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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Jul 19. 2021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스타팅 게이트구원자(Rescuer)

*이 글은 제가 피해자 삼각형을 배운 선생님 린 포레스트(Lynne Forrest)의 글 “The Three Faces of Victim - an overview of the Victime Triangle”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본은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ynneforrest.com/articles/2008/06/the-faces-of-victim/?fbclid=IwAR0scyq0z5QN54fJSN-kWoCWBYVr93KIEwoN46E285Cg1m6SeDvWZWqb9MU 




구원자는 어머니 역할의 어두운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지지와 보살핌 대신, 구원자는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소리란 명목으로 타인을 억누르거나, 통제, 교묘한 방식으로 조종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용기를 북돋아 주고, 스스로 독립하도록 돕거나, 타인을 보호하는 게 무엇인지 잘못 이해한 경우지요.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는 전형적인 상호 의존적(co-dependent) 관계를 맺습니다. 피해자의 무언가를 뜯어고치려고 하거나, 지나치게 보호하려 들고, 피해자가 스스로에게 해로운 습관을 계속하는 데 일조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무의식적 심리가 중독적인 구원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죠. 구원자가 되는 것보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더 좋은 방법이 뭐가 있겠어요! 구원자는 다른 사람을 돌보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이들이 자라온 가족 환경을 들어보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의 필요를 분명하게 인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릴 때 가족이 우리를 대한 방식이,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과 같다는 건 심리학적 사실입니다. 자신의 필요가 부정당한 채로 자라서, 성인이 된 후에도 과거 경험과 같은 수준으로 자신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평생 자기 자신을 돌봐도 좋다는 허락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필요는 심층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집중합니다. 


구원자는 스스로를 돌보는 역할과 동일시하는 데서 종종 큰 만족감을 느낍니다. 보통 “도와주는 사람”, “문제 해결사” 역할을 자랑스럽게 여기지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타적인”, “사심 없는” 돌봄 행동으로 사회적 칭송을 받거나, 심지어 상을 받기도 하지요. 그들은 남을 돌보는 행위가 절대적으로 선량하다고 믿으며, 자신을 영웅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비현실적 믿음체계 한편으로 낮은 목소리가 들립니다. “내가 얘를 오랫동안 잘 돌보면, 조만간 얘가 날 돌봐줄 거야.” 하지만, 우리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해줄 때,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돌보겠어요?  


실망에 빠진 구원자들은 종종 우울증에 걸립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피해자 위치로 전환했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구원 행위의 부작용을 완전히 부인하며, 한참 동안 자신이 얼마나 학대당했는지 불평을 계속합니다. 그 후에도, 이 공상적 박애주의자들은 피해자로 불리는 걸 못 견뎌하죠. 한번 삼각형의 피해자 자리로 전환한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들은 이렇게 순교자(Martyr)가 됩니다. 


이용당하고, 배신당하고, 남에게 휘둘려 희망을 잃었다는 느낌이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들이 피해자 위치에 섰을 때 전형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순교자가 된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을 살펴볼까요?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너는 나한테 이렇게 갚아?”, “내가 너한테 얼마나 퍼부어 주든, 끝이 없을 거야.”, “네가 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나한테 이렇게는 못할 거야.”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혼자 남겨지는 겁니다. 자신의 가치가 오직 타인을 위한 일에 달려있다고 믿지요. 다른 사람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하거나, 타인을 위한 봉사 이외에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좀처럼 믿지 못합니다. 구원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상호 의존성을 강화합니다. “내가 필요하면,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어떻게든 자신이 버려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이들은 의존적 관계의 문제점을 쉽게 잊어버리죠. 그들이 도와주는 방식이 사실은 상대방을 무능력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더 많이 도와줄수록, 상대는 스스로 책임지는 방법을 점점 더 잊어버리고, 책임을 덜 질수록, 구원자가 할 일도 자연스럽게 많아집니다. 이런 악순환에 점점 빨려 들어 관계는 결국 재앙으로 끝이 납니다. 


