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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Mar 29. 2022

트렌디하게 트렌드 보고하는 법

뫄뫄 씨, 요즘 유행하는 게 뭐죠? 에 대한 대답

내 업무 중 하나는 상부에 트렌드를 보고하는 일이다. 이 회사에 입사한 지 이제 8년 차, 미들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고연차에 '트렌드' 보고라니. 하루 종일 디지털을 놓지 않는 습성 탓에 실은 그저 남보다 조금 많이 부지런한 덕후인 탓에 어쩌다 맡게 된 업무를 벌써 4년째 지속하고 있다.


사실 뷰티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트렌드 모니터링은 연차나 직무에 상관없이 매일, 매 순간 해야 하는 업무 중 하나다. 빠르게 돌아가는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실시간으로 고객 의견을 센싱해 기민하게 적용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트렌드 보고를 오래 해왔다고 늘 트렌디한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객들과 영 다른 곳을 보며 삽질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힌트가 된달까?


따라서 '요즘 유행하는 게 뭐죠?'라고 누군가 물으셨을 때 어떻게 보고를 하면 좋을지 노하우를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첫 번째 장표는 데이터로

사실 트렌드를 보고한다라는 말 자체가 어폐다. 트렌드는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게 더 어울리니까. 마케팅 전략이나 예산 등 정해진 보고 양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그런 서식이 어울리는 종류의 콘텐츠도 아니다. 그래서 팀 공유를 할 때는 메일이나 메신저의 쪽지를 적극 활용하기를 추천한다. URL과 함께 간단한 인사이트를 한 줄 적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아무리 캐주얼한 트렌드 공유라도 상부에 보고를 해야 한다면 최소한의 양식은 필요하다. 다짜고짜 '이게 요즘 유행하는 겁니다!'라고 이미지를 복붙 해 가져 갈 수는 없으니까. 나 또한 나만의 '트렌드 보고 서식'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 회차를 거듭할수록 흐름이 정리가 되었다. 일단 첫 장은 데이터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 전달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이다.


아주 쉬운 예로 '지금 릴스에서 유행하는 챌린지'에 대해 보고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 맨 첫 장은 'MZ세대의 SNS 이용 행태' 장표가 들어가는 게 좋다. (매우 상투적이지만) 이런 배경을 먼저 제시하고, 그래서 릴스에서는 고객들이 이런 걸 하고 놀아요 라는 방향으로 보고를 전개해야 플로우가 깔끔해진다. 내가 보고하는 것에 대한 타당한 근거가 마련되니 설득력이 높아지는 건 물론이다.



화끈한 실례의 힘

'트렌드'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요즘 유행하는 거'라는 말 자체가 너무도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특히 Z세대, 10대 친구들 사이의 유행을 상부에 보고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보고하는 나 자체도 친숙하지 않고 이해가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슬픈 현실 이럴 때는 화끈한 실제 예를 캡처해서 보여드리는 것이 좋다. 날 것의 예는 각인이 확실히 되고 그 단어와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을 돕는다. 보고라는 것 자체가 결국 설명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캡처를 통해 현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드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도 주로 MZ세대가 이용하는 커뮤니티 댓글, 유튜브 댓글 등을 그대로 공유하곤 하는데, 욕설이나 거친 말 등을 필터링 없이 가져가는 것이 좋다. 예쁜 말로 포장하는 것보다 MZ 고객들이 실제로 어떻게 그 워딩을 쓰고 있는지 직접 보여드리는 게 더 효과적이다. 몇 달 전이었나, '서동요 기법'에 대해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걸 일일이 말로 설명하려니까 쉽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우선 서동요는 백제의 서동이 지은 그 향가가 맞고요. 서동이 결혼하기 위해 블라블라.. 그 말을 그래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 게 있을 때.. 설명이 필요한 드립은 망한 드립이라는 얘기가 있듯이 이럴 때는 그냥 실례의 캡처 몇 장으로 이해를 돕자.



식은 떡밥 포장 금지

트렌드는 곧 시의성이다. 보고 장표에는 최대한 가장 최근 벌어진 일에 대해 정리하는 게 좋다. 내가 오늘 보고한 아이디어는 분명히 어딘가에서는 이미 실행단으로 넘어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3개월 전 콘텐츠는 아슬아슬하다. 6개월 전 콘텐츠라면 더 심각할 수 있다.


예전에 문명 특급의 재재님이 회사에 특강을 온 적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트렌디한 콘텐츠를 만드시나요? 하고 물으니 그분이 이렇게 답했다.


"보통 밈이 흥하는 단계가 이렇더라고요. 트위터 -> 다음 카페 ->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 (이쯤 되면 쪼금 지난 것) -> TV. 사실 레거시 미디어까지 오면 콘텐츠의 종말이라고 봐요."


만약 지금 티브이에서 본 콘텐츠를 가공해서 장표에 넣고 있다면 그건 이미 종말 후의 식은 떡밥을 포장하고 있는 셈이다. 트렌디하지 않은 트렌드 보고서가 될 수 있으니 유의하도록 하자.



연령을 가리지 않는, 진짜 트렌드

트렌드에 기반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회사의 인턴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점검을 요청한다. 그들은 아직 브랜드화되지 않았고, 내부 사람들의 이해관계(?)와 거리가 멀며, 무엇보다도 가장 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아니오'를 외칠 때 눈치를 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고객 같은 사람들이다.


물론 어린 친구들이 전부는 아니다. 몇 년째 상부에 트렌드 보고를 하면서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대표님한테 통하면 진짜 트렌드다!" 여러 개의 트렌드를 보고 해도 유독 윗분들의 눈에 띄는 게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 그것이 곧바로 NEW 프로젝트가 되기도 한다. 물론 담당 입장에서는 일이 늘어나는 것이지만 그렇게 어른들이 족집게처럼 집어주신 트렌드는 대체로 전략의 좋은 양분이 된다.


위에서 얘기했던 특강에서 재재님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트렌드를 모르는 상사를 설득해야 더 많은 분들에게 소구가 되더라고요. 젊은이의 오만한 생각을 주의하세요. 다른 사람의 공감대가 적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어쩌면 트렌드 보고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한 마디일 수도.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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