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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ie 앤지 Jan 19. 2022

무지개 잉크 한 방울


회사에 입사하고 엠비티아이(MBTI)가 바뀌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유사과학이라고는 하지만 이만큼 나의 회사생활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 또 없었다. 직관형에서 감각형으로, 감정형에서 사고형으로. 입사 후 7년 만에 내 성격은 극적인 변화를 맞았다.


회사. 시간에 맞춰 끝내야 하는 과업이 있고 그걸 지시하고 평가하는 사람과 억지로 나누어 드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곳. 그곳에 잘 적응하려면 내가 먼저 변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머리로 상상하는 것보다 현실적인 옵션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감정은 최대한 억누르며 더 효율적인 선택을 지지했다. 나를 바꿀수록 나는 회사에 적합한 인간상이 되어갔지만 그럴수록 본래의 내 모습은 흐려져갔다. 그렇게 대부분의 장면이 잿빛이었다.



하지만 12월은 조금 달랐다. 일 년 내내 회색도시에 나를 맞춰 살다가도 겨울이 오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연말이 되면 나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작정 연락을 했다. 카카오톡보다 부담이 조금 덜한 인스타그램 DM을 이용하는 건 나만의 팁이었다. ‘보고 싶어! 이번 달에 만나자, 언제 시간 돼?’ 하고 막무가내로 메시지를 보내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면 대개 긍정적인 답장이 왔다. 작전 성공이었다.



그 약속도 그렇게 잡은 약속이었다. 12월이 되자마자 희한하게도 꿈에 보고 싶던 얼굴들이 등장했다. 이 때다 싶어서 꿈 얘기를 핑계로 말을 걸고 저녁을 먹자고 졸랐다. 대학에 다닐 때 정말 지겹게도 붙어 다닌 친구였다. 고맙게도 친구가 회사 앞까지 와준다고 해서 나는 심혈을 기울여 갈 만한 곳을 골랐다. 너무 왁자지껄한 건 싫고, 그렇다고 너무 조용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곳은 별로고. 자극적이지는 않으면서 적당히 근사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그렇게 고른 곳이 삼각지역 근처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작은 테이블이 서너 개쯤 있고 자리마다 따뜻한 색의 간접조명이 있는 가게였다.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거리에 그곳만 유독 노을빛이었다. 무엇보다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늦어서 미안!”


그렇게 예쁜 곳을 예약해놓고 나는 지각을 했다. 당연히 회사 때문이었다. 먼저 도착해있던 친구가 그런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허겁지겁 겨울 냄새가 밴 코트를 벗고, 드디어 친구와 마주 앉았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식전 빵을 씹으며 어떻게 지냈냐, 그간 잘 살았냐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랜 공백이 있어서 서로의 근황을 업데이트하는 데에 꽤 시간이 걸렸다. 그쯤 토마토 펜네 파스타가 나왔다. 오 맛있겠다! 고소한 치즈가 올라간 펜네면을 포크에 쏙 꽂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재미없는 회사 얘기를 했다. 답답했던 건 나뿐만이 아닌지 친구도 회사 욕을 실컷 했다. 속상한 얘기를 할수록 우리의 포크가 휙휙 거칠게 움직였다.


다음으로는 비프스테이크와 감자 도피누아즈가 나왔다. 도피누아즈는 감자를 얇게 썰어 생크림에 졸인 음식이었는데 씹을수록 아주 독특한 식감이 느껴졌다. 그조차도 약간의 일탈처럼 기분이 좋았다. 야, 그때 학교에서 땡땡이친 거 기억나지. 그래, 벚꽃 피었다고 자체 휴강하고 기껏 간 데가 로터리에 있는 돈가스 집이었잖아. 커피빈 창가에 앉아서 과제는 안 하고 이어폰 나눠 끼고 노래나 들었지. 그러고 보니 학회에서도 놀기만 했네. 옛날 얘기는 해도 해도 재미가 있었다. 이제 정말 나이가 들었나 봐. 그런 말을 하면서 나는 어린애처럼 초코 케이크를 시켰지만.



잠시 후 하얀 생크림이 눈처럼 얹혀있는 초콜릿 케이크가 나왔다. 한 입 먹어보니 부드럽고 달콤한 게 꽤 마음에 들었다.


“사실 학교 다닐 때 니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았거든.”


 케이크의 맛에 집중하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그랬다. 내가 재수하고 처음 학교 입학해서 약간 어색하고 그럴 때, 니가 먼저 말 걸어주고 그랬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아마도 빨리 친해지고 싶었던 거겠지. 그래서 쓸데없는 걸 물어보고 장난도 치고 그랬을 거다. 그러고 보니, 나 원래 그런 성격이었나?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밝고 명랑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의 너는.. 선명한 봄날? 아니면 프리즘의 무지개 같았어.”


이어진 친구의 말에 나는 잠깐 포크를 내려놓았다. 가게 안은 연말 모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제법 들뜬 분위기였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놀랍기도 했다. 봄날, 프리즘, 무지개- 친구가 말한 단어에서 흘러나온 형형색색의 색깔들이 고요하지만 분명하게 내 주위로 퍼져나갔다. 흑백의 화면에 컬러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마치 그 모든 색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해주듯이.


“내가 그랬어?”


나는 멋없이 되물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정말로 그런 기억이 없었으니까. 그저 눈앞에 닥친 것들을 해치우며 살아온 시간들만 남아있을 뿐. 그게 문득 슬펐다.


“어. 그래서 그때 진짜 고마웠어.”


하지만 진짜 고마운 건 나였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말해준, 예쁜 단어로 나를 기억해준, 그리고 그 문장을 담백하게 이야기 해준 친구에게 너무 고마웠다.


“내가 더 고맙다 진짜.”


나는 친구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런 말을 들으려고 만나자고 한 건 아닌데. 기쁘면서도 어딘가 멋쩍고 쑥스러웠다. 아무래도 회사 근처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이런 문학적인 말을 듣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주 고되고 힘든 날. 내가 회색도시에 배경처럼 스며들어버린 것 같은 날에 나는 친구의 말을 떠올린다. 그것은 반짝반짝했던 나를 추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나의 봄날을 고대하는 의미이기도 하겠지.



계절이 수십 번 바뀌어도 그 한마디는 봄날 무지개와 같이 온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으리라.



@angiethinks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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