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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 Hana Sep 09. 2021

생존을 위한 전쟁

스타팅 게이트박해자 (Persecutor)

*이 글은 제가 피해자 삼각형을 배운 선생님 린 포레스트(Lynne Forrest)의 글 “The Three Faces of Victim - an overview of the Victime Triangle”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본은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lynneforrest.com/articles/2008/06/the-faces-of-victim/?fbclid=IwAR0scyq0z5QN54fJSN-kWoCWBYVr93KIEwoN46E285Cg1m6SeDvWZWqb9MU




다른 역할들과는 달리,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의 근본적인 감정선은 수치심입니다. 어린 시절 공공연한 정신적, 또는 육체적 학대를 당한 사람들이 박해자로 자라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수치심에서 기반한, 끓어오르는 노여움이 평생 그들의 삶을 좌지우지합니다.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감정을 억누르고 숨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깊이 억누르고, 감정적 고통은 표면적 분노와 무관심 뒤편으로 숨겨버리죠. 다른 사람에게 짓눌려 패배자가 되는 것보다는, 힘과 능력이 있어 보이는 사람, 즉 어릴 적 자신을 학대한 사람을 모방하기도 합니다. “세상은 위험하고 비열한 곳이야. 인정사정 안 보는 사람만이 살아남지. 나는 살아남는 쪽에 속할 거야.” 다른 말로 하면, 박해자가 되기로 결심하죠. 권위적이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자세, 노골적인 처벌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을 ‘보호'합니다. 


스타팅 게이트 구원자가 어머니 역할의 그림자인 것처럼,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는 아버지 역할의 그림자를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종종 가정을 보호하고, 가족 구성원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하지요. 박해자들은 삶에 필요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정하거나, 힘을 사용해 규율을 심으려 합니다.  


박해자들은 다른 사람을 힘으로 눌러서 자신의 깊은 무력함과 수치심을 극복하려 듭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 드는 게 그들이 다른 사람과 주로 관계 맺는 방식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항상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지요! 괴롭힘, 따돌림, 훈교, 협박, 비난, 잔소리, 심문 그리고 공공연한 공격 등이 주된 행동 방식입니다. 아주 폭력적인 행동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구원자가 고칠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박해자는 탓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구원자가 자신의 필요를 부정하는 것처럼, 박해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취약성을 부정합니다. 힘이 없는 것, 자신이 나약하게 비치는 걸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자신의 두려움, 취약성, 약점 등을 가혹하게 평가하고, 부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이 감정들을 투사할 상대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박해자가 피해자와 관계 맺는 지점입니다. 약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어야, 파괴적이고 고통스러운 박해자의 세계관이 완성됩니다. 구원자도 박해자도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지탱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피해자를 필요로 합니다. 


이들은 또한 사실을 과장하거나,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꾸며 내적 무력감을 무마하려 합니다. 이런 허황된 거대한 자아상은 수치심에 기반합니다. 사실은 깊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은폐 막에 불과하죠. 양 극단을 오가는 시계추처럼 내적 열등감과 우월감을 오가며 자신을 남보다 나은 사람으로 꾸미고 싶어 하는 게 박해자들의 특징입니다. 


박해자는 자신이 타인에게 해를 가했다는 걸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은 항상 생존을 위한 전쟁 상태에 있습니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할 뿐이죠. 


조셉은 명성이 있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이혼했죠. 화를 잘 내는 아버지는 항상 멀게 느껴졌고, 돈을 이용해 타인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는 자신을 학대하는 남자들을 집에 데려왔고, 조셉은 십 대 시절 내내 이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아주 어릴 때, 싸우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란 걸 배웠죠. 싸움장에 풀어놓은 성난 황소처럼 머리를 땅에 박고 닥치는 대로 들이박으며 살았습니다. 조셉의 인생에는 항상 싸워야 할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인생을 그렇게 만들었죠. 


표면적으로 조셉은 자신감 넘치고, 호전적이었습니다. 건강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항상 무리한 모험을 시도했죠. 하지만 내면적으로 그는 불행하고, 억울했습니다. 결코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지쳐있는지 종종 털어놨습니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해하려는 시도를 언제나 감시해야 했으니까요. 


그는 계속 법정 소송에 휘말렸고, 어떤 때는 완전히 몸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 하나를 치러, 간신히 이기고 나면 다시 다음 싸움을 시작했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건 모두 남들 탓이었습니다. 자신은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었죠. “그렇게 처벌을 피하도록 놔둘 수 없어!” 그가 자주 하는 말이었습니다.  


자신이 마땅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직접 나서 행동하는 게 정당하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조셉이 자기 주변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죠.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 부모도 믿을 수 없었는데, 그가 누구를 의지하겠어요? 언제 생길지 모르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그는 항상 방어 태세로 살아야 했습니다. 


조셉은 전형적인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입니다. 박해자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을 아주 위험한 곳으로 바라보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죠. 이런 세계관 때문에, 항상 반격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방어적 태도로 일관합니다. 


이들이 자신을 박해자로 인식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힐 이유를 너무나 쉽게 정당화하기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보다는 피해자로 인식합니다. 그들 이야기에는 이런 패턴이 반복됩니다. “난 그냥 도우려고 했는데(구원자), 그들이 나한테 등을 돌렸고(피해자), 그래서 반격으로 나를 보호해야 했어요.(박해자)”  


이런 의식 구조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걸 어떤 위협처럼 여깁니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걸, 마치 자기 탓을 하는 것처럼 느껴서 결국은 내면에 비난하는 목소리만 커지거든요. 이들은 계속 화를 내기 위해서 비난할 만한 상황이나, 적으로 돌릴 사람이 끊임없이 필요합니다. 분노가 그들의 심리적 원동력인 셈이죠. 분노는 어쩌면 만성적인 우울증에 대처할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침에 카페인을 찾듯이, 박해자들은 격렬한 분노에 의존합니다. 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하고, 삶을 지탱해주는 에너지원인 셈이죠. 


피해자 삼각형의 다른 역할들과 마찬가지로, 스타팅 게이트 박해자가 계속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는 방법뿐입니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자각하기 위해서 큰 돌파구가 필요합니다. 보통은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관계나 인생에 큰 위기가 닥쳐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역설적이게도, 피해자 삼각형의 악순환에서 사람들이 벗어나는 지점은 주로 박해자 위치입니다. 우리가 박해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스스로가 박해자 위치에 있다는 걸 자각한 사람들이 삼각형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결심을 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진실을 인정하기로 결심하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삼각형에서 같이 장단을 맞추던 사람들의 비난이 시작되지요. “어쩜 그리 매정하게, 나한테 그것도 안 해 줄 수 있어?” 그때까지 돌봄을 받던 피해자가 항의하겠지요. “더 이상 내 도움이 필요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피해자가 자기 인생에 책임을 지기 시작하면, 그를 구제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던 구원자는 한 차례 위기를 맞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피해자 삼각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쁜 사람'으로 비칠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더 이상 역기능적 상호작용을 계속할 수 없게 된 주변인들이 감정적 동요를 겪기 때문이죠. 변화가 가져오는 껄끄러운 상황을 감내할 의지가 필요합니다. 




사진 출처 : Francis ooi and newfound inspiration 

https://www.blissfulbblog.com/bliss-1/2014/09/francis-ooi-newfound-inspi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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