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듣고 싶은 말"을 찾는 질문
⏹️ 이 글은 『일의 복리』시리즈의 PART 3입니다.
40년 직장생활에서 배운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기술을 나눕니다.
작년, 딸에게 물었다. "네 롤모델이 누구야?" 딸이 웃으며 말했다. "엄마."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왜?" "엄마는 항상 도전하잖아. 포기하지 않잖아. 엄마가 제일 부러워." 40년을 일했다. 그 모든 시간이 이 한마디로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2025년 10월, 나는 62세로 정년을 맞았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이라는 명함은 더 이상 없다. 하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 계발/동기부여 분야 작가"가 시작된다. 명함이 정체성이 되는 순간, 위험하다. 명함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고 느낀다. 은퇴하면,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은퇴는 끝이 된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그만두고 자선가가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는 토크쇼를 떠나 미디어 제국을 만들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보디빌더에서 배우로, 배우에서 주지사로 변신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명함이 바뀌어도, 정체성은 남았다.
40년을 되돌아보니,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다.
첫째, 박사 학위. 9년이 걸렸지만, 결국 해냈다. "OOO 씨"에서 "OOO 박사님"이 되었다. 명함이 아니라, 내 이름에 붙은 타이틀.
둘째, 딸이 나를 롤모델이라고 한 것. 직장 다니느라 딸의 학교 행사를 많이 놓쳤다. 죄책감이 있었다. 하지만 딸은 나를 보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도전하는 모습을. 명함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물려줬다.
셋째, 건강을 지킨 것. 62세. 표준체중. 필라테스와 PT로 몸을 관리한다. 명함이 아니라, 내 몸과 건강을 지켰다.
아쉬운 점들.
첫째, 학위를 먼저 하지 않은 것. 23세에 바로 연구소에 들어갔다. 안정을 선택했다. 학부-석사-박사를 마치고 30세에 들어갔다면? 더 탄탄한 출발이었을 것이다.
둘째, 일 때문에 가족을 희생한 것. 대전으로 오면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20년 주말부부로 남편과도 떨어져 살았다. 일을 위해 치른 대가가 컸다.
셋째, 더 일찍 자기 계발에 투자하지 않은 것. 40대 중반까지 회사 일에만 집중했다. 개인 브랜딩, 글쓰기, 강연 같은 건 생각도 못 했다. 만약 30대부터 시작했다면? 지금쯤 더 넓은 세계에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것이다. 후회를 반추하지 않는 것. "나는 왜 그렇게 했을까?"가 아니라 "다음은?" 후회를 배움으로 바꾸는 것. 그래서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미루지 마라. 박사를 하고 싶다면, 지금 시작해라. 47세에 시작하지 말고. 운동을 하고 싶다면, 지금 시작해라. 50대에 시작하지 말고.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졸업식에서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다. 과거를 돌아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 있을 뿐이다." 23세에 연구소 입사. 27세에 석사. 47세에 박사. 62세에 작가. 그때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모든 점이 연결된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생각해 봤다. "OOO은 40년 연구소 생활을 하고, 40년 작가 생활을 할 것이다. 도전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내 가치다. 명함이 아니라, 삶의 태도.
동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할까. "열정적이고, 실력 있고, 따뜻한 사람." 열정. 47세에 박사 과정을 시작하는 열정. 실력. 40년간 최고 인사고과를 유지한 실력. 따뜻함. 동료의 실수를 덮어주고, 후배를 격려한 따뜻함. 이것이 내 유산이다.
브로니 웨어는 호스피스 간호사로 일하며, 임종 직전 사람들의 후회를 기록했다.
가장 많은 후회 다섯 가지:
- 남들이 기대한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한 삶을 살 용기가 없었다.
- 너무 열심히 일했다.
-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없었다.
-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 나 자신을 더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나는 이 후회들을 피했을까.