막 나가는 십 대 사춘기 아들 둘을 둔,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 유형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죠. “좋은 엄마가 되려면 내 아이들이 어떤 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확실히 옳은 선택을 하도록 지도하고 싶었죠. 아이들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내가 진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애들에게 뭘 해야 하는지 잔소리를 해야 했고, 아이들을 계속 통제하려 들었죠.” 


자신이 한 행동이 뭔가 불쾌한 결과를 초래할 때마다 그녀의 아이들은 엄마 탓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엄마가 그렇듯이, 자기들 행동이 어머니 책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어머니의 끊임없는 통제 때문에, 아이들은 항상 갈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무책임한 행동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어머니 탓을 하기가 더 쉬워졌죠. 자기 스스로 “좋은 엄마”라고 느껴야 할 필요 때문에, 항상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는 피해자로 아이들을 키운 겁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은 자라면서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어릴 적 환경이 그렇게 조성되었으니까요. 


이 어머니는 자기 아이들이 스스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아이들의 무능력을 증명할 수많은 사례들을 들었죠. 그래서 자신이 아이들의 선택을 통제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애들이 어렸을 때처럼 자신의 선택을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은 무력감, 자신이 어머니로서 실패했다는 좌절감을 느꼈습니다(피해자 위치). 아이들이 바라는 데로 따르거나, 말을 안 들어 ‘벌'을 주는(박해자 위치)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습니다. 둘 중 어느 길을 택하든, 기분이 좋을 리 없었죠. 죄책감, 회한을 느끼고는 이에 자극받아 다시 아이들을 뜯어고치려 시도했습니다. 이렇게 그녀의 스타팅 게이트인 구원자 위치로 되돌아와 새로운 사이클을 반복했습니다.  


셀리의 이야기에서 그녀가 약하고, 무능력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쇠약하고, 약에 중독된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큰 책임감을 느끼며 자랐죠. 그녀 자신의 안녕이 얼마나 어머니를 잘 돌보느냐에 달려있었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녀 안에는 유약한 어머니를 향한 깊은 내적 분노가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로서 그녀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모든 걸 다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반복하면 할수록, 헛된 시도라는 게 점점 분명해졌고, 그에 따라 패배감도 깊어졌죠.(피해자 위치). 마음속에 원망이 생기고, 어머니를 경멸하게 되었습니다(박해자 위치).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서도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평생 동안 병들고 의존적인 사람을 돌봐온 셀리는 이미 감정적, 육체적, 영적으로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떠받치는 버팀목 역할을 하며,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일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게 구원자의 삶입니다. 자신의 필요는 무시하고, 남들보다 나은 사람처럼 느끼기 위해 이들은 항상 피해자를 필요로 하지요. 모든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의 삶에는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아프고, 약하고, 무능해서 그들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습니다. 자신의 피해자가 스스로 자립하기 시작하면,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는 전환기를 맞습니다. 비로소 자신의 관계 패턴을 바로 잡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피해자를 찾을 수도 있죠. 


도저히 다른 사람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뭐가 되었든, 피해자가 얼마나 끔찍하게 도움이 필요하든지 간에, 다른 사람을 구하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피해자를 낳습니다. 이건 당신이 더 이상 관대하고, 친절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원자가 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을 돕고, 지지할 수 있습니다. 정말 도움이 되는 건, 다른 사람을 구하는 행위와는 아주 다르지요.    


진정 다른 사람을 도울 때, 우리는 그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무능해지는 게 아니라, 점점 자율권을 갖게 되죠. 의존성을 기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장려합니다. 진정한 지지자는 다른 사람이 스스로의 일을 알아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실수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고, 가끔은 거기서 뼈아픈 교훈을 얻는다는 걸 알죠. 어려운 시간을 겪으며, 그 경험으로부터 필요한 교훈을 배울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구원자들처럼 자신의 선택의 따른 결과에서 자유롭도록 피해자를 구해주지 않습니다.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들은 사실 자신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통해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거나, 피해자가 계속 자신에게 의존하는 게 중요할 뿐입니다. 피해자의 성장은 사실 그들에게 부차적인 문제지요. 


사진 출처 : De-selfing series by Hsin Wang 

http://www.fubiz.net/2016/04/15/de-selfing-series-by-hsin-wang/hsinwan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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