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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음의태양 Jun 01. 2021

약을 먹고 있다.

결국은 나였다는 것을

약을 먹고 있다.

별 건 아니고, 마음이 아픈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어서 약을 먹고 있다고 하면,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뒤로하고, 약이라도 먹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분노조절장애.

내가 보는, 그리고 남이 보는 내 증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누군가가 그 당시 본인의 화를 1에서 100까지 표현하면 어떨 거 같아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천 이요.


문득문득 화를 낼 때, 앞이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싸우는 일도 종종 있다. 

운전하며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나는 통제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용솟음친다. 

아이들이 옆에 있건 없건,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호통으로 상대방들에게 이글거려야 속이 풀릴까 말까 한다. 


문제는 그다음.

화의 대상이 아내가 아니더라도 아내는 그런 내 모습을 환멸에 가까운 감정으로 대한다.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통성기도의 방언 같은 잔소리는 항상 부부싸움을 유발했다. 그런 다음 찾아오는 우울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장인어른도 나와 같은 다혈질이셨다. 아내의 어린 시절은 유독 그런 아버지의 모습으로 밝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누군가의 화로 주위의 분위기를 망쳤다는 판단의 상황이 오면, 아내는 어김없이 예전의 아버지의 그늘을 소환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 오버랩되어 본인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이후의 소나기 같은 통성기도. 쏴아- 쏴아-

물론 그 소나기 속에는 어린 시절의 어두운 모습을 보상받고자 하는 아내의 마음도 들어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당신의 성장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왜 내가 화를 냈다는 이유로 몰아세우냐며 다시 2차전, 3차전에 돌입했겠지만.

이젠 내가 지쳤다.

그냥 내가 일상에서 화를 내지 말아 보자, 일단 그래 보자 라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누군가는 심리상담을 추천하겠지만 나처럼 고집이 세고, 빠른 결과를 원하는 인간이 그게 통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차라리 내가 직접 상담심리를 나를 위해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머지않아 상황이 허락된다면, 말이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내가 지인의 소개로 가정의학과에서 이주일 간의 약을 처방받았다. 


그리고 5월의 연휴. 

나는 나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그 약을 ‘임상실험’ 해보기로 했다.


연휴가 있으면 한 번쯤 대판 싸울 만도 한데, 어라? 아내의 기분이 좋아 뵌다.

약을 괜히 먹었나 싶었지만, 나는 이내 나의 화와 직면했다. 

화가 날 때쯤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약을 먹었다. 약을 먹었다. 참을 수 있다. 참아진다...


내가 화를 내지 않으니 아내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약의 효과인지 약을 먹었다는 사실에 근거한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성공.

2주일 동안 집이 조용해졌다.(물론 사사로운 사건들도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문제는 결국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2주 복용 후, 나는 한 달치 처방을 다시 받았다. 

약을 처방받았다고 약을 매일 복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렴풋이 내 불행의 원인이 나였다라는 것을 살며시 받아들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한 달분의 약이 남아있으니 더 시험 좀 해보고, 결론을 내어보자.


어쩌면 약은 그 자체의 효과보다는, 나를 다시 보게 하는 하나의 기제 인지도 모른다.

마음의 거울, 분노의 브레이크, 고삐 풀린 상황의 결과를 미리 가늠하게 하는 그 무엇. 그래서 왜 그때 참지 못했어 라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게 하는 그런 것.

그리고 그 우울감에 다시 화를 내서 다시 내가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으로 휩싸이지 않게 막아줄 수 있는 그 무엇인지도 모를 일이다. 


나만 무엇인가를 수용하고 바꾸었는데, 나를 뺀 세상은 모른 척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에 나는 신기하면서도 동시에 쓸쓸하고 씁쓸했다. 

내가 온전히 구축했다고 믿었던 세계라는 것은 처음부터 없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세계 또한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 세계도 오랫동안 다른 것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고착된 것이었다. 

그런 나의 세계는 타인의 그것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 온전하지 않으므로.


내가 전부라고 믿었던 나의 세계가, 타인의 영향을 받은 다른 세계와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에, 그리고 나의 세계는 온전히 나의 세상이 아니었다라는 것에, 힘없는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세상을 위해 멈추어야 하는 것은 오직 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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