚜벅 걸었다. 산길로 가다 엉덩방아도 찍고.. 그래도 뚜벅뚜벅


프라하 성으로 가는 언덕길에 오래전 공산주의 시절 때의 학살당했던 사람들의 추모비가 있다. 이 추운 겨울에 잔인할 만큼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프라하 공산주의 추모비

사람의 형체가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는 그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나의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뽀드득뽀드득 눈발자국 소리도 나쁘지 않다. 

프라하 성으로 가는 길

남들은 혼자서 그것도 여자 혼자서 남의 나라 여행하는 것 무섭지 않냐고 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 이렇게 걷는 것이 좋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생각할 수 있기에 좋다. 그리고 이렇게 걷다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어 나는 뚜벅이 여행이 좋다.

프라하 성으로 가는 산길에서

아무도 없는 산 위에서 나만 바라보는 세상이 보인다. 이때 나의 세상은 회사를 뛰쳐나와 암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세상이 나올지 궁금도 했다. 마치 여행처럼.

프라하 수도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성

산길을 걷고 걸어 프라하 성에 도착하니 역시 관광지여 사람이 북적인다. 북적이는 것 싫어하는 나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갑다. 


프라하성은 대통령이 살고 있기에 경비도 엄하다. 검문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프라하 성. 

프라하 성 정문

검문을 통과하여 들어가면 거대한 성당이 볼 수 있다. 거대한 만큼 그 안도 웅장하다.

프라하 성에 있는 성당

프라하 성을 한 바퀴 둘러보고 프라하 올드타운에 있는 카를교와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눈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눈길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위험하다. 난 이번 배낭여행 산길에서 두 번 넘어졌다. 


한 번은 이탈리아 베로나 빗길 나뭇잎에 미끄러져 쿵!

다른 한 번은 프라하 성으로 가는 눈길에 미끄러져 쾅!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반백살에 넘어져 크게 안 다친 게 감사하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살살 내려 프라하 구시자지에 도착했다. 프라하 크리스마스 시장은 예쁘다. 크리스마스이브 때도 프라하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보낼 때 그때도 이뻤다.

프라하 크리스마스


눈 오는 것 질색하지만 그래도 눈 맞으면서 프라하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나름 혼자 여유를 느끼는 것은 좋다. 낭만과 거리가 먼 나 자신이지만 그래도 눈 오는 풍경을 보면서 감성에 젖어들기도 한다.


프라하 크리스마스 시장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풍기는 바비큐도 내 배를 따뜻하게 채워주기에 감사하다. 굳이 식당에 갈 이유가 없다. 추워도 그냥 시장에서 먹는 음식이 제 맛인 것처럼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먹는 것이 정석이다.

프라하 크리스마스 시장 장작바비큐

프라하는 하얀 눈과 잘 어울리는 도시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모른다. 눈으로 덮인 하얀 지붕도, 길 위에 있는 눈길도 그냥 좋다.

프라하 올드타운 눈길

아마 눈 위에 무엇인가 그리면 또렷하게 남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오랫동안 이 추억을 남을 수 있어서 눈길이 좋을 수 있다. 힘든 과정도 있지만 눈처럼 깨끗하게 지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마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아닐까?


이 눈길을 걷고 또 걸었는데 뭔들 못하겠어? 
이 추억을 눈처럼 하얗게 지우지 말고
눈길에 걸은 발자국을 꾹꾹 담아 간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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