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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Jan 12. 2021

혼인신고하던 날, 아내가 울었다

서투른 인간의 어설픈 결혼생활

신혼 초부터 아내와 마찰이 잦았다.

정확히는 신혼여행 때부터였고, 더 정확히는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그랬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예민했고, 배려심이 없었다. 때론 매우 신경증적이었고, 어떤 면으로 강박적이기도 했다.

아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예민했고, 때론 매우 편집적이었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둘 다 예민했지만, 서로를 받아줄 만한 그릇은 되지 못했다.

나는 같이 있지만 독립적이고 싶었고, 아내는 모든 것을 함께 하고픈 기대가 컸다. 그럴수록 아내는 나에게 기대고 싶어 했고, 그런 모습이 나를 더 부담스럽게 했다. 그런 상황은 아내에게 결혼생활에 대한 당초의 기대를 저버리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결혼 후, 아내는 유독 혼인신고를 미뤘고, 그런 모습이 나는 답답했다.

청첩장을 찍는 순간부터 결혼이라는 사회적인 합의와 일종의 구속이 적용된다라고 믿었던 나였다. 상투만 틀지 않았지 고루하고 보수적인 면이 강했던 나였다.

(남들이 하는 것은 다 해봐야 직성이 풀렸던 나이기에, 혼인신고도 그런 것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혼인신고에 대한 아내의 의미는 남달랐던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결혼을 하고, 그 사실을 알렸으니 혼인신고는 당연히 따라오는 후속절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는 나와 결혼생활을 더 할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는 최후의 보루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유독, 다툼이 많았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결혼한 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물었다. 

‘우리 혼인신고할까’

왜 혼인신고를 미루냐는 몇 차례의 나의 물음 끝에, 드디어 아내가 반응했던 것이다. 

퇴근 후, 우리는 구청에서 만났다. 

신고는 그동안 기다리고 애태웠던 것에 비하면, 매우 간단했다. 신고서를 작성하고 몇 가지 서류만 내면 바로 접수가 되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내가 혼인신고에 왜 그리 비중을 두었는지 모를 일이다. 살다가 서로 편한 시기에 하면 그만인 것을.

그 당시만 해도 사람은 나이가 들면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사회적인 압력이 지금보다 강했던 시절이었다. 

공부, 시험, 취업, 결혼 등의 사회에서 부과한 숙제를 하는데만 젊은 시절을 보냈다. 나는 그만큼 주체적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만한 여유도 없이 살았던 것이다. 

지금 같으면, 혼인신고는 정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이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되어본 적이 없었으니 더 불안했던 것이다. 

아내와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는 ‘혼인신고’ 자체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행위였던 것이다.


혼인신고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가면서 나는 이미 마음이 상해 있었다.

구청에서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아내가 ‘이거 다음에 할까’를 물으며, 결정을 여러 번 번복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앞에 빈자리가 났고, 아내가 먼저 거기에 앉았다. 

그런데, 앉아있는 아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 미루던 혼인신고를 한 후, 아내가 울고 있다..

.. 그것도 지하철 안에서..

..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애써 아무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같으면, ‘괜찮아?’, ‘미안해’ 또는 ‘내가 더 잘할게’ 정도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겠지만, 그때는 도대체 왜 저런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아무 말없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물론 지금도 그런 말은 잘하진 못한다)


아내의 행동 또한 내게는 상처였기에.

정확히는 혼인신고를 번복하는 과정과 후회 섞인듯한 감정의 표출이 내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아내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이해하지 못했던 그런 상황을 다시 글로 적어나가면서, 나를 다시 보게 되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결혼 전, 오랫동안 나의 감정만을 생각하고 소중히 해왔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고, 아끼는 데에는 많이 서툴렀다. ‘공감’ 하지 못했다.

내가 받은 말의 상처를 되갚아 주는 방식의 소통은 나를 더 망가뜨렸다.


어쩌면, 결혼 생활은

어쩌면, 결혼 생활은 내가 가장 싫어하고 가리고 싶은 내 모습을 상대를 통해서 가장 가까이에서 비추어주는 과정일 것이다. 

내가 나를 모를수록 다툼이 생겼고, 단점이 많은 나를 발견할수록 나를 가리고 옹호하기에 급급했다. 후회스러운 언행이 반복되었다. 

우리는 후회하면서도 다시 싸웠고, 싸우면서도 계속 후회를 했다. 

사과를 하는 대신 서로 변명을 했고, 변명을 하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혼인신고 사건은 그런 결혼 생활의 단면이었던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어쩌면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그래서 괜찮을 거라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형식보다는 결혼생활의 실질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 

나를 당혹스럽게 하는 상대에 화를 내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의 이해와 공감이 먼저라는 것을 어렴풋이 그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퇴근 전 되뇌고 간다.

오만상을 하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괜찮아? 미안해. 내가 부족했어.

괜찮아? 미안해. 내가 부족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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