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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woluck Sep 29. 2020

원죄와 구원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알레고리 잔치

천로역정(존 번연 저, 을유문화사)

조금 과장을 보태서 이야기를 한다면, 서양의 사상과 문화의 특징은 온 사회계층 할 것 없이, 어떤 종류의 문화적 매체를 본다고 하던, 즉 미술, 문학, 사회제도, 음악, 생활방식, 사상, 정치 등등에서 기독교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로마시대 기독교가 공인되면서부터 살살 퍼지기 시작한 이 종교는 서로마가 망하고 나서도 게르만족 등에게 잘 퍼져나가서 결국 중세시대에는 유럽을 아주 쥐고 흔들던 교황에게 권세를 누리게 해 줬다. 왕도 아닌 자가 왕하고 맞짱을 뜨면서 서로 전쟁 - 여기에는 신의 뜻을 빙자한 살인을 포함한다 - 을 일으키고 무신론자나 이교도들 - 이교도라는 표현에도 어차피 기독교가 우선이고 나머지는 짭이란 뜻이 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 - 잔인하게 탄압하고 구교와 신교 간의 대립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가. 얼마나 순기능이 뛰어난 종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 권세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구의 주요한 사회적 정치적 요소다. 기독교를 빼놓고는 서양을 얘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본주의 사상가라는 서양 사상가들도 결국에는 존재의 이유가 신에게서 주어졌다고 말하기에 이르렀기도 했으니 말 다했지.

이 작품을 보면서 온전히 든 생각은 일단 해당 종교의 신자가 아니면 행간의 의미를 이해하고 감동을 받기가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존 번연이 본 그 당시 영국 - 이 세상은 멸망이 곧 닥칠 것 같은 엉망진창인 세상이었다. 물론 그 당시 영국의 정치적 혼란이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만들었겠지만, 이 책에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달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에 사람들은 완전히 쪄들어 있고, 구원을 받는 것이 살아있는 동안의 최대한의 목표였다고 말한다. 번연은 본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중 거의 대부분의 인물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이름을 붙였고, 실제로도 작품에서 그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헤매기만 한다.

그러나 신자가 아닌 내가 보았을 때는 구원받지 못한 그들은 나름 이 세상에서 현실적이고도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민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고민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고 그 당시 영국을 혼란에 빠뜨린 여러 사간이 원인인 것들도 있겠지만, 그런 그들의 고민에 대해서 번연은 알레고리를 이용해서 엄하게 꾸짖되 그 엄함이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 근거를 찾아 - 그 방대한 양의 성경을 얼마나 많이 읽었으면 여기저기 치밀하게 인용해서 본작품을 썼는지 놀랍기는 하다 - 꾸짖는다. 결국 믿음을 가지라는 것으로 모든 이야기가 수렴된다. 현실을 이렇게 만든 신에 대해 이해가 안 되는데 신에 대한 깊은 믿음 - 그냥 믿어서는 안 된다. 내세에 대한 미련은 가볍게 버려야 한다 - 을 가져야만 천국을 갈 수 있다. - 작품에서는 천국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였을까.

아무리 무신론자나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전도를 하는 것도 좋고, 작가 자신이 생각한 진정한 믿음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도 좋지만, "원죄"라는 무시무시한 업보를 설정해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고, "구원"만이 살 길이고 내세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 오직 믿음 - 한다는 생각을 번연은 더욱더 이 작품에서 키워놓았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400년 가까운 이전 세계를 살던 사람이니 경제적으로나 풍족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천국에 대한 이미지를 생산함에 있어서 결국에는 번쩍이는 빛이 가득하고 황금의 이미지가 가득한 천국을 설정함으로 인해서 "와 믿으면 풍족한 천국 가는구나"라는 단순한 교훈을 주려는 것 같기도 해서 - 어느 종교에나 나오는 천국의 이미지다. 어떤 종교던지 배금적이고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도록 강조하면서도 해당 경전에서 묘사하는 천국은 물질적으로 고도의 풍요를 간직한 모습이다. 소박하게 살고 있는 천사는 없다. - 기대보다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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