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하나
의식(儀式)·3 ― 전봉건
나는 너의 말이고 싶다.
쌀이라고 하는 말.
연탄이라고 하는 말.
그리고 별이라고 하는 말.
물이 흐른다고
봄은 겨울 다음에
오는 것이고
아이들은 노래와 같다라고 하는
너의 말.
또 그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불꽃의 바다가 되는
시이트의 아침과 밤 사이에
나만이 듣는 너의 말.
그리고 또 내게 살며시 깜빡이며
오래
잊었던 사람의 이름을 대듯이
나직한 목소리로 부르는 평화라고 하는 그 말.
기억 하나
조심조심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그 언젠가 나에게 다가오던 그대로였다.
너무 반가워 차의 문을 열려주려 손을 뻗은 순간
그는 다른 차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때처럼 조심스럽게
이미 정해진 길, 원래의 그 자리였지만
눈 앞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었다.
유독 그 차의 시동소리가 경쾌하고 우렁찼다.
아픔은 그저 남겨진 자의 몫이라고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처럼 안녕 하며 인사하는 말.
그런데요 하며 걱정하는 말.
있잖아요 하며 말을 잇는 말.
단지 그런 사소함의 말들을 일상에 녹여낼 수 있을 뿐.
그리고 보고싶어요 라고 혼자 마음에 새기는 말 뿐.
- 불현듯 사로집힌 기억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