첫째, 내가 원한 삶을 살았나. 박사를 하고 싶었다. 주변은 반대했다. 하지만 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 나이에?"라고 했다. 하지만 시작했다. 나는 내가 원한 삶을 살고 있다.
둘째, 너무 열심히 일했나. 그렇다. 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딸과의 시간도 지켰다. 남편과의 주말도 지켰다. 운동도 했다. 독서도 했다. 일만 한 건 아니다.
셋째, 감정을 표현했나. 초반엔 못했다. "욱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배웠다. 감정과 상황을 분리했다. 5초를 세는 법을 배웠다.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노력했다.
넷째, 친구들과 연락했나. 40년 동기 중 3명이 남았다. 우리는 아직도 연락한다. 조용한 동맹군들. 위기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 선후배, 동료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관계를 지켰다.
다섯째, 나 자신을 행복하게 했나. 필라테스, PT, 독서, 글쓰기. 62세에 새로운 도전. 작가. 나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정년퇴직 후, 명함이 사라진다. 직함도 사라진다. 회사 이메일도 사라진다.
하지만 남는 것들이 있다.
전문성. 40년간 쌓은 지식과 경험.
관계. 위기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들.
건강. 80세까지 쓸 수 있는 몸.
작품. 논문, 특허, 그리고 이 글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OOO"은 사라진다. 하지만 "작가 OOO, 정보보호 박사, 엄마, 아내, 선배"는 남는다. 이것이 내 가치다.
빅터 프랭클은 말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만은 빼앗을 수 없다." 명함은 빼앗길 수 있다. 직함도 빼앗길 수 있다. 하지만 내 태도, 내 가치, 내 정체성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40년을 일했다. 이제 다음 40년을 설계한다. "40년 연구소 생활, 40년 작가 생활." 처음엔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심이다. 80세에도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강연을 하고 있을 것이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명함이 아니라, 가치로 사는 사람으로.
작가로서의 10년 계획. 62세~72세. 다음 10년의 목표가 있다. 브런치에서 시작한 '일의 복리' 시리즈를 책으로 낸다. 책이 나오면, 강연을 시작한다. 후배들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든다. 유튜브나 팟캐스트도 고려 중이다. 72세가 되면? 두 번째 책을 쓸 것이다. "80세까지 일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그때 다시 다음 10년을 설계할 것이다.
왜 멈추지 않는가. 사람들이 묻는다. "정년 했으면 좀 쉬지 그래요?" 나는 웃는다. "쉬는 건 지루해요. 새로운 걸 하는 게 더 재밌어요."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났지만 멈추지 않았다. 워런 버핏은 94세에도 일한다. 그들이 일하는 이유는 돈이 아니다. 의미다. 나도 같다. 작가로 사는 것은 돈이 아니다. 의미다. 40년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 실수가 누군가의 시간을 절약해 준다면.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용기가 된다면. 그것이 내가 계속 쓰는 이유다.
당장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것
첫째, 명함 없는 자기소개 만들기. "저는 OOO 회사의 OOO입니다"가 아니라 "저는 OOO을 하는 사람입니다"로 소개해보라. 당신은 회사가 아니다. 당신이 하는 일이다.
둘째, 10년 후 기억되고 싶은 모습 적기. 10년 후, 당신은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한 문장으로 적어보라.
그 문장이 당신의 가치다.
셋째, 원하는 것 하나 오늘 시작하기. 미루고 있던 것이 있는가. 오늘 시작해라. 정보를 습득해라. 후회 없는 선택을 해라. 그리고 매일 조금씩, 당신의 가치를 쌓아라. 복리로. 40년 후,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오늘부터.
⏺️ 인생의 질문:
"명함이 사라진 후,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이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10년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자신만의 가치를 정의한 것입니다.
PART3. 성장의 복리: 나만의 가치를 정의하라 [■■■] 3/3
다음 글 예고: 에필로그 - 나이 듦이 주는 자유, 그리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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